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2급 이하 군사비밀을 직접 공유할 수 있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는 양국을 대표해서 11월 23일 국방부 청사에서 만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서에 최종 서명했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앞으로 북한 핵·미사일 정보 등 군사 정보에 대해 미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유할 수 있게돼 대북대응에 신속성을 더할 수 있게 됐다.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비밀 정보 교류
32개국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또는 약정 체결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 할 보안 원칙을 담은 협정으로 정보의 제공 방법과 보호 원칙, 파기 방법, 분실 대책 등을 정하고 있으며, 이 협정 체결 없이 외국과 군사비밀을 교환하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다. 이번 협정 체결은 일본과의 군사협력 확대를 위한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된다.
국방부는 협정 체결 직후 내놓은 보도자료를 통해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방법과 교환된 정보의 보호, 관리방법을 정하는 기본 틀"이라며 "우리의 모든 정보가 상대측에게 무제한 제공되는 것이 아니며,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사안별로 엄밀한 검토를 거쳐 같은 수준의 비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지난 1989년 우리 측이 먼저 일본에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양국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다가 2006년과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양측 모두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 이에 2011년 양국 국방장관 간 관련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후 2012년 체결 직전에 중단됐던 사안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해 20여 회에 걸쳐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등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면서 다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방부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태세 보강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도발원점 선제타격체계(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대북대응 3축 체계 구축과 더불어, 정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정보는 다양한 출처로부터 수집·분석돼야 정확하고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도 다른 나라와 정보 교류를 실시하고 있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이미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32개국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또는 약정을 체결했으며, 현재 중국과 몽골 등을 포함해 10개국과 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앞으로 필요한 노력을 계속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한국과 일본이 11월 23일 군사비밀을 직접 공유할 수 있는 군사비밀정보보 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 ⓒ국방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에 대해 미국 정부도 즉시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11월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을 환영한다"며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에 따라 북한의 위협에 맞서 양국 간은 물론 한·미·일 3국 간의 협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도 성명을 통해 "두 나라가 적절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대북 억지태세를 향상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명백히 금지된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방어 역량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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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이번 협정을 통해 북핵 등 한반도 안보 위협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방부는 "고도화·가속화·현실화되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우리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제 일본의 정보 능력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의 안보 이익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의 양적, 질적으로 우수한 감시 및 탐지 자산을 활용해 다양한 첩보 수집과 분석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일본과 적절하고 시의성 있게 영상 정보 등을 직접 공유하게 된다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궤적을 추적·분석하고 북한의 핵능력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분석이다.
특히 동해는 일본 수역과 가깝고 레이더, 잠수함, 해상초계기 등 일본 정보 자산의 가시권에 있어, 일본과의 정보 공유는 북한의 잠수함 활동과 SLBM 관련 정보 획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이번 협정을 통해 일본이 획득한 정보를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높였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정보에 대한 신속성, 정확성, 신뢰도가 높아지고 대북 감시 능력이 향상되면 북한의 위협 활동을 위축시키고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국방부는 "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 정국과 우리 국민의 대일 감정 등 시기의 적절성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국방부는 점증하는 적의 위협에 대응해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이에 따라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국내 정치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협정 체결이 일본의 군사 대국화,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또는 지역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체결 국가 간 군사 정보 공유와 보호를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나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지역 MD체계 편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협정 체결이 이러한 주장이나 우려의 빌미가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국방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역사 왜곡 사례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해나갈 것이며, 이번에 체결된 협정을 바탕으로 향후 일본과의 정보 교류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혹시라도 우려하시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우리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민 생명과 국가 수호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 김민주 (위클리 공감 기자) 201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