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그’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30분. 이부자리를 개고 남편과 함께 어둑한 새벽길을 걸어 교회로 향한다. 부부의 새벽기도는 벌써 11년째 굳어온 일상이 됐다. 남편은 이 교회 목사다. 기도를 마치고 중학생 두 아들의 등교 준비를 시작할 무렵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굴까.
“가겟집 박씨가 올갱이 잡는다고 새벽부텀 물에 들어갔는디, 갑자기 온몸이 퉁퉁 붓네유. 이를 어쩐대유?”
상태를 보니 갑자기 찬물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한랭두드러기. 응급조치를 하고 잠깐 한숨을 돌린다.
벌겋게 오른 박씨의 두드러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고개를 돌려보니 보건진료소 창문에는 이미 푸른 새벽 기운이 말끔히 가셔 있다. 충북 청원군 금관리 보건진료소에서 ‘1인 보건소’를 운영하는 한명자(韓明子·43) 소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전 9시, 그의 ‘공식적인’ 근무 시간이 시작되는 시간. 농번기인 요즘은 감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 사흘째 계속된 가마골 김씨 아주머니의 기침이 조금 잦아들었다. 진료소의 물리치료실은 동네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웃음소리도 커져간다. 서너 명의 환자를 보고 나니 오전이 훌쩍 지난다. 점심식사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장부 정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할 진료카드와 회계자료 등이다.
[B]할머니 기저귀 갈아주기부터 알코올 중독자 후송까지 [/B]
늦은 점심을 들고 난 그가 이번에는 왕진 가방을 챙겨든다. 화요일은 ‘방문보건’이 있는 날. 재 너머 어암리까지 다녀오려면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3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최씨 할머니에게 드릴 기저귀도 챙겼다. 혼자 사는 최씨 할머니에게 매주 한 번씩 기저귀를 갖다 드리는 것도 한 소장의 중요한 왕진 업무 중 하나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마을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산골마을의 짧은 해가 기울어간다. 비로소 엄마로 돌아온 그는 아이들 저녁 준비로 다시 분주하다.
가족이 둘러앉은 밤 10시 무렵,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깊은골’ 정씨의 이웃 주민이다.
“길을 가다 한쪽에 뭔가 있어 보니 정씨더라구유. 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허는디, 쓰러져서는 말을 안 들어유. 병원차 불러야 쓰겄는디유.”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지 한 달도 채 안돼 또 술을 마신 모양이다. 읍내 병원에 연락해 앰뷸런스를 불렀다. 앰뷸런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보건진료소에 들러 그와 그의 남편을 태워 간다. 술에 취한 정씨를 제어할 사람은 마을에 이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씨를 병원으로 보내고 보건진료소로 돌아오니 시간은 벌써 자정이 훌쩍 넘었다. 부부는 그냥 마주보며 말 없는 웃음을 나누는 것으로 하루의 마감 인사를 대신한다. 그제야 진료소의 불도 꺼진다.
한명자 소장이 충북 보은·청원군 일대의 두메산골에서 보낸 23년의 세월은 이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충북지역 보건진료생 1기 출신이 20명이었어요.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다시 6개월 동안 별도 교육을 받았죠. 부임할 때가 되자 군청에서 우리를 앰뷸런스에 싣고 외진 마을을 돌면서 한 명씩 내려주더군요. 저는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린 다음에야 내린 것 같아요. 그때가 1981년 3월이었죠.”
그 비포장도로를 달려오면서 한 소장은 ‘배운 대로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실천의 토대는 너무 열악했다. 보건진료소 건물이 없어 폐가가 된 마을회관 건물을 고쳐 썼다. 군청에서 약품이 도착한 것은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난 뒤였다. 그나마 차트 용지도 없어 공책으로 대신했다. ‘배운 대로 실천하겠다’던 각오 역시 ‘실천 속에서 다시 배운다’로 고쳐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진료는 ‘처녀 소장’이 분만을 도울 때였다고.
“사실 애를 받았다기보다 낳은 애를 주웠다는 편이 맞을 거예요. 수업시간에 이론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애를 받아본 적이 있어야지요.”
농어촌보건의료를위한특별조치법 상에 규정돼 있는 보건진료소장의 역할은 ‘경미한 의료 행위’. 하지만 실제로 그는 미원군 9개 마을(里) 주민 800여 명의 생로병사를 모두 맡고 있다. 산파 역할부터 시작해 웬만한 종합병원의 진료과목을 조금씩 섭렵한 데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호스피스까지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B]삶, 배움과 실천의 도돌이표 [/B]
그렇게 23년의 세월이 지났다. 20년 청춘을 고스란히 벽지 산골 의료봉사에 바친 그에게 삶은 배움과 실천의 반복 그 자체였다. 그가 이곳 금관리에 온 것은 1993년. 그는 이곳에서 지난 세월의 실천 속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보건진료소 수익금으로 매달 노인 200명에게 무료 목욕 봉사를 하고, 오는 10월16일이면 무료 노인 수용 시설인 ‘섬김의 집’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섬김의 집은 남편과 함께 돈을 모아 지었다. 이런 선행이 알려지면서 한 소장은 <동아일보>의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상을 받게 됐다.
“상금이 5,000만 원이나 되더라고요. (섬김의) 집 짓느라 빚을 많이 졌는데 한시름 덜게 됐어요. 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거죠.”
인촌상 수상이 알려지자 청주의 지역방송 아침 프로그램에도 방송이 됐다. 방송이 나가자 한 아주머니가 한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23년 전 첫 부임지에서 초등학생이던 김윤숙 씨. 올해 스물 아홉 살이 된 김씨는 이제 여덟 살짜리 아이의 엄마가 돼 있었다.
“TV에서 우리 소장님 얼굴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냇가에서 놀다가 발목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정성껏 치료해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밤이면 동네 언니들이랑 보건소에도 많이 놀러갔었는데… 이제 우리 애 손 잡고 인사드리러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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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