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안심병원 서울시 서북병원 송은향 신경과장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생일을 줄줄 외고 노래연습장에서 몇 곡쯤은 화면 도움 없이도 술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억에 숭숭 구멍이 난다. 기억의 중추인 해마는 40세 이후부터 매년 0.5%씩 줄어든다. 뇌의 변화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65세 전후 그 무게가 약 1360g인데 90세가 넘으면 1290g으로 줄어든다. 뇌의 부피가 감소한다는 것은 뇌 기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나 치매환자의 경우 심한 뇌 위축이 발견된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발행하는 ‘건강in’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치매환자는 약 100만 명, 2039년에는 20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늘어나는 치매환자에 대비한 정부 대책 중 하나가 ‘치매안심병원’이다. 2019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 전국 18개의 치매안심병원이 운영 중이다. 2024년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서북병원이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됐다.
치매의 대표적 증상은 기억력 및 인지능력 저하다. 처음에는 타인을 잊고 나중에는 자신을 잃는다. 뇌 구조 변형이 생기면서 성격 변화가 있거나 섬망 증상이나 폭력 성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종의 행동심리증상인데 이런 증상이 있는 경우 가정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기가 어려워진다. 가족의 돌봄이 버거운 치매환자를 전담해 진단·치료 등 치매 관련 의료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곳이 치매안심병원이다.
치매안심병원에는 치매환자 전용 병동,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실 등이 있고 이들을 위한 전담인력이 있어서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상태가 호전되면 치매안심센터와 연계해 가정으로의 복귀도 지원한다. 환자들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치매환자를 돌본 서울시 서북병원 신경과 송은향 과장은 치매안심병동을 총괄한다. 치매안심병원에는 전담팀 41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 중 신경과 전문의가 3명, 간호사가 17명, 간호보조인력이 16명, 전문치료사 5명이 근무 중이다. 치매안심병동에는 2024년에만 6336명의 행동심리증상 치매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무료간병 입원치료서비스를 받았고 잘돌봄프로그램 역시 연 210회 이상 운영됐다.
송 과장은 “문제 행동이 심각해 타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조절이 안되거나 입소를 거부당한 중증 환자들이 주로 온다”며 “30~60일 정도 머물며 약물치료, 비약물치료, 교육 등을 거쳐 진정되면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병원의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가 치매다.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초기에 치매 전문의를 찾는 게 중요하다. 만약 예전의 기억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인지기능 저하로 그동안 잘 해왔던 일들을 잘 못하게 되고 일상생활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조기에 발견하면 그만큼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나?
경증일 때 진단을 받으면 중증으로 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초기증상은 기억력 장애 정도지만 점점 언어기능, 사고와 판단기능, 공간지각기능 등의 장애가 이어지고 나중에는 성격이 변하거나 섬망 등 난폭한 행동심리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가족이나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점점 커진다.
서북병원이 서울의 첫 치매안심병원이다.
2023년까지 공립요양병원을 중심으로 16개 병원이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됐다. 2024년 1월에 경기 지역에서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이 치매안심병원이 됐고 3월에 서북병원이 서울 지역의 첫 치매안심병원이 됐다. 그동안 서울·경기 지역에서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거주 지역에서 먼 곳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젠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있게 됐다.
치매안심병원은 일반 병원과 어떻게 다른가?
서북병원이 치매환자를 돌본 건 2004년부터다. 2022년 치매환자에게 적합하게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2024년 3월에 보건복지부 지정 치매안심병원으로 전환됐다. 가정이나 센터에서 돌보는 데 한계가 있는 환자들이 우리 병원으로 온다. 현재 치매병동은 31개 병상을 갖추고 있고 환자의 치매증상 완화를 도울 수 있는 조명과 색채, 동선을 갖춘 1인 병실 등 효과적 치료를 위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간병서비스도 제공한다고?
치매환자 중에 문제 행동이 심한 경우 가족들이 제어하기 힘들다. 그런 환자들이 전문치료를 받고 다시 가정으로 원만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의 큰 목표다. 행동심리증상이 심한 치매환자는 전문의의 치료와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전문의료진의 역할은 이들을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치료하고 퇴원 후에도 꾸준한 관리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무엇보다 치매의 경우 간병의 부담이 큰데 전담병원에서는 의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여전히 보호자가 간병을 해야 한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 병원이 치매진료를 시작한 2004년에는 치매의 정도가 다양했다. 경증부터 중증, 말기 환자까지 있었다. 현재는 장기요양서비스 등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겨서 경증 환자들은 데이케어센터, 방문요양서비스 등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한 경우는 요양병원에서도 안받아주는 등 갈 곳이 많지 않았다. 전담병원이 생기면서 그런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중증 환자도 증상이 완화될 수 있나?
