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아침, 강원 강릉시 영진항으로 연안자망어업 어선인 비둘기호가 들어오고 있다.
강원귀어학교 도시민 어업기술 실무교육
7월 12일 아침, 강원도 강릉시 영진항으로 고깃배 한 척이 들어왔다. “오늘 고기가 좀 있어요?” 항구에 있던 사람들의 질문에 김재용 비둘기호 선장이 “어제보다 훨씬 많더라”고 답하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유독 용승현(44) 씨만 찡그린 얼굴로 비둘기호에서 내렸다. 김재용 선장의 아내 안해숙 씨가 용 씨에게 “얼굴 보니까 멀미해서 죽겠는데?”라고 묻자 그는 “오늘 파도가 한 5m 넘게 치더라고요. 물 다 들어가고. 어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에서 같이 내리던 심은숙(45)·윤영진(45) 씨가 “뭐래. 파도가 5m 이상 치면 주의보 내려”라고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 선장은 “멀미는 너나 나나 어쩔 수가 없어. 그렇지만 바다와 반대로 움직이면 멀미가 더 나. 파도 따라 움직여야 덜해”라고 알려줬다.
용승현·심은숙·윤영진 씨는 강원귀어학교 7기 교육생이다. 귀어학교는 귀어를 희망하거나 어촌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이들에게 현장 중심의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이다. 7기 교육생 20명은 6월 20일부터 4주 동안 교육을 받았다.
강원귀어학교 권미혜 대리는 “어선어업, 해양레저, 양식업, 내수면어업 등 4분야의 이론 수업과 현장 견학을 마치고 7월 4일부터 복합·연안·통발 등 세 가지 어선을 번갈아 타며 현장실습 중”이라고 말했다.
항구에 비둘기호를 정박시킨 뒤 잡아 온 생선을 넘긴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그물 사리기(정리)가 남아 있었다. 비둘기호는 연안자망어업 어선이다. 물고기가 지나갈 만한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시간이 지난 뒤 걷어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강원귀어학교가 2020년부터 배출한 수료생 116명 가운데 약 50명이 귀어한 것으로 집계됐다. | 강원귀어학교
실습하며 어법 결정 “귀어학교 큰 도움”
“내가 배에서 뭐라 그랬어. 그물을 걷을 때 깨끗하게 떼어내면 그만큼 육지에서 하는 일이 수월하다 그랬지. 그물에 붙는 게 많거든.”
김 선장의 지시에 따라 교육생들은 그물을 펼치며 불가사리와 돌 등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나만 빨라도 안 되고 같이 잘해야 돼. 그래서 자망 어부는 혼자 하기 힘들어. 우리 집사람하고 손발 맞추면 이 정도 그물은 1분이면 끝나.”
한창 작업하던 김 선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가만! 여기 빨간 게 독성 있는 해파리야. 얼굴에 맞든가 눈에 들어가면 병원 가야 해. 무지 따가워. 그물 흔들지 말고 살짝 넘겨.”
윤영진 씨가 “엄청 따가워요?”라고 묻자 심은숙 씨는 “나 해파리 중화제 갖고 다니잖아”라고 말했다.
심 씨는 스쿠버다이빙, 서핑 등 해양레저스포츠 강사다. 동해에서만 13년 넘게 일했다. “예전에는 전문 강사가 많았지만 이제는 거의 부업으로 하죠. 저 같은 전업 강사는 먹고사는 게 가장 문제예요.”
인천 출신인 아버지가 어촌계 회원이라 어릴 때부터 바다가 익숙하다는 심 씨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어업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어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귀어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지가리(갈고리가 달린 낚싯줄)’로 문어 낚시를 할 생각이었다.
“막상 실습해보니까 주낙(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물속에 늘어뜨려 한 번에 여러 마리의 고기를 낚아 올리는 어업)도 1인 조업이 가능하고 문어 철이 끝나면 장어와 복어로 연결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낙도 같이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심 씨는 ‘나한테 힘들 것 같아’, ‘냄새가 많이 난대’ 같은 이유로 미리 겁먹고 포기했던 어법도 막상 현장에서 배우며 접해보니 할 수 있었고 흥미를 갖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해양레저스포츠 강의를 본업으로 하고 그다음 어업을 하려고 했는데 실습하면서 마음을 돌려먹었어요. 어업 먼저로 순서가 바뀐 거죠. 귀어학교가 아주 큰 도움이 됐어요.”
▶강원귀어학교 7기 교육생이자 해양레저스포츠 강사인 심은숙(오른쪽) 씨가 그물사리기를 하고 있다.
