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젊은 세대는 실생활에서 전통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1회 뉴트로 페스티벌 ‘오늘전통’ 전시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통문화의 새로운 오늘을 소개하는 제1회 뉴트로 페스티벌 ‘오늘전통’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개최로 2023년부터 매년 연례행사로 열릴 예정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공간 문화역서울284부터 주제와 꼭 맞닿아 있다. 1900년 남대문정차장으로 시작해 1925년 경성역으로, 1947년 다시 서울역으로 변경돼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100년 이상 서울과 지역을 연결한 공간으로 2011년부터 새로운 예술을 향유하는 곳이 됐다. ▲쓸모있게 ▲생동하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등 5부로 구성한 전시는 미래세대가 ‘오늘전통’을 창조하고 향유할 때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한다. 2층에는 미니 소반, 한지모빌 만들기, 컬러링북, 전통놀이 등 관람객 체험과 아카이브 등도 마련했다.
전시장 중앙홀에 들어서면 달, 정원, 토끼와 함께 전통 이야기를 형성화한 ‘달의 41%’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옛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이어져왔고 우리는 달을 올려다볼 때면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옥토끼를 떠올리게 됐다. 달의 자전과 공존주기로 인해 지구인은 평생 달의 앞면밖에 볼 수 없음에도 말이다.
‘달의 41%’는 달 뒷면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달의 뒷면에 녹음이 우거져 있고 그곳 옹달샘에 물을 마시러 오는 토끼가 살고 있다는 작가의 즐거운 상상을 재현했다. 미디어아트와 조경, 사운드, 조형물 등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아름다운 오색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은 일월오봉도의 산, 곧은 절개가 보여주는 대나무 숲, 계수나무를 지나 생명의 원천인 땅 속으로 지나가는 모습 등을 표현하며 관객을 달의 뒷면으로 이끈다.
‘아름답게’에서는 한지, 한식, 한복을 만날 수 있다. 한지가 가지런히 전시돼 있는 이곳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닥나무를 수확해 고유한 기법으로 가공한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는 우리 고유의 종이다.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고 투과시키는 미감으로 창호, 조명, 병풍 등 각종 생활소품 소재로 널리 사용된다. 쉽게 찢어지지 않고 변색과 변형에 강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맛과 건강이 더해져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한식은 즐거움을 더한다. 한식 재료를 손질하고 맛보는 다양한 소리와 조리 과정이 담긴 영상은 보는 이의 입맛을 돋운다. 이곳에서는 미니어처 모형으로 나만의 한식 도시락을 만들거나 전통 보자기 매듭을 배우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다채로운 식재료와 양념, 조리법으로 완성하는 한식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메타버스에서 패션쇼 참가
조선시대 이후 한복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을까? 외국에 문호를 개방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복은 시대적으로 변화했다. 남자 복식은 고종의 의제개혁(1884년)으로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 두루마기를 입었고 단발령(1895년) 시행으로 상투가 사라지며 한복에 서양식 모자를 쓰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여자 복식은 1920년까지 짧은 저고리가 인기였지만 1930년대부터 저고리 길이가 점점 길어졌다. 서양식 여성 구두가 처음 소개된 후 이화학당을 다니는 모던걸 사이에서 목이 긴 구두나 단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와 같이 전시에서는 개항기 이후 시대별 전통 한복을 재현한 6종과 현대적으로 변형한 한복 근무복 4종을 만날 뿐 아니라 저고리 위에 덧입는 민소매 조끼 ‘배자’를 입어볼 수도 있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점은 전통을 소재로 하지만 이를 즐기는 방식만큼은 고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 월드 ‘비원’이다. 창경궁 후원을 테마로 한국 진경산수화와 오방색으로 연출한 메타버스를 두루 탐험할 수 있다. 가상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스크린에는 제페토 의상 크리에이터(창작자)들이 디자인한 한복을 만나는 K-패션쇼도 열리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잘 알려진 한복 브랜드 무낙과 하플리가 트렌드를 담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한복은 흥미롭다. 전통의상 한복과 최첨단 기술 메타버스의 결합에서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제와 내일을 잇는 오늘의 전통이다.
‘건강하게’ 코너에는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우리 선조부터 즐기던 딱지치기, 윷놀이, 제기차기, 비사치기, 팽이치기, 공기놀이, 실뜨기 등의 전통놀이를 직접 해볼 수 있다. 많은 관람객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른들은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고 어린이들은 온몸으로 흥미진진한 전통놀이의 매력을 발견 중이었다. 난생 처음 실뜨기를 해본다는 10대 학생들부터 동심을 깨우며 공기놀이에 푹 빠진 30대 연인, 유년시절 웬만한 놀이는 다 해봤지만 이번에야 비사치기를 알게 됐다는 50대 부부까지 세대를 넘어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오늘날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전통 소재를 활용한 타로카드
전시회장을 찾았다면 2층도 꼭 둘러봐야 한다. 2층에 들어서면 ‘쓸모있게’ 코너가 맞이한다. 이곳에는 재능 있는 청년들이 전통과 현대의 창조적 융합을 모색한 문화상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전통 문양과 소재, 기법을 적용한 각종 의상, 찻잔, 전통주, 액세서리, 이어폰케이스, 타로카드 등이 이렇게도 세련되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관람객 이성희 씨는 “외국 제품인 타로카드에 우리 전통 문양을 넣으니 더 새롭게 다가온다”고 감탄했다.
‘생동하게’를 찾으면 나전칠기, 조선왕실 보자기, 한글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신색창연’이 상영 중이다. 신색창연이란 ‘우리 전통문화가 옛것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색깔을 입어 찬란하게 표현된다’는 의미다. 만개한 매화 위로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새와 나비의 풍경이 자개로 화려하게 보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행복하게’에는 전통 주사위인 주령구를 던져 2023년 운세카드를 뽑아보고 새해 다짐을 적어보는 ‘작심쓰기’가 마련돼 있다.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가벼운 도전으로 적은 저마다의 소망이 빼곡하다.
이번 행사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처럼 옛것에서 참신함을 경험하고 전통문화를 새롭게 즐길 수 있도록 편성됐다. 새로운 유행이 빠르게 돌고 도는 현대사회지만 여전히 과거에서 비롯된 우리 문화가 의식과 행동양식을 규정하듯 말이다. 전통문화는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머무는 형태가 아닌 현재 시선에서 창조적 해석을 거치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동시에 전통문화를 미래세대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선수현 기자
제1회 뉴트로 페스티벌 ‘오늘전통’
일시 2월 26일까지, 오전 11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장소 문화역서울284(서울 중구 통일로1), 02-3407-3530
참고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