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제시카법
출소한 아동 성폭행범의 거주지를 국가 운영시설로 지정한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이 국회에 제출된다. 법무부는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세 차례 이상 성폭력으로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받은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 살도록 하는 ‘고위험 성폭력범 거주지 지정 법률안’이 1월 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가 성범죄자는 학교 등에서 일정 거리 안에 거주할 수 없도록 제한한 ‘제시카법’을 제정한 것에 빗대 ‘한국형 제시카법’으로 불린다.
그동안 성범죄자는 출소 후에도 어린이집이나 학교 주변 등 자유롭게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 법안은 조두순, 박병화 등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한 뒤 인구밀집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민들의 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됐다. 법무부가 밝힌 2022년 말 거주 지정이 필요한 고위험 성범죄자는 325명으로 2024년에만 59명이 추가 출소한다. 법무부는 “고위험 성범죄자들의 출소는 계속되는데 거주지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 논란이 반복됐다”고 입법 필요성을 설명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고위험 성범죄자 출소 뒤 국가가 운영하는 지정거주시설에 의무 거주하도록 법원이 ‘거주지 지정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검사는 보호관찰소장의 신청을 받아 출소를 앞둔 고위험 성범죄자의 범죄·피해자 관련 사항, 재범 위험성, 거주지 주변 환경 등을 조사한 뒤 법원에 거주지 지정 명령을 요청할 수 있다.
고위험 성범죄자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반복적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약탈적 성폭력범죄자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세 차례 이상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대상자 중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받고 10년 이상의 선고형을 받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다. 일각에서는 출소 후에도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은 이중 처벌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2023년 10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입법예고로 의견을 수렴해 거주지 ‘제한’이 아니라 ‘지정’으로 제명을 수정했다. 법무부는 “거주지 지정은 단순히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 복귀와 재범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고위험 성범죄자가 정서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원활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과 치료 등을 제공하도록 했다. 법원이 거주지 지정 명령을 내릴 때는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해 고위험 성범죄자가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관리를 강화한다. 법안에 따르면 고위험 성범죄자가 지정된 거주지를 하루 이상 벗어나려면 보호관찰소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주지를 벗어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한편 거주지 지정명령 이행 중 거주지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당사자인 성범죄자도 변경 청구 신청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성도착증 성폭력범 성충동 약물치료 활성화
‘한국형 제시카법’과 함께 국무회의를 통과한 성충동약물치료법 개정안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을 낮추기 위해 성충동 약물치료를 활성화하는 내용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반복적 성범죄를 저지르는 고위험 성범죄자는 성충동 약물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활용도가 저조했다. 법무부가 발간한 ‘2023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건수는 11만 건이 넘었지만 최근 8년간 약물치료가 결정된 건수는 77건이었다. 약물치료를 받은 성범죄자 중 재범자는 단 1명(1.3%)에 불과했지만 약물치료 청구가 기각된 경우 10%가 2년 내 재범하는 등 약물치료의 재범 억제 효과가 매우 높았다.
이에 따라 현재 검사 재량으로 돼 있는 성충동 약물치료 진단·청구를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하는 것으로 바꿨다. 전문의의 진단 결과 성범죄를 일으킨 피고인이 성적 이상 습벽을 가진 성도착증에 해당할 경우 법원에 청구해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도록 했다. 또 수감 중이라도 보호관찰소장이 성충동 약물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으면 추가로 청구할 수 있고 수감자가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으면 거주지 제한 명령 부과 여부를 결정할 때 참작해주도록 했다.
법무부는 “고위험 성범죄자의 주거 부정과 비정상적 성충동에 의한 성범죄로부터 국민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신속하게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조두순, 박병화 등을 포함해 2022년 말 기준 교정시설 출소 뒤 전자장치를 부착한 고위험 성범죄자가 거주 지정 명령 검토 대상이 되고 2025년까지 출소 예정인 187명이 추가 검토 대상이 된다. 입법 여부와 법안 내용은 추후 국회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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