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개발 스타트업 히포티앤씨 정태명 대표
‘디지털치료제(DTx·Digital Therapeutics)’는 의약품 분야 혁신의 화두다. 디지털치료제란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나 게임, 가상현실(VR) 등이 디지털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페어테라퓨틱스의 마약중독 치료제 ‘리셋’을 인허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기술로 헬스케어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는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2028년 191억 달러(약 2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3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 디지털치료제 등 디지털바이오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35년까지 국내 바이오 산업 생산 규모 200조 원 시대를 열고 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바이오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도 늘고 있다. 2020년 4월 창립한 히포티앤씨도 그중 하나다.
디지털치료제를 연구·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인 히포티앤씨는 정태명 대표가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원 창업으로 시작했다. 정 대표는 대한민국 전자정부 구축에 참여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보보호분과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정보보호의 국제화에도 앞장섰다. 정 대표가 디지털치료제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첨단기술과 소프트웨어를 통해 행복한 삶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다. ‘히포티앤씨’라는 사명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테크놀로지로 구현해 사람을 케어한다’는 뜻이 담겼다.
히포티앤씨의 주력 제품은 ‘어텐케어(Attn Kare)’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AI로 진단하고 VR로 치료하는 디지털치료제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2’에서 2개 부문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정한 미래 거대신생기업(유니콘)에도 이름을 올렸다. 7월 15일에는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공공 의료기관 대상 디지털 전환 사업 컨소시엄에도 새로 선정됐다. 디지털치료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정 대표에게 들어봤다.
40년 동안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지내며 줄곧 정보보호와 플랫폼 분야에서 일했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교수 정년을 앞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서 바라본 디지털치료제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디지털치료제 분야에 뛰어들어 처음에는 피부병, 녹내장, 치매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주변에 ADHD와 우울증을 겪는 아동과 청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지털치료제를 만들고 기기를 상용화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디지털치료제 어텐케어를 개발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어떤 제품인지 설명해달라.
어텐케어는 ADHD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제품으로 진단용(어텐케어-D)과 치료용(어텐케어-T)이 있다. 어텐케어-D는 VR기기를 쓰고 가상세계에서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작업기억력, 집중력, 과잉행동, 사회성 등을 판단하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물건을 몇 개 집었는지를 통해 작업 수행 능력을 알아보고 미션 수행 중 손이나 몸, 머리의 움직임을 분석해 충동성과 주의력을 살피는 식이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ADHD 성향과 정도를 진단한다. ADHD 진단에 있어 85%의 정확도를 보여줄 만큼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데이터를 모아 AI 분석으로 진단을 할 순 있지만 치료도 가능하다는 건가?
게임 기반의 어텐케어-T는 ADHD의 다양한 증상을 표적치료하기 위해 개발했다.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설계한 10개의 미니 게임과 2개의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 집중력 향상과 과잉행동 조절 등을 이끌어낸다. 미니 게임은 카드 짝 맞추기나 비율 맞추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하루 20분 정도 게임을 하면 ADHD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 미국 네브라스카대학병원과 마운트사이나이병원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다.
ADHD 외에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치료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안다.
우울증 치료기기 개발은 우연히 시작했다. 창업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우울증 관련 디지털치료제 개발 과제가 나왔다. 한창 ‘코로나 블루(코로나19 우울)’가 이슈일 때였다. 우울증 디지털치료제를 만드는 기업은 많지만 대개 챗봇을 활용한다. 우리는 표적치료를 중점에 뒀다. 우울증의 증상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맞춤형 치료에 목표를 두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탄생한 제품이 ‘블루케어’인가?
맞다. ‘블루케어’는 AI기술을 이용해 사용자의 우울정도와 원인을 파악하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인지행동치료 기반의 비약물 치료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여기에 가상 반려동물을 접목시켰다. VR을 통해 등장하는 가상의 반려동물 ‘코기’와 대화를 나누면 유대감이 생기고 주요 우울장애가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무작위로 선정한 80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우울감은 25.43%, 불안감은 14.8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세계에서의 활동으로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상세계를 현실로 옮겨온 치료도 병행한다. 사용자가 야외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산책하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미션을 제시하거나 요가나 체조, 댄스, 복싱 등 실내운동 미션, 호흡 미션, 명상 미션 등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데이터화해 통계를 내고 시각화된 결과로 사용자의 우울정도와 주요 증상을 알기 쉽게 안내한다. 쉽게 말해 명상을 통해 무엇이 바뀌었는지와 정확한 측정도구를 이용해 현재 사용자의 정서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다.
디지털치료제 외에도 웰니스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알고 있다.
인지능력과 행동 개선 프로그램인 ‘카그모’다. 카그모는 카그모테스트와 카그모업으로 나뉜다. 카그모테스트는 AI와 VR로 아동의 행동을 관찰해 아이의 주의집중력과 충동성, 절제력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다. 아동정신 건강의학 전문가가 개발한 다섯 가지 미션으로 아동의 인지행동 패턴을 분석해 보고서를 제공한다. 카그모업은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게임 속 미션을 수행하며 주의집중력, 작업기억력, 충동억제성 및 사회성 등을 성장시키는 소프트웨어다. 친구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찾아 맞히기, 표적 맞추기 등 VR 콘텐츠를 즐기며 핵심 발달 영역을 자연스럽게 강화할 수 있다.
약물치료도 있는데 디지털치료제를 써야 할 이유가 있나?
ADHD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지연돼 발생한다. 물론 전두엽의 기능을 강화시켜주기 위해서는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약물치료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약물복용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치료제는 부작용에 대한 부담 없이 게임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면서 치료를 도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한 ADHD에는 다양한 증상이 있는데 증상별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약물에 대한 보완제로서 디지털치료제의 역할이 중요해보인다.
ADHD를 겪는 아이들이 병원에 방문하면 의사들은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해준다. 병원 내에서 진료를 보기 때문에 집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의사들은 알 수 없다. 진료 시간에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했다. 게임 배경을 학교와 집으로 설정하고 게임을 통해 나온 행동패턴을 데이터화했다. 이를 의사에게 전달하면 실생활에서 나오는 다양한 증상을 파악할 수 있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해진다.
디지털치료제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물론 아직까지는 약에 비해 디지털치료제의 효능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고 본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은 거북이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가 크다. 디지털치료제가 도입되면 의사는 치료용 콘텐츠를 처방하고 환자는 집에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절약이 가능하다. 치료받는 과정의 데이터는 대시보드를 통해 의사에게 전달돼 지속해서 환자를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디지털치료제가 의약품 분야에 혁신적인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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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