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항 아나운서의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자 한 대의 T-50B가 창공에 커다란 원을 그리더니 다른 T-50B가 물결 모양의 비행으로 태극 문양을 완성했다. 휴대전화로 이 모습을 촬영하던 관람객들은 최고난도의 곡예비행에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연합
뭐니 뭐니 해도 에어쇼의 백미는 항공기의 곡예비행이다. 전문관람일인 10월 20일과 일반관람일인 21, 22일은 초음속고등훈련기 T-50B로 구성된 대한민국 공군 블랙이글스와 호주 민간 곡예비행팀(Maxx-G)이 화려한 곡예비행을 펼쳐 관람객들을 즐겁게 했다. 또 미 공군의 F-22도 일명 ‘코브라 기동’을 선보이는 등 고난도 시범비행을 펼쳐 미국이 자랑하는 전략무기라는 점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 지난 10월 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7’ 언론 공개행사에서 탐색구조 시범이 펼쳐지고 있다.(위) 10월 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7’ 행사에서 취재진이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A와 F-22 등을 살펴보고 있다.(아래) ⓒ연합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스텔스 전투기 F-22랩터와 F-35A, 우리의 고등훈련기인 T-50 등 최첨단 항공기와 무기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7)’가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렸다.
‘서울 ADEX 2017’은 국내 항공우주방위산업 생산제품의 수출 및 마케팅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선진 해외 항공방위산업체와의 기술교류를 통해 국내 관련 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격년제로 열리는 범국가적 행사다. 국무총리가 명예대회장으로, 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장관이 명예부대회장으로 참여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한국방위산업진흥회,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공동 주최·주관한다.
방위산업은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7일 ‘서울 ADEX 2017’ 전시회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적극적인 안보 행보를 펼쳤다.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내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강하고 독자적인 항공우주산업과 방위산업의 역량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며, 이제 우리 방위산업도 첨단무기 국산화의 차원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며 “고부가가치 산업인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더 많은 일자리창출로 이어질 것이고, 방위산업이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술과 품질 중심의 방위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선진 방위산업의 핵심은 창의와 혁신”이라며 “정부는 우수한 기술과 품질을 가진 혁신적인 기업들이 국방사업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문턱을 낮추고, 견실한 국방 중소·벤처기업들을 육성하고, 방위산업에서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올바른 상생구조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 R&D 역량을 강화하고, 국방 R&D 지식재산권의 과감한 민간 이양으로 중소·벤처기업들을 지원하면서 민·군 융합을 촉진하겠다”며 “기업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성과물들을 높이 평가하고 수용해 첨단기술력이 뒷받침된 방위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정경두 합참의장, 이왕근 공군 참모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과 함께 수리온 헬기의 360도 회전, KT-1과 T-50, F-15K 등의 시험비행 및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관람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문 대통령은 전시장을 나와 블랙이글스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고, 블랙이글스 액자에 사인을 했다. 이후 블랙이글스 1호기 조종사 이규원 소령이 문 대통령 목에 빨간마후라를 둘러줬다. 문 대통령은 빨간마후라를 맨 채 총 열여섯 명의 블랙이글스와 기념촬영을 하며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줘 고맙다”며 이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또 블랙이글스 조종석에 직접 탑승, 선글라스를 쓰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거듭 기념 촬영을 가졌다.
“T-50 수출 꼭 성공시켜달라”
문 대통령은 관람을 마친 후 KT-1, T-50 등이 마련된 야외전시장을 시찰했다. 이어 양복 상의를 공군 점퍼로 환복한 후, 실내전시장으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시작으로 한화테크윈, 연합정밀, LIG넥스원 순으로 실내전시장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KAI에서는 부사장인 장성섭 사장 직무대행으로부터 미 공군 고등훈련기 사업에 참여하는 T-50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장 대행이 T-50 수출의지를 내비치자 “열심히 해서 꼭 성공시켜달라”고 격려했다. 또 KAI 전시장 내 설치된 T-50A 시뮬레이션 비행에 직접 참여해보기도 했다.
