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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에 휩쓸린 어르신 소형차가 덮치는 상황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어요”

최승일 씨가 폭우 당시 급류에 휩쓸린 어르신을 구했던 도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대통령 표창 받는 광주 ‘폭우 영웅’ 최승일 씨
2025년 7월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이날 정오를 넘긴 시각부터 광주를 비롯한 전남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천 근처에서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던 최승일(48) 씨도 심상치 않은 빗줄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하천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건물 앞에 있던 도로는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로 인해 순식간에 침수됐다.
공업사를 지나 마을 뒷산 방향으로 뻗어 있던 도로가 깨지기 시작했고 위쪽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왔다. 이곳에 30년 가까이 살면서 20년 넘게 공업사를 했지만 이 정도로 비가 오고 물이 넘친 건 처음이었다.
혹시나 공업사가 피해를 입을까 대비하던 찰나, 도로 맞은편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경사진 도로 위쪽에서 쏟아진 빗물에 한 어르신이 휩쓸려 내려와 아스팔트 바닥 사이에 몸이 낀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최 씨는 맨몸으로 도로 한가운데에 쓰러진 어르신을 향해 돌진했다. 여전히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고 도로는 허리에 가까울 정도로 침수된 데다 물살도 거셌다. 최 씨는 우선 어르신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급류 속 아스팔트에 낀 어르신을 빼내는 것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맨몸으로 들어간 최 씨는 지켜보던 공업사 직원들에게 쇠지렛대, 판자 등 장비를 가져오도록 했다.
“사실 떠내려오는 물에 뭐가 섞여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때는 위험하고 어쩌고는 보이지도 않았죠. 그냥 무턱대고 들어갔어요.” 최 씨는 직원들의 도움으로 급류와 사투 끝에 어르신을 구출해낼 수 있었다. 폭우가 휩쓸고 간 후 최 씨는 말 그대로 ‘스타’가 됐다. 구조된 어르신 가족의 감사 인사는 물론 지역 인사의 격려 전화,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졌다. 집중호우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조한 공로로 행정안전부는 그에게 ‘호우대응 유공 정부포상’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손이 먼저 나가거나 앞에 나서는 성격으로 여태껏 득을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날도 오더라고요.” 12월 29일 시상식을 앞두고 ‘폭우 영웅’을 만났다.

사진 C영상미디어

당시 광주에 426㎜ 물폭탄이 쏟아졌다고요.
낮 동안 비가 엄청 쏟아지더니 난리가 났죠. 오후 3시쯤 넘어서였나. 건너편 마을 위에 사람이 갇혔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부터 갔죠. 현장에 나온 공무원이랑 몇몇 사람이 차 안에 있다가 수위가 높아져서 빠져나오지 못한 어르신을 구하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잠시 구조를 돕다가 다시 공업사로 돌아왔어요. 산 위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너무 거세 직원들이랑 ‘뭔 일 나겠다’ 싶어서 모래주머니라도 준비하려고 했죠. 공업사 1층에서 무심코 도로 쪽을 쳐다봤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라고요. 그 어르신이 물에 휩쓸려 굴러오고 있었어요.

물살이 센 데도 무작정 들어가셨어요.
제 눈으로 봤잖아요. 처음엔 일어나시겠지 했는데 못 일어나시는 거예요. 심각한 상황이다 싶어 바로 뛰어들었죠. 옆에서 말릴 만큼 위험했지만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 하니까요. 평소 같으면 몇 초면 걸어갈 거리인데 체감상 한 시간은 걸어간 느낌이었어요. 산 쪽에서 내려오는 물살을 역으로 거슬러야 해서 그랬던 거죠. 거기에다 물에 휩쓸려 내려오는 쓰레기나 나무 같은 것들이 제 다리를 치기도 했어요. 공업사 마당 울타리를 잡고 간신히 어르신이 계신 데로 갔어요.

