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태평양을 넘어 아메리카대륙에서도 재확인됐다.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마에스트로 백남준 씨의 타계와 함께 인기 팝스타 ‘비’의 뉴욕 공연이 한국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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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한국의 문화대사 비”[/B]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문화대사 비”(The Ambassador)란 제목으로 그의 어제와 오늘을 2면에 걸쳐 보도, 한국스타를 하늘 높이 띄워 준 바로 그날 화려한 빛을 발하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문화의 장벽을 허문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타계” 제목의 1월 31일자 기사에서 전위작곡가이자 행위예술가 백남준은 “반세기 동안 3개 대륙과 음악·연극·설치예술 등 다양한 예술수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와 TV기술의 기존개념을 과장 또는 무너뜨리고 관객을 시각적 아름다움에 몰입시킴과 동시에 매우 부조리한 무엇을 중심에 부각시키는 기법을 구사했다”고 논평했다.
[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세계를 풍미했던 백남준 예술은 그의 죽음을 통해 부활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위예술가 백남준의 성장배경인 독일에서도 대대적인 회고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유럽 주요 일간지들은 “비디오예술을 창안하고 발전시킨 역사적 인물”(프랑스 르 몽드 2.1) “세계 최초로 비디오아티스트 명칭을 얻은 예술가”(영국 더 타임스 1.31) “비디오아트의 대부”(이탈리아 일 메사게로 1.30) 등으로 그를 찬양했다.
공교롭게 백씨의 뉴욕 장례식(2.4)과 때맞춰 매디슨스퀘어가든 시어터에서 2월 2일과 3일 콘서트를 가진 가수 비는 백남준 아트와 더불어 ‘국경 없는 한국문화’를 세계에 각인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공연을 앞두고 1월 29일 “한국의 문화대사 비는 장벽을 허물고 문화적 간격을 뛰어넘어 미국에서 성공하는 최초의 아시아 팝스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는 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세계 최대의 음악시장 미국에 아시아인이 진출하는 것을 보고 싶다며 “그 아시아인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비록 미국 팝의 영향을 받았지만 비의 음악해석은 “아시아의 얼굴을 가진, 아시아문화에 여과된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타임스는 또 그가 작년 베이징에서 4만 명, 일본에서 2만 명의 청중을 동원하는 등 티켓매진 행진을 이어갔다고 소개하고, 아시아 대중문화에 관심을 높이는 미국이 다음 공략지가 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월 28~29일자 주말판 9면 전면에 걸쳐 사진과 함께 그대로 전재되기도 했다.
[RIGHT]<2006. 1. 29>[/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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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비 미국 최초 공연에 5천 명”[/B]
일본 언론도 비의 미국 공연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닛칸스포츠·산케이스포츠·스포츠호치·스포츠닛폰 등은 2월 4일자 신문에서 일제히 비의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단독 공연에 대해 비중 있게 보도했다.
닛칸스포츠는 “한국 R&B 가수 비가 미국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면서 “현대 음악의 성지(聖地)인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아시아인 최초 단독 공연에 미국인을 포함한 약 5000명이 모여 열광했다”고 전했다.
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Rain’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번 미국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 등지에서 원정 간 아시아 팬도 상당수에 달했다.
[RIGHT]<2006. 2. 4>[/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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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