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춘천 ‘이웃복지사’의 하루
“혈당 수치가 엄청 높은데요. 뭐 드셨어요?”(김성자 씨)
“오늘 안 오는 줄 알고 귤 좀 먹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이따 먹을 걸 괜히 먹었네.”(박숙자 씨)
“당뇨가 있어서 과일은 안 드시는 게 좋아요.
꼭 드시고 싶을 땐 조금씩만 드세요.”(김성자 씨)

소양강이 흐르는 공기 좋은 강원 춘천시 추곡1리. 집이 드문드문 자리한 시골마을은 외지인이 지나가면 티가 날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조용한 집에서 정겨운 잔소리가 새어나온다. 홍종옥(85)·박숙자(82) 부부를 찾은 이웃복지사 김성자(64) 씨의 목소리다. 평소엔 말없이 텔레비전만 보던 부부의 집은 김 씨의 방문으로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부부는 직접 만든 꿀의 판로를 알아봐달라는 이야기부터 다섯 남매를 키워온 사연,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 소식 등 두런두런 일상을 공유했다.
김 씨가 가방에 챙겨온 몇 가지 도구를 꺼냈다. 이들 부부의 혈압·혈당·산소포화도를 재기 위해서였다. 당뇨가 있는 박 씨는 “혼자서는 귀찮아서, 병원에나 가야 하는데 올 때마다 챙겨주니 계속 체크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오늘 혈당지수는 400. 박 씨는 귤을 먹어 그렇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김 씨는 수치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식단 조절을 당부했다. 그의 수첩에는 그동안의 혈압·혈당 수치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웃을 연결해 초고령사회 대비
이웃복지사 김성자 씨의 하루는 이웃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일 세 시간씩 그가 들르는 집은 하루 서너 군데, 월 80가구에 이른다.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찾아 안부를 묻는 게 주요 일과다.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해 가까운 보건소나 면사무소, 농협 등의 방문을 돕고 부피가 큰 이불 빨래를 힘들어 하는 어르신들의 이불을 빨래방에 맡기고 찾기도 한다. 어르신의 건강에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의사·간호사로 구성된 전문 의료팀에 연계해주는 일도 그의 몫이다. 매주 목·금요일은 한시적으로 목욕탕을 운영하는 행정복지센터에, 미용 봉사자가 방문하는 수요일에는 마을회관에 어르신을 모셔다드리고 나면 그의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간다.
추곡1리에 거주하는 주민들 연령대는 대부분 60~80대. 50대 이하는 손에 꼽을 정도다. 60대 중반인 김 씨는 이 동네에선 청년 축에 속한다. 그는 2년 전 이웃복지사가 됐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취지로 소양강댐노인복지관에서 국내 최초로 시작한 사업(이웃복지사 육성을 통합 농촌형통합돌봄전달체계구축사업)이 2022년 행정안전부의 ‘주민생활 현장의 공공서비스 연계강화사업’에 선정되면서다. 소양강댐 인근 지역 27개 리에는 현재 김 씨를 비롯해 28명의 이웃복지사가 활동 중이다. 마을에 다니는 버스가 하루 몇 대 되지 않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인 상황에서 이웃복지사는 어르신들의 손발이 돼준다. 이웃복지사와 별도로 집수리 활동가 세 명도 필요할 때 같이 움직인다. 2022년 열두 명으로 시작한 이웃복지사 사업은 2023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만큼 반응이 좋다. 2월 현재 소양강댐노인복지관이 관장하는 곳은 470가구. 2023년 말이면 그 대상이 1000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2년 9월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는 900만 명을 돌파했다. 2026년이면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촌 지역의 속도는 더 가파르다. 추곡1리가 속한 신북면의 약 46%가 노인에 해당한다. 문제는 가구마다 거주 지역이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띄엄띄엄 위치한 점이다. 지역 단위에 복지관이 있지만 마을 단위를 전부 감당하기엔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복지사는 과거 이웃끼리의 강한 연대를 회복하면서도 서로를 돌보는 대안이 되고 있다.


