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 그곳은 분명 우리 땅이지만 낯설었다. 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받는 출입국 심사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을. 매일매일 북한과의 대치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는 한편 농촌의 평화로운 일상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파주 민통선 통일촌. 양 극단의 풍경이 공존하는 곳에서 신•구세대가 호국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만났다.
대담 참가자
조덕환(70·통일촌 마을 이장) / 권영한(77·통일촌 마을 주민) / 조수연(21·대학생)
조수연 북한과 등을 맞대고 있는 곳이라 이곳의 삶은 좀 팍팍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보기엔 너무 평화롭네요. 이장님은 통일촌 마을에서 언제부터 사셨나요?
조덕환 우리 마을은 1973년 8월 22일 입주식을 가졌어. 나는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농사를 짓고 싶어 그때 (통일촌 마을) 입주 신청을 했지. 지금은 우리 마을에 168가구, 430명 정도가 살고 있어.
권영한 나는 태어나서부터 이 마을에 살았는데, 전쟁 때문에 떠났다가 1973년에 돌아왔어.
조수연 그런데 여기 계시면 북한과 가깝고 하니까 긴장되는 일도 많을 것 같아요.
조덕환 그게 처음에만 그랬지. 지금은 많이 무뎌졌어. 지금도 밤에는 계속 대남방송도 나오고 하는데 그러려니 하지. 이제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곳에서 끝까지 살면서 내 나라를 지키다 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야.
조수연 사실 저는 전쟁의 기억이 없으니까 6•25전쟁 이야기는 책으로나 보는 거였거든요. 우리가 정전국, 그러니까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처음 느낀 건 연평도 사건 때문이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는데,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학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뉴스로 들어보니 꼭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심지어 동네 슈퍼에 물이랑 라면도 동이 날 정도였죠. 그때 ‘우리가 분단국가구나’라는 걸 체감했던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겪었던 6•25전쟁 당시가 궁금해요.
권영한 전쟁 당시 내 나이가 열한 살이었어. 그때는 집집마다 방공호를 다 파놨어. 그래서 온 가족이 1950년부터 3년간 방공호에서 살았지.
조덕환 그때 내가 네 살이었나? 6•25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안보의식이 강하지 못했어. 북한이 침범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고, 전쟁 준비도 안 된 상태였어. 그런 상태에서 당했으니 며칠 만에 부산까지 북한한테 속수무책으로 밀려났지. 북한은 계산적이었어. 이젠 그런 일은 없어야 해. 튼튼한 안보를 갖추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국민들도 철저한 안보의식을 갖고 있어야 해.
권영한 그런데 걱정이야.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6•25전쟁이 북침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도 잘 모르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군대도 가기 싫어하고.
조덕환 우리 땐 군 복무기간이 36개월이고, 예비군도 쉰 살까지 했어. 나는 또 나라에서 제대를 연장해서 37개월 만에 제대했는데, 요즘 너무 안보에 대해 무뎌진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하더라고.
권영한 그러니까. 요즘 신세대는 정신 무장이 덜 돼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려나 걱정도 돼.
조수연 사실 제 주변에도 “전쟁이 나면 도망가야겠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요. 하지만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는 지금 통일한국의 미래라는 전공을 복수전공하고 있는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안보는 생존’이라고 생각해요. 강한 국가가 되려면 튼튼한 안보가 필수라는 거죠.
조덕환 이런 젊은이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이는구만.
조수연 제 또래들은 대부분 통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또 일부는 통일을 굳이 해야 하냐는 얘기를 하기도 해요. 독일 통일의 역사를 보면서 동독 때문에 서독이 못살게 됐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하지만 제가 볼 땐 통일이 돼야 국가 안보가 더 튼튼해질 것 같아요. 세계적으로 국가 경쟁력도 더 커질 거고요.
조덕환 사람들이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루고 말겠다”라는 생각을 꼭 가졌으면 좋겠어. 왜 같은 동포끼리 이렇게 힘을 낭비해야 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아. 물론 통일은 꼭 평화롭게 해야 해.
권영한 맞아. 우리 마을에 평안도가 고향인 어르신이 많았는데, 고향 땅도 못 밟아보고 돌아가신 분이 대부분이야. 이제 몇 분 남지 않았어. 그 어르신들이 고향 땅을 밟을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
▶ 고향을 그리워하는 영혼을 기리는 망향제단 앞에서 대담 참가자들이 국가 안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자 이 마을에 살면서 혹시 국가 안보적으로나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조덕환 국가에 바라는 건 없어. 나라는 우리가 지키는 거야.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도 우리가 힘을 합쳐야만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어. 나라 없는 설움은 정말 커.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는 게 바로 내 나라지.
조수연 네. 어르신 말씀에 공감해요. 중•고등학교 시절 현충원으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 바친 무명용사들의 묘비를 닦으면서 이렇게 많은 우리의 조상이 지켜준 나라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저희가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지키고 통일을 이뤄내야겠습니다.
권영한 그래.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국가관이 투철하고 통일에 대한 믿음이 강한 줄 몰랐어. 오늘 수연 학생을 보니까 마음이 놓이네.
조수연 감사합니다(웃음). 저도 오늘 어르신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다시 한 번 통일과 국가 안보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저희 젊은 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소망인 통일을 이뤄내고 튼튼한 안보를 갖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조덕환 그래.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보자고. 우리도 여기 마을을 잘 지키고 있겠네(웃음).
글 · 박샛별 (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