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화인증기업 ㈜?모션 김진환 팀장
이런 기업이 많다면 우리나라 출생률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기 딱 좋은 회사다. 우선 모든 직원이 시차출퇴근제를 쓴다. 오전 7시부터 10시 사이 자유롭게 출근한다. 월 4회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은 사무실이 조용하다. 가족이 아파서 돌봐야 할 때도 집에서 일할 수 있다. ‘자녀 초등학교 입학 휴가’와 ‘결혼기념일 휴가’도 따로 있다. 이때 회사 눈치는 안 봐도 된다.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출산·육아지원제도 이용자 대부분이 ‘아빠’라는 점이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모션은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다. 전 직원 41명 중 83%(34명)가 남성이다. 김진환 경영지원팀장은 “양육을 ‘엄마 몫’으로 돌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실질적 정보 얻는 ‘아빠 육아 소모임’
모션은 2022년 7월부터 출산휴가 후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때 김 팀장은 출산·육아지원제도 전반을 함께 손봤다. 형식뿐인 제도가 아닌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제도를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남성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남성 출산휴가 10일에 더해 재택근무 10일을 쓸 수 있게 한 것도 그중 하나다. 산후조리원에서 하는 ‘모자동실’을 아빠 또한 경험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배우자 태아검진 휴가도 마찬가지다. 김 팀장은 “아이는 엄마 혼자 갖는 게 아니므로 태아검진에는 부부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사내에 아빠들의 육아 소모임도 만들었다. 이름은 ‘아빠는 모션 히어로’다. 김 팀장을 포함해 워킹대디 네 명과 예비아빠 한 명까지 총 다섯 명이 활동한다. 매달 한 차례 회사 회의실에서 모인다. 김 팀장은 “주변에 여러 아빠 모임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는 목적이지만 아이를 잘 키우자는 일념으로 모인 우리는 오직 육아 얘기만 한다”고 했다.
매달 주제는 바뀐다. 가장 최근 주제는 ‘아이들과 놀기 좋은 가족 휴가지’였다. 이에 앞서 양육 시 발생하는 배우자와의 갈등과 해결방안, 효율적인 육아휴직 활용법 등 정보도 나눈다. 1년에 한두 번은 다 같이 시청각 교육도 받는다. 아이들의 미디어 노출, 아이 약물복용 상식 등에 관해서다. 실질적 정보를 얻어가니 아내들도 좋아한다.
1년에 한 번씩은 다섯 가족이 모두 모여 캠핑도 간다. 이날은 엄마들이 쉬는 날이다. 김 팀장은 “아이들 나이대가 세 살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하지만 몇 차례 캠핑 경험으로 친해져 아이들끼리 알아서 잘 논다”면서 “엄마들 또한 서로를 ‘언니’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이었던 직원이 이들의 활동을 보고 출산을 결심하기도 했다.
회사가 아빠만 챙기는 건 아니다. 아이를 가진 직원을 위한 ‘임신기 재택근무’ 제도와 개인별 맞춤형 난임 휴가·휴직도 시행 중이다. ‘육아휴직 대체 보상’도 있다.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적극 채용하지만 적임자가 없을 경우 팀원들에게 휴직자의 업무를 나눠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김 팀장은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쏠쏠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휴직 후 복귀한 직원이 업무를 분담해준 팀원들에게 “밥을 사겠다”고 하면 오히려 대신 일을 맡았던 직원들이 “내가 사겠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조직문화는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김 팀장은 “매년 상승 중인 회사 매출이 출산·육아지원제도 덕분인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3년 회사가 자체 진행한 조직문화진단에서 ‘워라밸(일·생활 균형)’ 점수는 95점이었다. 2022년 조사에서는 100점이 나왔다. 전 직원이 만점을 준 거다. 김 팀장은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몰입도’ 점수 또한 매번 높게 평가된다”면서 “쉴 때 확실히 쉬어주니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이나 주식을 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경영진 의지 없다면 불가능
김 팀장은 대기업에서 인사업무를 하다 2019년 둘째 출산과 함께 모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덟 살과 여섯 살 두 딸을 더 잘 키우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의 아내도 ‘보상이 적더라도 유연근무제가 있는 회사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사인 아내는 직업 특성상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다. 자연히 아이들 등원·등교는 그의 담당이 됐다. 김 팀장은 “조직문화에서는 금전적 보상보다 비금전적 보상이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금전적 보상에서 핵심은 시간”이라고 했다.