한화테크윈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신현우 한화테크윈 대표이사로부터 한화 제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신 대표이사가 UAE 파트너 기업 대표를 소개시키자 함께 대화하고 기념촬영도 했다. 강소기업 전시장에 들렀을 때 “많은 기회를 달라”는 기업 대표의 요청에 ‘진출의 문턱을 낮춰달라’는 취지로 전제국 방위사업청장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 F-22의 공중기동 장면
미국 양대 스텔스기 F-35A·F-22 첫 참가
문 대통령은 LIG넥스원 부스에서는 권희원 대표이사로부터 한국형 미사일 3축 체계 전력인 KGGB(한국형 GPS 유도폭탄), 철매-2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특히 ‘KGGB가 적군의 장사정포를 무력화시킨다’는 설명을 듣고 “장사정포 진지 자체를 공격하는가”라고 물으며 “북한에 중장거리탄도미사일도 있지만 장사정포, 방사포 대응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주 핵심적 방어장비”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KGGB에 대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궁금해하자 “재래식 폭탄 위에 유도장치를 붙인 것”이라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는 34개국 405개 업체가 참여하고 25만 명 이상이 관람,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T-50 초음속훈련기, FA-50 경공격기, KT-1 기본훈련기, 사단급 무인기, K-9A1 자주포, K-21 보병전투장갑차, 천마, 신궁, 천궁 등 국내에서 개발돼 우리 군이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항공기와 지상 장비 60종 72대가 전시됐다.
이번 전시회에는 종전보다 많은 국내외 첨단 신무기들이 등장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군의 양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와 F-22가 처음으로 함께 참가했다. F-35A는 내년부터 우리 공군에도 도입되는 공군용 5세대 스텔스 전투기다.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합동직격탄(JDAM), 소구경정밀유도폭탄(SDB) 등을 내부 무장창에 장착해 적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세계 60개국 인사 방한, 160억 달러 수주 전망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히는 F-22는 지난 2015년 서울 ADEX 에어쇼에서 추력편향 엔진 등을 통해 놀라운 공중기동을 선보여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2006년 미군 전투기 F-15·18 등과의 모의공중전에서는 144대 0이라는 기록을 세워 군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대속도 마하 2.5로 내부 무장창에 각종 미사일과 폭탄을 싣는다.
▶ 지난 10월 17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7에 F-15K에 장착하는 타우러스 공대지 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미사일과 폭탄들이 전시돼 있다. ⓒ연합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한반도에 자주 출동하는 B-1B 전략폭격기도 참가해 시범비행을 했다. B-1B는 미 전략폭격기 3총사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많은 무장을 장착한다. 기체 내외부에 총 61톤의 폭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미 해군의 최신형 해상초계기 P-8 포세이돈과 우리나라도 도입하는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유럽 에어버스사의 A-400M 최신형 수송기 등도 눈길을 끄는 신무기들이다. 포세이돈은 첨단 대잠수함 장비와 공격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며, 우리 해군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내년부터 4대가 도입되는 글로벌호크는 북한의 핵·미사일기지를 24시간 이상 장시간 감시할 수 있다. A-400M 수송기는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 116명이나 37톤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비즈니스 못지않게 군사외교의 장으로도 활용됐다. 미 태평양공군사령관, 에콰도르·보츠와나 국방장관, 방글라데시 육군참모총장 등 60개국 89명의 군 핵심인사와 관련기업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ADEX 관계자는 “군사외교 협력 강화와 비즈니스 상담도 진행됐다”며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태국에 수출되고 있는 T-50 고등훈련기와 각종 부품들도 전시돼 해외 관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고 밝혔다.
‘서울 ADEX 2017’은 1996년 첫 행사를 개최한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쳐 국내 최대 종합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로 자리매김했다. 총 4개 홀로 구성된 대형 실내전시장은 종전 면적에 비해 11%가 커졌고, 부스도 1700개에 달했다. 중견·중소기업관도 설치됐다. 1996년 첫 행사(서울국제에어쇼) 당시에는 21개국, 214개 업체로 시작했지만, 올해엔 34개국 405곳이 참가해 업체 수가 두 배가량 늘어났다.
주최 측인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올해 약 160억 달러(약 18조 700억 원) 규모의 수주와 수출 상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첫 행사 수출 계약액이었던 5000만 달러(560억 원)의 300배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외 군 관계자를 포함, VIP 및 바이어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마케팅 환경을 조성해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 전시회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동룡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