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김장재료 수급안정 대책’ 확정
직접 김장을 담그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 가구 중 여섯 가구가 김장을 한다. 김장철에 만들어지는 김치는 2021년을 기준으로 한 해 제조량의 22%에 달한다. 이 때문에 김장철 물가는 온 국민의 관심사다. 김장철을 앞둔 10월 마지막 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쇼핑카트를 하나씩 끌며 살 것을 고르는 소비자들은 “물가 오름세가 만만치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양재동에 거주하는 권영미 씨는 “지난해보다 김장 규모를 조금 줄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치를 예전만큼 많이 먹지 않거니와 빠듯한 가계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농협에서 22년째 농산물 수급·관리 업무를 담당해온 허장행 농협경제지주 채소사업국장은 “한때 배춧값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다행히 김장철을 앞두고 공급여건이 나아지면서 안정세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허 국장의 업무 중 하나는 농산물, 그중 배추·무·고추 등 8가지 채소 품목의 수급을 관리하고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특별 할인행사를 진행하며 소비자의 농축산물 부담을 줄이고 있었다. 허 국장은 “가격 상승기에는 비축물량을 풀어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할인행사를 펼쳐 가격 안정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농협이 비축한 계약재배 물량은 공급량을 조절하는 주요 방안이 된다. 보통 농협은 농민과 매취 혹은 수탁거래를 통해 계약한다. 수탁은 출하량의 판매를 농협에 맡기는 것이고 매취는 농협이 출하량을 모두 사들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농협의 계약물량을 조절해가며 가격 안정을 꾀한다.
이번 김장철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김장철을 맞아 물가 관리에 들어갔다. 11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는 ‘김장재료 수급안정 대책’이 확정됐다. 대책에 따르면 김장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이 2022년에 비해 줄어들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우선 정부는 배추, 소금 등 가격 인상이 우려되는 주요 김장재료의 공급을 확대한다. 천일염의 경우 역대 최고 수준인 1만 톤을 전통시장과 마트 등에서 시중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할인해 공급한다.
할인지원도 대폭 확대된다.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로 역대 최대인 245억 원에 달한다. 특히 김장 주재료인 배추와 수급 불안이 우려되는 대파, 생강은 대형마트의 공급가격 인하 지원이 병행될 계획이다. 더불어 관계부처 합동으로 운영되는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반’은 상시로 수급상황을 모니터링해 실시간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11월 1일 시민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물가를 잡아서 서민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확대·할인행사 동시지원으로 가격 안정화
수급안정 대책에서 관리 대상이 되는 김장재료는 배추, 무를 비롯해 양념에 사용되는 고춧가루, 마늘, 양파, 배, 새우젓, 멸치액젓 등 14가지 품목이다. 이 중 가을배추 생산량은 2022년에 비해 3만 톤 감소했지만 공급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허 국장은 “2022년 배추 생산량이 워낙 많기도 했지만 겨울이 될수록 남부지역 작황이 양호해 공급여건이 나아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무는 생산량이 늘어나 수급에 문제가 없다. 정부는 농협 출하계약 물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시기별 공급량을 조절해 도매시장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배추의 경우 김장 수요에 대응해 농협 출하계약 물량 2700톤을 도매시장에 집중 공급한다. 만약 11월 중순부터 12월 상순에 이르는 김장 성수기에 공급량이 부족해지면 상대적으로 공급 여력이 있는 12월 출하물량을 조기에 출하하도록 운송비 등을 지원해 장려할 계획이다. 공급량이 늘어난 무는 10~11월 출하량 중 일부를 수매해 일시적으로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는 11~12월에 대비하도록 한다.
일부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양념류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고춧가루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고추 수입 비축물량 2800톤을 전통시장 등에 조기 공급한다. 특히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대파는 할당관세를 추진할 예정이다. 천일염은 2022년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 비축물량 최대 1만 톤가량을 시장에 공급한다.
특히 정부가 힘을 쏟고 있는 부분은 소비자 부담을 직접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할인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농수산물 할인지원 예산 규모는 전년에 비해 대폭 증액돼 245억 원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김장 채소류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최대 50% 줄이고 수산물 대상 할인 폭을 60%까지 늘리겠다는 생각이다.