“주변의 아빠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과 놀 시간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없으면 못 쓴다. 그런 만큼 시간이 곧 열쇠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이 굉장히 이상적인 제도인 이유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유독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약 10년 전 대기업 재직 당시 출장을 갔다 경험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일·가정 양립지원제도에서 크게 배웠다. 김 팀장은 “인솔을 담당한 현지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기에 물어봤더니 아이가 있어 출근이 늦는다고 하더라”면서 “10년 전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했다.
오랜 관찰과 고민의 결과를 모션의 출산·육아제도에 담은 셈이다. 물론 경영진의 의지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김 팀장은 “회사 경영진도 가족친화정책을 운영해야 좋은 인재가 계속 영입된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초등학교 입학 휴가는 대표이사가 직접 낸 아이디어다. 제도 도입이 끝이 아니라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션은 2019년 설립됐다. 비교적 신생회사지만 업계에선 이미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출산·육아지원제도 벤치마킹을 원하는 대기업의 연락도 왕왕 받는다. 그럴 때마다 김 팀장은 “사람에 대한 투자다 보니 단기적인 성과를 꾀해서는 안된다”면서 “무엇보다 경영진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부모가 직접 아이 돌보는 사회
2023년에는 출산육아지원 우수·가족친화우수 기업으로 각각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상도 받았다. 같은 해 경기도는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지정했다. 김 팀장도 올해 두 차례나 상을 받았다. 지난 5월 고용부와 여가부는 출산육아지원·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시행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장관상을 수여했다. 그는 앞으로도 도입하고 싶은 제도가 많다고 했다.
“요즘도 계속 고민한다. 경력단절 없고 경제적인 손해도 최소화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 차원에서 구상 중인 게 하나 있다. 육아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풀타임 재택근무 신청을 받고 임금은 80%만 지급하는 방안이다. 이때 근로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선택하면 나머지 20%를 정부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아주 어린아이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 볼 일이 없다.”
고용부 워킹맘&대디 현장멘토단으로도 활동 중인 김 팀장은 저출생 시대 극복을 위한 제언도 덧붙였다.
“저출생·고령화 시대인 만큼 실버타운과 신혼부부희망타운을 믹스한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싶다. 아이를 돌보는 노인일자리 창출과 맞벌이 신혼부부들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하는 안정적인 공간 말이다. 주거층이 확실하니 주변 상권 구축도 용이할 것 같다.
소규모 기업들이 대거 모여 있는 지식산업센터 내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면 출산과 육아의 부담도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김 팀장은 “매일같이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만 결국 추구하는 건 단 하나”라면서 “아이를 부모가 직접 돌볼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지현 기자
박스기사
㈜모션의 출산·육아지원제도
*전 직원 시차출퇴근제(오전 7~10시 사이 출근)
*전 직원 월 4회 재택근무
*임신 근로자 재택근무
*난임휴가 및 난임휴직
*출산휴가 후 육아휴직 의무 사용
(자동육아휴직제 최소 6개월 의무, 1년 이상 장기 사용 가능)
*육아휴직 시 대체인력 적극 채용 및
내부 대체근무자에게 인센티브 지급
*배우자 출산휴가(10일) 후 재택근무 10일 자동 부여
*배우자 태아검진 휴가·가족돌봄 휴가·
자녀 초등학교 입학 휴가·결혼기념일 휴가
*워킹대디들의 소모임 ‘아빠는 모션 히어로’ 운영
*출산축하 경조금 및 출산선물
‘대한민국 일·생활 균형 우수기업’ 찾습니다
정부 ‘워라밸’ 지원 기업에
금리 우대 등 인센티브 제공
앞으로 ㈜모션과 같은 회사가 더 많이 생길 전망이다.
7월 17일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부터 ‘대한민국 일·생활 균형 우수기업’을 선정하기로 했다. 근로자의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적극 지원하는 기업들에 금리 우대, 근로감독 면제 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종전 ‘근무혁신 우수기업’을 확대 개편한 것으로 중소·중견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던 것을 전 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선정지표에는 유연근무 도입 여부와 활용률, 주당 평균 근로시간, 연차휴가 사용률, 육아휴직 사용률, 근로시간 단축 및 초과근무 감축 노력, 휴가 사용 촉진 노력 등이 포함된다.
앞서 6월 1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남성의 육아 참여를 늘리기 위한 육아기 유연근무제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연근무 운영모델을 개발하고 확산하며 기업이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근로자 1인당 장려금을 월 최대 30만 원까지 1년간 지급하기로 했다. 또 육아기 근로자가 유연근무제 사용을 신청하면 사업주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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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