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가 말하는 의료개혁
정부는 2월 6일 2025학년도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지금은 미루고 미루다가 문제가 커진 시점”이라며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의료제도를 연구해온 정 교수는 의료정책 분야 전문가다. 의사가 의료행위의 전문가라면 정 교수는 적절한 의료정책이 무엇인지 연구한다.
전문가로서 의사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의 시점이 ‘늦었다’고 지적하는 정 교수의 입장은 정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27일 ‘제6회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하면서 “27년간 정체된 의대정원을 더 늦기 전에 정상화해야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고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도 대비할 수 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어떻게 미루라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 역시 지역·필수의료의 붕괴를 막는 것을 넘어 의료계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사 수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의료계의 움직임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침 인터뷰 중 싱가포르의 한 외신기자로부터 정 교수에게 현 상황에 대해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정 교수는 “외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면서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간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정 교수는 “문제를 미루고 꼬아놓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의료제도가 운영되는 기본 구조를 이해하면 의사 수가 일정 수준 이상은 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쉽다.
의료개혁을 위해 의료제도를 이해하는 일이 왜 필요한가?
우리 의료제도는 특히 의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의사 수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의료제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같다.
‘의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뭔가?
의료법에서 권한이 의사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권한이 강하다는 것인가?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은 의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없고 의사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독점권을 넘어서는 권한을 주고 있다. 의료제도 중 제공체계의 주된 결정을 의사 재량에 전적으로 맡겨놓았다는 뜻이다.
제공체계가 무엇인가?
의료제도의 기본부터 짚어보자. 의료제도는 인적·물적자원을 어떻게 배치하면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잘 이용하게 할 수 있을지 정하는 제공체계(delivery system)와 제공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의료비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는 재원체계(financing system)로 나뉜다. 의료인력, 의료기관, 의약품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정해야 하고 의료행위가 일어나면 무엇으로 지불할지 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제공체계에서는 의료인이 마음껏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방임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의료인이 어떤 전문 과목을 선택하고 어디서 진료할지는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 정부는 면허제도 등에 대해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 의료인력 정책도 대학정원을 통해 투입 인력의 규모를 정하는 것에 그친다. 더욱이 의료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기 힘들다.
그럼 어떻게 의료인을 제한하나?
재원체계, 즉 돈의 흐름을 통해서다. 우리의 재원체계는 독일을 참고한 건강보험이다. 이를 ‘비스마르크형’ 의료제도라고 부른다. 의료인력은 비교적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되 공적인 재원을 통해 조절하는 것이다. 돈을 너무 높게 받지 못하게 수가를 정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이 돈도 의사가 중심이 되는 병·의원에 주어진다. 간호사나 물리치료사는 병·의원에 고용돼 돈을 받는다. 의사 외에는 간호사도 물리치료사도 독자적으로 개업해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우리와 비슷한 재원체계를 가진 독일의 경우 지역별로 보험의사 정원이 있고 의료비 총액이 정해져 있다. 의사가 어디서 개원하든 개인 재량에 달려 있는 우리와 다르다.
의료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의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이를테면 지역·필수의료의 의사 부족,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 등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빅5’로 불리는 병원 안에서 간호사가 쓰러졌는데 필요한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도 있었고 지역의 공중보건 의사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 한의사 수를 빼면 2.1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비스마르크형 재원체계를 가진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의사가 4.5명이다.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일본도 우리보다 많다.
의대정원도 OECD 국가의 평균이 인구 10만 명당 14명인데 우리는 7.3명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데 다른 나라가 늘려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오히려 줄였다. 만약 우리가 OECD 국가 평균처럼 인구 대비 14명으로 맞추려면 의대정원이 두 배는 늘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많을 필요는 없다.
지역·필수의료를 위해서뿐 아니라 의료제도 자체를 위해서도 의사 수가 늘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우리는 사실 의사를 부족하게 운영해왔다. 적정한 의사 수가 얼마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의료제도의 두 체계를 고려해볼 때 우리가 돈을 얼마든지 낼 테니 의사를 넉넉히 공급하는 방식이 있고 경제적으로 부담 안 가는 정도의 의료비로 의사를 빠듯하게 운영하는 방식이 있다. 지금까지는 의사들이 열심히 진료해 진료받고자 하는 환자들을 어떻게든 처리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료 건수는 OECD 국가 중 단연 가장 많다. 의사들이 업무가 과중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동안 의사인력 증원을 억제한 것이 어떤 문제를 초래했나?
앞서 말했지만 우리 의료제도에서 의사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의대정원이 전부다. 그런데 의대정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의대정원 축소는 오히려 의료비 상승과 보험료 인상 문제를 초래했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 고용계약 단가가 상승하고 병원 경영 압박이 심해져 수가 인상 요구가 커지면서 건강보험 진료비도 증가했다. 악순환이다.
의사인력 증원이 아니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을 강조한다. 수가를 인상하면 의사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비 지불구조를 함께 고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인데 지금의 지불구조는 ‘환산지수 계약’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모든 수가를 매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계속하면 필수의료 쪽의 수가를 웬만큼 올려서는 의사인력의 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랜 기간 유지해온 ‘환산지수 계약’ 방식은 중단하고 필수의료 쪽을 집중해서 올려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로 안 가려는 것은 비필수의료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상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집중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증원이 이뤄지면 지역·필수의료가 살아날까?
의대정원 증원은 의료제도 전체를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필수의료에 한해서 얘기해보겠다. 필수의료에 의사가 충분히 공급되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의사들이 피부과, 성형외과 등의 인기 과목보다 내과, 소아과 분야에 자발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정부가 강제로 배치하는 거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 의료체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체 의사 수가 늘어서 그 중 일부가 필수의료를 하게 되는 경우다. 의사들은 ‘낙수 효과’라고 비판하지만 그건 경제현상이다.
의사단체는 전체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라 의사 배분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의대 증원을 피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돼왔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배분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총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설명을 들으니 문제 해결이 간단해 보인다.
그동안 문제를 꼬아서 복잡하게 만든 부분이 있다. 공공의과대학을 만든다, 지역에 묶인 의사를 만든다 등 다양한 방안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의대정원 증원 없이는 의료개혁이 어렵다는 것인가?
의대정원 증원이 이뤄졌다고 해서 의료제도가 완전히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증원 없이는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 즉 의대정원 증원은 의료개혁의 ‘필요조건’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패키지 속의 모든 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의대정원 증원이 선행된 후의 일이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사 일부만 반대해도 제도 개선이 미뤄져왔다. 정부는 ‘2025년 의대정원’의 확대정책을 완수해야 한다. 첫해에 네 자릿수의 증원정책이 이뤄지면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둔 것으로 본다.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