문화/생활

“오늘 아침에도 대구지역 목사님 5명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바로 서고 화합해야 국가가 미래지향적으로 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른바 국가브랜드의 향상과도 직결되는 일이죠. 종교 간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다른 종교인들을 자주 만나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자위(自慰)하곤 합니다.”
희수(喜壽)의 연세임에도 정각스님의 목소리는 굵고 단호했다. “이제는 내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내 수양을 해야 하는데…”라면서도 종교 간 엇박자가 나는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생각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군 제대 후 고시 공부를 하던 중 불교에 입문해 출가 40년이 훌쩍 넘도록 스님은 종교계 화합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앞장서왔다. 필요하면 교회에 가고, 천주교 신부들과도 손잡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80년대 말 기독교 대한감리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불심으로 봐도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하다고 했죠. 당시엔 스님이 교회에서, 그것도 높은 연단에서 강연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종교 간 경계를 허문 정각스님에겐 ‘부처님 오신 날’이나 ‘크리스마스’나 똑같은 축복의 날이다. 특히 예수 탄생일 전날인 12월 24일엔 꼭 부산지역 각 교회를 돌며 축하 법문을 한다.
법문을 낭독하기 전 “이 땅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종교와 관계없이 기뻐하며, 열린 마음으로 값진 예수 탄생일이 되길 바란다”고 하는 말은 스님의 진심 어린 단골 멘트라고 한다.
종교에 대한 정각스님의 신조는 ‘열린 마음, 열린 종교’다. 스님은 “각 종교가 내세우는 교리는 자비, 사랑, 박애, 인내 등이다. 내 종교만 소중하고 다른 종교를 배척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믿음 자체가 찬양받는 것”이라고 했다.
열린 종교 실천을 위해 스님이 행동의 바탕으로 내세우는 건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사상이다. 한국 불교의 전통 사상으로 화해와 회통을 근간으로 하는 논리체계다.
“화쟁사상은 비단 불교계에만 국한된 이론은 아닙니다. 화쟁사상의 목적은 결국 ‘다툼을 화해시킨다’는 것이죠. 종교 간의 소소한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싸워도 모두 모여 함께 싸워야죠. 그래야 종교 간에 신뢰가 돈독해지고 융화하는 방법이 생겨납니다.”
![]()
정각스님이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을 실천하는 데엔 가족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몇몇 가족은 기독교,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다. 종교 간 화합이 가족 내에서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여러 종교를 갖고 있는 동생과 조카들은 분명 내 종교적 소신을 지키는 힘”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내력을 보면, 사촌동생이 경북 고령군 벌지교회의 김중건 장로다. 김 장로는 벌지교회를 직접 세웠다. 5촌 조카는 경남 하동군 쌍계사 주지스님을 지낸 원정스님(현 경남 남해군 보리암 주지)이다. 친누나의 둘째 아들은 태고종 지현스님이다.
한 살 아래 또 다른 5촌 조카 역시 경북대 의대 학장과 대한의사협회 이사를 지낸 김재식 경북대 명예교수로 대구 서문교회 장로다. 또한 사촌누나의 딸은 대구 삼덕성당 황 스텔라 수녀다. 그야말로 여러 종교가 끈끈한 가족관계로 얽혀 있는 셈이다.
정각스님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과 이해심이 남다르게 커졌다고 말한다. 
“종교의 시작은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죠. 시골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김 장로는 가끔 법정스님, 춘성스님의 책을 빌려가 열독했지요. 스텔라 조카도 불교 등 다른 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작은 노력이 가족으로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에요.”
가족끼리 서로의 종교를 이해한다지만 그래도 막상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색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정각스님이 아닌 동생에게 물었다. 김 장로는 인정은 하면서도 갈등이 아닌 차이일 뿐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스스로가 좋아서 믿는 종교인데 이 종교가 좋고 저 종교는 나쁘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꺼. 종교의 진리는 분명 하납니더. 하지만 종교마다 구원의 문제, 심판의 정도는 다를 수 있지예. 거기서 형님 등과도 견해는 다를 수 있습니다만 종교가 존재하는 의미 전체를 넓게 인식하면 서로 벽을 허물고 먼저 다가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더. 더구나 가족 아닌겨.”
정각스님 가족에게서는 이처럼 종교 간 신뢰를 구현하는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실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종교 간 신뢰와 공존을 바라는 정각스님에게 최근 일련의 종교 간 갈등 소식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던 정각스님은 오히려 한국 종교의 구조적 장점을 빗대어 향후 종교계의 자성과 그에 따른 긍정적 변화를 기대했다.
“한국에서 다종교가 오래 지속돼온 건 어찌 보면 국가적으로 다행한 일이에요. 이는 성지 순례 때문에 외국에 가면 현지 종교인들에게도 말하는 부분입니다. 그들도 그것이 너무나 부럽다고 해요. 종교끼리 화합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내 종교가 소중하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자연히 자기 종교에 대해 감사하고 또 참회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종교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유재영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