구조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도착해서 어르신을 일으켜 세우려니까 꿈쩍도 안하는 거예요. 사실 당황했죠. 저도 나름 힘이 좋아서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르신 다리가 깨진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 있었어요. 원래 도로는 이미 깨져서 날아갔고요. 깨진 아스팔트를 들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역부족이더라고요. 위쪽에서 물은 계속 쏟아져 내려오고 물속에 섞인 물건들은 어르신이랑 저를 때려대고 무엇보다 어르신이 숨을 못 쉴 것 같더라고요. 일단 우리 건물 쪽에 있던 직원들한테 나무판자를 달라고 했어요. 판자로 떠내려오는 물을 막으면 어르신이 얼굴 정면으로 오는 물을 피할 수 있어 숨 쉴 공간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것부터 했죠.

최승일 씨가 7월 17일 폭우 당시 어르신을 구하던 모습. 사진 최승일

최승일 씨가 7월 17일 폭우 당시 어르신을 구하던 모습. 사진 최승일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고요?
사람 힘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렇다고 어르신 다리를 덮은 아스팔트를 무작정 깨자니 잘못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그래서 직원들한테 공장에서 쓰는 쇠지렛대를 가져오게 했어요. 그걸로 아스팔트를 들어내면서 깨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깨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차 내려온다”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정신 차리고 정면을 보니까 바로 위에서 소형차 한 대가 급류에 휩쓸려 우리 쪽으로 흘러오고 있는 거예요. 직원들이 나서서 그 차를 막고 있는 사이 아스팔트를 깨고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어요.

구출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다치진 않았나요?
한 시간 좀 넘게 걸렸더라고요. 저도 그렇지만 어르신이 물을 너무 많이 먹고 체온이 떨어져서 휴게실로 모셔 몸을 녹이게 했어요. 저도 마당에 누워서 한참 동안 기진맥진했어요. 손이랑 몇 군데가 찍혔지만 어르신에 비하면 전 다쳤다고 말할 수도 없죠.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치료받으셨다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저희 공업사에 와서 인사도 하고 어르신께서도 영상 편지로 고맙다고 말씀도 전해주셨어요.

어르신은 원래 알던 분이었나요?
전혀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저희 사무실 뒤에 있는 건물에서 일하시던 분이었더라고요. 어르신도 갑자기 한 번에 물이 내려오니까 거기에 휩쓸린 거였죠. 살아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면 좋겠어요.

맨몸으로 급류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어릴 때부터 좀 나서는 성격이었어요(웃음). 싸움 나면 나서서 말리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고 오해도 많이 받았죠. 언젠가 어머니께서 “절대 나서지 마라”고 할 정도였죠. 그날도 다른 생각을 하기보다 그냥 본능적으로 나선 것 같아요.

짧은 순간에 필요한 도구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공업사를 하다 보니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것 같아요. 손으로 여러 장비를 다루다 보니까 그때 필요한 것들이 생각난 거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제 손한테 참 고맙더라고요. 항상 ‘손이 먼저 나간다’고 잔소리 들었는데(웃음). 그래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요. 직원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가능했죠.

그날 이후 ‘스타’가 되셨어요.
우연히 저희 직원이 제 모습을 뒤에서 영상으로 찍었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약속이 있었는데 참석을 못하는 바람에 사정을 설명하면서 영상을 지인들에게 보냈어요. 이후에 언론사에 제보되고 알려지면서 연락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KIA 타이거즈 경기에서 시구도 하고 연예인이 된 줄 알았다니까요.

정부포상으로 대통령 표창도 받게 되셨어요.
가문의 영광이에요. 항상 도와주려다가 손해만 봤다고 생각했는데 복이 터졌다는 생각도 들어요.

만일 비슷한 상황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물론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제 성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또 나서겠죠. 불의를 못 참고 손이나 몸이 먼저 나가서 문제지요. 원래 그런 사람이니 주저 없이 제 할 일을 하겠죠.

오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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