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후 개선 추세에 있던 소득불평등지수가 지난해 악화되면서 정부가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특히 사회초년생인 청년이 입는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청년희망키움통장 제도를 신설한 점이 눈에 띈다.
청춘.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을 때다. 그러나 청년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수천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 빚을 떠안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곳이 비정규직인 게 현실이다. 고용 불안이나 저임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신의 월급으로는 살(buy) 집은커녕 살(live) 집도 마땅치 않다. 자신감과 근로 의욕은 끝없이 하락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장애인·노인 지원처럼 청년 지원을 확대하는 이유다. 다만 청년 지원 정책은 자립에 방점이 있다. 청년이 자금을 형성하고 꿈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몇 달 전 인터넷 검색어를 뜨겁게 달군 ‘청년통장’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용어대로 청년만 가입할 수 있는 통장이다. 시행하는 기관별로 요건이나 적립금액은 다르지만 목적은 ‘청년 자립 지원’으로 같다. 청년의 자립의식을 고취하고 역량을 강화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청년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축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청년희망키움통장 제도를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대상은 생계 수급을 받는 청년 5000명으로 한정해 자산 형성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청년희망키움통장에 가입한 경우 근로·사업 소득 중 10만 원을 공제해 청년희망키움통장에 자동 적립하고 월 30만 원을 추가 지원한다. 매월 평균 40만 원씩 저축해 만기시 1500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청년희망키움통장 제도 내년 예산안에 반영
서울에 거주하는 김영현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터 쉰 적이 없다.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등록금과 용돈을 벌었다. 졸업 후 수중에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뿐이었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살아 월세나 생활비가 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부터 김 씨는 생각했다. ‘적금을 들자.’ 졸업 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비정규직 과학실무사로 일하게 된 그는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알뜰살뜰 5만 원, 10만 원씩 소액 적금을 늘려갔다.
▶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과학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청년통장 가입자 김영현(25) 씨는 “ 청년통장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C영상미디어
어느 날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희망 두 배, 청년통장’을 알게 됐다.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저축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을 지급하는 이자율 100%의 저축이었다. 근로청년이 주거·결혼·교육·창업 등을 목적으로 매월 5만·10만·15만 원을 2~3년간 저축하면 같은 만큼을 추가 적립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는 월 15만 원씩 3년간 저축을 시작했다. 세 번 연체되면 가입이 자동 해지되는 조항이 있어 매달 적금일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내년 8월 만기가 되면 돌려받는 금액은 1000만 원 내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이 돈을 독립 자금이나 결혼 비용에 보탤 예정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청년통장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에게 문화생활과 재무상담 수업 등을 제공했다. 영화·연극 관람료가 부담스럽던 청년이 세상 밖으로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 김영현 씨는 “재무상담을 통해 계획을 갖고 소비를 하게 됐다”며 “청년통장은 내게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자칭·타칭 청년통장 홍보대사로 불린다.
아쉬웠던 건 친구들에게 권했는데도 제대로 확산되지 않은 점이다. 우선 타 지역 친구들에게 권할 수가 없었다. 사업이 일부 지역에만 한정돼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일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수급 대상이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부끄러워했다. 서울시가 청년통장 자격 요건으로 제시한 본인 소득은 월 200만 원 이하다. 김 씨는 “월 200만 원을 버는 청년보다 못 버는 청년이 많을 거다. 오히려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에 요건이 된다면 최대한 활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청년 지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부지런히 청춘을 즐기고 있다.
청년통장은 ‘통장 요정’으로 인기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방송인 김생민 씨가 ‘슈퍼 울트라 그뤠잇!’을 날리며 최근 다시 회자됐다. 그는 “청년통장이 대박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청년통장은 지금까지 서울, 경기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운영돼왔고 최근 부산, 대전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하우스 푸어’ 주택 매입해 재임대
▶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서울 가좌지구 행복주택 ⓒ국토교통부
정부가 가처분소득을 확대하기 위해 시행 예정인 청년희망키움통장 외에도 현재 시행 중인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희망·내일키움통장도 있다. 저소득층이 일을 통해 자립하고 목돈을 마련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매월 일정액을 본인 계좌에 적립하면 정부에서 매월 추가 적립액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3년 후 최대 26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 중심에는 가계소득 향상이 있다. 주택담보대출 상환으로 생계가 곤란한 가구, 일명 ‘하우스푸어’의 주택을 매입해 재임대하는 방식을 통해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더불어 저렴한 공적임대주택 지원을 올해 대비 2조 5000억 원 확대해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 완화에도 나선다. 또 청년셰어하우스, 역세권 청년주택 등 청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제시된 재난적 의료비 대상을 4대 중증질환에서 모든 질환으로 확대 지원하는 데 35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전국 치매안심센터의 운영을 지원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이행해나간다. 생활 밀착형 대책도 마련됐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낙후한 전국 160개 지역에 100원 택시 등을 지원하고 통신요금 비교 서비스를 제공해 가계 통신비 절감을 유도할 방침이다.
2018년 ‘소득주도 성장’ 예산은?
저소득층·취약계층 소득기반 확충 2018년부터 5세 이하 아동에게 10만 원의 수당이 도입된다. 또 소득 70% 이하의 65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기초연금은 25만 원으로 인상되며 노인일자리는 51만 4000개로 확대된다.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 생활지원금도 최대 46만 8000원까지 신규 지원된다.
서민 생활비 경감 정부는 생계곤란한 가구의 주택을 매입해 재임대하는 등 주거비 부담 경감 정책이 시행된다. 주택기금 1000억 원을 출자해 최대 1000호를 매입할 계획이다. 초등학생 이하 독감예방접종을 모두 지원하고, 977억 원을 들여 치매 국가책임제 이행을 시작한다.
소상공인 지원 30인 미만의 고용 사업주 원칙으로 근로자 1명당 최대 월 13만 원을 지원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완화와 고용유지를 지원한다. 소상공인 상생자금에도 200억 원이 투입된다.
지역 균형발전 도시재생 지역 기반시설 정비 등의 지원이 1조 3000억 원으로 확대되는 한편 속도감 있는 새만금 사업 추진을 위해 물류교통망을 구축한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