농산물의 경우 마트와 온라인몰 등 전국 1만 6435개 유통업체에서 11월 2일부터 29일까지 김장재료를 살 때 평상시보다 더 큰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농산물 할인한도를 증액해 김장재료의 경우 1인당 주간 2만 원까지 할인받도록 할 예정이다. 김장재료뿐 아니라 김장철 성수 품목인 돼지고기도 할인 대상이다. 한돈자조금을 활용해 삼겹살, 앞다리살 같은 선호부위에 대해 20% 내외 할인행사도 지원한다.
농협도 특별 할인행사에 나선다. 김장 성수기부터 연말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특별 할인행사를 추진한다. 그간 농협은 물가안정을 위해 카드사와 협력해 가격을 할인하는 등의 행사를 진행해왔다. 농축산물 할인쿠폰, 즉 ‘농할쿠폰’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좋아 관련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별도로 하나로마트, 농협 온라인몰도 김장재료를 최대 40% 할인하는 행사를 추진 중이다.
정부가 이처럼 평년보다 김장재료 수급 안정에 더 힘을 쏟는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농산물 가격 안정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허 국장은 배추를 예로 들었다.
이상기후로 불안정한 공급에도 적극 방어
사계절 수확하는 배추 중 여름에 수확하는 것을 고랭지 배추라고 부른다. 이번 여름 배추 공급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바 있다. 허 국장은 “비가 오면 배추 뿌리가 땅에 잘 활착되지 못해 배추가 물러진다”고 설명했다. 고랭지 배추 정식기인 8월 초에 비가 자주 내려 배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허 국장은 “이처럼 이상기후 때문에 수확철 공급량이 줄어드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 가격이 급등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허 국장은 “봄철에 이상고온 현상으로 사과꽃이 일찍 피었다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냉해를 입었다”며 “감도 마찬가지로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격안정을 위해 사과의 경우 농협 계약물량 1만 5000톤을 12월까지 조기에 출하하기로 했다. ‘못난이 사과’라고 부르는 비정형과를 출하할 때는 운송비 등을 일부 지원하고 가격이 많이 오른 사과 대신 감귤 등 대체품목으로 소비가 분산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수산물 가격도 다각적으로 안정화를 추진한다. 정부는 비축해둔 국산 천일염 5000톤을 전통시장과 마트 등에 우선 공급해 시중가격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할인 판매한다. 소비자가 할인 천일염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판매처와 판매일시를 해양수산부 누리집(www.mof.go.kr)과 수협중앙회 누리집에 공지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11월 2일부터 26일까지 김장재료인 새우젓·멸치액젓을 비롯해 고등어·오징어 등 모든 국내산 수산물을 최대 60%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국 14개 마트 1766개 점포와 24개 온라인 쇼핑몰이 행사에 참여한다.
8월부터 진행 중인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도 계속된다. 이 행사는 전국 30개 전통시장에서 국내산 수산물을 구입하면 구매 금액의 최대 40%를 2만 원 한도 내에서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받는 행사다. 온누리상품권 구매한도도 1인당 월 최대 30만 원까지 확대해 소비자 부담을 완화할 예정이다.
김종구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11월 2일 열린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방침을 밝히며 “2022년 11월 김장비용은 평균 22만 3000원 정도였으나 2023년에는 각종 할인지원과 공급 확대를 통해 2022년보다 낮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먹거리 물가도 안정적으로!
식품원료 긴급 할당관세 적용… 원가 부담 완화 추진
정부는 11월 2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요 먹거리에 대한 가격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주요 가격상승 품목의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한다. 바나나, 망고, 자몽과 같은 열대과일과 전지·탈지분유, 버터, 치즈, 코코아 같은 식품원료에 대한 긴급 할당관세도 적용해 공급을 안정화시킨다.
한편으로는 업계의 원가부담을 완화하는 방침도 추진된다. 2023년 말 종료 예정이던 농산물 의제매입세액 공제한도 상향 적용기간을 연장한다. 커피와 코코아 등 수입품과 병·캔에 개별 포장된 김치, 된장, 고추장 같은 가공식료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적용기간도 연장될 전망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물가가중치와 서민체감도가 높은 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국제가격 상승세를 유지 중인 설탕 등 주요 품목에 대한 시장 동향을 수시로 점검해 소통을 강화하며 물가 관리에 집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