경계 않는 건? 이웃이니까 가능한 일!
김 씨는 이웃복지사 활동비로 한 달에 70만 원가량을 받는다. 하지만 80가구를 도는 차량에 기름을 넣고 식사비를 쓰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일자리 활동보단 마을을 위한 봉사에 가까운 셈이다. 그는 이웃복지사 활동을 하기 전부터 부녀회장 활동을 하고 10년 넘게 마을을 위해 반찬 봉사를 해왔다. 이웃복지사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마을을 향해 애정을 쏟는 일과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홍종옥·박숙자 부부에게 “노인정에 점심식사가 마련돼 있으니 꼭 참석하라”는 마을 이장의 당부를 전하고 집을 나섰다. 흡사 찾아가는 마을 스피커 역할 같았다.
김 씨를 따라 몇 군데를 다니다 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저 왔어요”라며 불쑥불쑥 문을 여는 모습이 외지인 눈에는 꽤 낯설었으나 집주인은 거부감이 없었다. 경계하는 눈치 하나 없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김 씨는 “마을 주민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이웃복지사가 외지인이었으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배달음식도 현관 앞에 조용히 내려놓고 가는 도시의 아파트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 씨와 방문한 다른 집에는 집수리 활동가 이의훈 씨가 함께했다. 이 씨는 대문부터 마루, 화장실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지은 지 수십 년은 돼 보이는 구옥에는 90대 어르신이 홀로 거주 중이었다. 이 씨는 “젊은 시절에는 편리하게 이용했던 집안 시설 곳곳이 나이가 들며 불편한 것 투성이가 된다”고 했다. 젊어서는 아무렇지 않게 올라섰던 한옥 마루가 고령이 된 지금은 한발씩 힘을 들여야만 오를 수 있을 만큼 높게 느껴지는 것이다. 까딱했다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 씨는 수첩에서 시설개선 신청서를 꺼내 몇몇 항목을 체크했다. 그는 “어르신이 사는 집은 형광등 하나 교체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안전 손잡이, 미끄럼 방지판, 가스안전 차단기 등을 점검하고 재료를 구입해 현장에서 갈아준다”고 했다.
돌봄가구 세 곳과 마을회관을 둘러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이웃복지사와 헤어진 후 소양강댐노인복지관으로 향했다. 추곡1리에서 20분 정도 차로 이동하니 읍에 위치한 복지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복지관은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장기를 두고 포켓볼을 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었다. 복지관의 접근성이 높거나 이동이 자유로운 축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복지관을 찾기 어렵거나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힘든 어르신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찾아다닌다고 해도 사각지대는 존재할 것이다. 그 틈을 메워주는 것이 이웃복지사의 역할이다. 이웃복지사는 복지관이 존재하기 전부터 서로를 돌보던 ‘이웃’의 진화된 형태였다.
선수현 기자
박스기사
허미숙 소양강댐노인복지관 관장
“이웃 향한 관심 세포를 깨우다”

이웃복지사 활동 현장을 보니 꽤 흥미롭더라. 계기가 궁금하다.
농촌은 사업 지역이 굉장히 넓고 인구 밀도는 낮다. 거주 형태도 띄엄띄엄 떨어져 살고 있다. 특히 소양강댐 인근은 육로로 가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배를 타고 가거나 다른 시·군을 거쳐 우회해야 하는 곳이다. 직원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셔틀버스로 복지관에 모셔오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르신들이 최대한 거주 지역에 편하게 머무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결과 이웃복지사를 시작했다.
왜 ‘이웃’이었나?
집에 낯선 이가 찾아오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보고 인사하던 이웃이 방문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복지 차원에서 생활관리사가 방문하기도 하는데 어르신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타 지역에서 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이웃복지사는 리 단위로 거주민 활동가를 양성하기 때문에 초기 어려움이 훨씬 적다.
이웃복지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활동을 하기 전 교육을 받는다. 어르신과 대화하는 방법, 건강을 확인하는 방법,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 등. 복지관이 이웃복지사에게 건강 장비를 보급하면 어르신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보조할 수 있어야 하고 집안에서 낙상 위험은 없는지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을 받고 나면 내 집에서도, 옆집에서도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시야가 트인다고 하더라.
이웃복지사는 본인들 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웃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복지관이 모든 복지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이웃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자연히 이웃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고 한다. 이웃복지사도, 이웃복지사를 맞이하는 어르신도 ‘우리가 원래는 이렇게 살았지’하면서 잊고 있던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다. 이웃복지사에게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하는데 어떤 활동가가 그러더라. 용돈 받는 효녀가 된 것 같다고. 소득을 대체하기에 적정 금액은 아니지만 이웃 주민으로서 의미있는 일을 하며 봉사료를 받는 기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