약물치료와 더불어 비약물치료를 병행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킨다. 사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굉장히 바쁘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신경과전문의뿐 아니라 임상심리사, 음악·미술치료사가 상주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부분이 생의 마감을 살던 집에서 하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재택치료나 방문 주치의 사업들이 생긴 것이다. 치매안심병원이 지향하는 것도 같은 방향이다.
비약물치료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인지재활을 위한 작업치료가 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광치료, 향기치료 등을 진행한다. 특히 행동심리증상이 심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스노젤렌실’이라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 다감각 자극을 제공한다.
스노젤렌실은 아주 낯설다.
집중치료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을 닫고 소파에 앉으면 정서가 편안해진다. 조명이나 조도를 심리적 안정에 맞게 설계했다. 마음이 잔잔해지고 향기도 은은하게 퍼진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호전된 사례가 있나?
요양병원에서 전원 온 환자가 있었다. 자녀가 너무 힘이 부치니까 요양병원에 모신 건데 막상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니까 마음이 안 좋았던 거다. 우리 병원에 올 때 침대에 실려왔다. 소변줄도 하고 있었고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욕창도 있는 상태였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의미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일단 항정신성 약부터 줄였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휠체어도 타고 나중에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더라.
약을 늘린 게 아니라 줄였는데 상태가 나아졌다니 놀랍다.
요양원에 갈 당시에 크게 넘어진 데다 파킨슨병 증세가 있었는데 항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하니까 증세가 더 악화된 거다. 모든 병은 처음에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하고 그 이후에 처방이 이어져야 한다.
첫 단추가 중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누구나 예외일 수 없다.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서울시 25개구뿐 아니라 전국에도 치매안심센터가 있다. 크게 증상이 없더라도 고령이 되면 한 번 진단을 받아보길 권한다. 65세 이상이라면 누구든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치매는 아픈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이 먼저 사라지는 잔인한 병이다. 처음에는 파도처럼 찾아오지만 나중에는 해일처럼 몰려온다. 그래서 치매는 중증으로 갈수록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일상의 대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치매는 조기진단이 중요하고 이 시기를 놓쳐 중증에 이르렀다면 개인이 아닌 사회, 정부가 함께 그 무게를 져야 한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언어학교수 앨리스가 주인공이다. 가족력으로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앨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옥같은 고통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상실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유슬기 기자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
집 근처 전문의가 주기적 건강, 투약 관리… 방문진료도 가능
보건복지부는 2024년 7월부터 치매 진단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환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치매관리주치의에게 전반적인 건강을 점검받고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치매관리주치의는 신경과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이거나 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치매전문교육을 이수한 의사다.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치매환자는 방문진료도 가능하다. 치매환자와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치매질환과 관리방법에 대한 대면 교육·상담, 약 복용이나 합병증 발생 여부 등에 대한 비대면 관리도 제공한다.
첫해 해당 지역은 서울 강동구·노원구, 부산 부산진구, 대구 달서구, 인천 남동구, 광주 북구, 대전 중구, 울산 남구, 세종시, 경기 고양시·용인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홍성군, 전북 전주시, 전남 목포시·영암군, 경북 문경시, 경남 통영시·창원시, 제주 제주시다.
치매주치의는 의료서비스 제공 외에도 치매안심센터, 장기요양보험, 다제약물관리 등 지역사회 내 다른 서비스와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서비스 비용은 진료비와 별도로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을 적용받는다. 치매환자는 서비스 비용의 20%를 부담하면 치매와 그 외 건강문제 전반에 대해 관리받을 수 있다. 중증난치질환자 산정특례 적용을 받는 중증치매환자는 본인부담률 10%, 기타 본인부담 감면 대상자의 경우는 해당 본인부담률을 적용한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치매환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중앙치매센터 누리집에서 시범사업 대상 지역과 참여 의료기관을 확인해 방문 후 의사에게 해당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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