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디저트·영양제 뚝딱 미래 식량? 우주 식량? 3D 푸드 프린터에 맡겨!

3D 푸드 프린팅 기술 보유한 탑테이블 유현주 대표
스테인리스 외관의 기계 안에서 작은 박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펜촉처럼 가느다란 노즐을 하단에 장착한 박스가 케이크에 다다르자 주황빛 앙금이 실처럼 뽑혀 나왔다. 30초도 되지 않아 흰 케이크 위에는 ‘Happy Birthday’라는 문장이 새겨졌다. 3D 푸드 프린터의 솜씨다.
글씨뿐만이 아니다. 복잡한 문양의 디저트도 뚝딱 만들어낸다. 원하는 만큼 여러 겹 쌓아올려 두께를 조절할 수 있고, 바닥면의 고저를 자동 측정해 울퉁불퉁한 표면에서도 높이를 일정하게 맞춘다. 사람의 손기술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섰다.
2월 초 서울 상암동에서 3D 푸드 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탑테이블 유현주 대표를 만났다. 유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이 장면을 먼저 시연했다. 플라스틱, 금속, 돌까지 다루는 산업용 3D 프린터와 원리는 같지만 ‘음식을 출력한다’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다. 설명보다 직접 보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연구와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미국의 한 3D 푸드 프린팅 회사는 2017년 이미 피자를 만들었고 일본은 기존 제품보다 풍미를 강화한 버터를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한 레스토랑은 모든 요리를 프린터로 만든다. 국내에선 2019년 설립된 탑테이블이 이 분야를 개척해왔다.
유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사회적약자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외식업을 운영하던 NGO 활동가 출신이다. ‘디저트를 기계로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엔지니어들과 3년간 머리를 맞댄 끝에 3D 푸드 프린터 ‘푸디안’을 개발했다.
푸디안은 2023년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개인의 영양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영양제를 출력하는 프린터 ‘잉크(iink)’로 CES 베스트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전 세계 30개 기업에만 주는 상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기계가 음식을 만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하루치 영양분을 알약 하나에 응축한 미래 식량, 조리가 어려운 우주 환경에서의 식사를 해결해줄 수 있는 기술이다. 산업계가 푸드 프린팅을 첨단 기술로 바라보는 이유다.
유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25년 말 출범한 ‘K-푸드 수출기획단’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3D 푸드 프린팅처럼 일반 식품을 기술로 확장하는 푸드테크 분야의 자문을 맡고 있다.

사회활동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북한이탈주민의 고용문제가 사회적 화두였던 때가 있었다. 이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서울 강남에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타르트 전문점을 열었다. 일본에 가서 타르트 기술을 배워올 정도로 몰두했다. 그러다 문득 ‘이 디저트를 기계로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3D 프린터는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는 도구 아닌가. 그렇다면 디저트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개발에 뛰어들었다.
3D 프린터는 엔지니어의 영역 아닌가. 어려움은 없었나.
이렇게 많은 난관이 있을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D 푸드 프린터의 원리는 쉽게 말하면 가래떡을 뽑는 것과 비슷하다. 반죽을 파이프로 밀어내 모양을 만드는 방식이다. 다만 차이는 아주 얇은 노즐로 재료를 분사해 여러 겹을 쌓으면서도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식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기계 구조와 소프트웨어까지 익혀야 했다. 개발자도 생소한 분야라 소통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재료별 배합비를 찾는 과정이었다. 앙금은 다른 재료에 비해 출력이 수월하지만 단호박이나 딸기 등 뭔가를 섞는 순간 물성이 달라진다. 출력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원료의 배합 비율을 바꿔가면서 일일이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 100번 만에 완성한 재료도 있지만 대체육이나 배양육처럼 조직감까지 구현해야 하는 식재료는 1000번을 시도해도 답을 찾기 쉽지 않았다. 배합비를 완성하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3D 푸드 프린팅과 미래 식량의 접점은.
결국 밀도의 문제다.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응축된 영양분을 모두 담으면서도 크기는 작아야 한다. 여러 성분을 압축해 아주 작게 만들어내는 3D 푸드 프린팅은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긴요한 무기가 된다. 이 기술이 처음 주목받은 배경도 우주인을 위한 식량 개발이었다. 중력이 다르고 신진대사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전투 식량이나 소화가 어려운 고령층 식단에도 활용 가능할 것이다.
아직은 낯설다.
각종 부품이나 시제품을 출력하는 산업용 3D 프린터도 처음부터 보편화된 것은 아니었다.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는 식품공학과나 조리학과, 미래 식량 연구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점차 생활 속으로 스며들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들을 위한 과학관 체험 콘텐츠로 제공하고 대형 카페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접점을 넓히고 있다.


사람보다 생산성이 더 뛰어난가.
레터링을 예로 들면 숙련자가 필요하고 한 번에 하나의 케이크만 작업할 수 있다. 컨디션에 따라 품질도 달라진다. 하지만 기계는 고장이 나지 않는 한 설정 값에 따라 밤낮 없이 동일한 결과물을 낸다. 단순 비교로는 세 배 이상 생산성이 높다.
영양제 출력 프린터 ‘잉크’에는 AI를 접목했다.
사용자가 여러 질문에 답하면 AI가 개인의 영양 상태를 분석해 디저트나 물방울 형태로 맞춤형 영양제를 출력한다. 핵심은 데이터 기반 분석이다. 잉크는 각 개인별 상황에 맞게 AI가 질문을 던지고 누적 데이터를 활용해서 연령과 성별에 따른 상대적 영양 상태를 분석해준다. 음식을 삼키는 게 어려운 연하곤란 등을 겪는 경우 식감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CES에서 2년 연속 주목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 부스에 방문객이 몰려 식사는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다. 전문가의 피드백도 큰 자산이 됐다. 한 번 나갈 때마다 에너지, 시간 등 출혈이 크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기관에서도 국내 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준다. 2027년에도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주요 고객사가 궁금하다.
주로 대기업이다.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다루는 기업과 협업이 많다. 없는 시장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어렵지만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성을 이뤄냈다고 본다. 올해는 국내외 시장을 더 열심히 두드려 성과를 가시화하겠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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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