2020년부터 수료생 116명 중 50명 귀어
2020년 문을 연 강원귀어학교는 6기까지 116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2022년 상반기에 조사해보니 이들 가운데 50명가량 귀어한 것으로 집계됐다. 권미혜 대리는 “강원도 밖에 정착한 사람이 5명 정도 있고 나머지는 다 강원도로 귀어했다. 위로는 고성부터 아래로는 삼척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심 씨는 해양레저스포츠 강사로 오래 지낸 강원도 양양 쪽에 자리 잡을 생각을 했었지만 실습하면서 영진항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제가 체구도 작고 성별로 보면 약자잖아요. 다른 어촌계에서는 잘 안 도와줘요. 생업이잖아요. 그런데 귀어학교를 통해 만난 선장님들이 언제든지 오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은 귀어지로 영진항을 생각하고 있어요.”
실습하면서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 게 귀어학교의 제일 큰 장점이라고 했다.
“어촌계가 귀어인을 터부시한다고들 하는데 어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 떠난 사람들 때문에 정 주고 마음 상할까 봐 그러는 거거든요. 자신이 정말 의지를 갖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어촌계에도 도와주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권 대리는 “타지 사람이 갑자기 어촌계에 나타나 ‘여기서 뭐 해볼래요’ 하면 어느 어촌계에서 받아주겠냐”며 “귀어학교에서는 실습하며 어촌계원들하고 친해질 수 있으니 귀어하려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영진항에는 이미 귀어학교를 통해 정착한 귀어인도 있다. 안 씨는 “프로축구 선수로 뛰었던 마흔 살 청년이 귀어학교 1기생으로 왔다가 1년 전 여기 배를 사서 어촌계에 바로 가입했다”며 “지금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김 선장은 “우리 부부도 60대 중반이고 지금 어촌이 노령화돼 있다. 젊은 사람이 오면 어업 자체가 활성화돼 어민들도 대부분 좋아한다”며 “어촌도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좌우해야 하기 때문에 귀어학교는 참 좋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권 대리는 어촌계에서 귀어학교 교육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실습이 끝난 뒤에도 정착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선장님들이 배도 알아봐주고 어촌계에 가입할 수 있게 여론도 만들어줘요. 당장 뱃자리가 없으면 ‘내 배 옆에 살짝 대놔라’라고 해요. 그래서 어느 어촌계에서 실습하느냐가 귀어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죠.”
실제로 2021년 강릉시 사천진 어촌계에서 실습한 귀어학교 교육생 20명에게 희망 귀어지를 묻자 9명이 사천진을 꼽았다. 그 뒤 배까지 사서 사천진 어촌계에 가입한 교육생이 3명이나 됐다.
▶김재용 선장(가운데)이 심은숙(왼쪽)·윤영진 씨에게 자망어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어업허가권 있는 뱃값 30~40% 급등
귀어학교를 수료한 뒤에도 정착까지는 여러 난관이 남아 있다. 일단 어선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업허가권이 새로 발급되지 않기 때문에 어업허가권이 있는 기존 배를 구매해 지위를 승계하는 방법밖에 없다. 매물로 나오는 어선을 찾기도 어려운 데다 가격까지 계속 오르고 있다.
김 선장은 “수요는 있는데 배는 한정돼 있으니까 배 단가가 자꾸 올라가고 있다. 1년 새 최소 30~40%는 뛰어올랐다”며 “우리 배도 예전에는 5000만 원 정도 했는데 지금 시세에 내놓자면 어구까지 포함해 1억 원 정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 대리는 “이쪽으로 이사도 해야 하는데 강원도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올랐다. 내놓은 집이 잘 없기도 하고 월세는 50만~60만 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귀어학교에서 귀어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교육을 수료하면 바로 어촌계에 들어가고 배도 하나 배정받아 어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귀어 10단계가 있다면 귀어학교는 2~3단계에 불과해요. 어떤 어업을 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귀어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나머지는 본인이 준비해 100%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강원귀어학교 입학 경쟁률은 평균 2.6대 1이다. 강원귀어학교는 2022년 하반기부터 기수당 정원을 5명 늘려 25명씩 모집할 계획이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2023년까지 귀어학교 8곳 개설
‘어선 청년 임대 사업’도 지원
현재 귀어학교는 강원 강릉, 경남 통영, 충남 보령, 전남 강진 등 4곳에서 운영 중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경기 안산과 경북 포항에서, 2023년 상반기부터 충북 충주에서 문을 연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2023년 하반기에 설립될 여덟 번째 귀어학교로 인천 수산기술지원센터를 선정했다. 인천 수산기술지원센터는 수인분당선 인하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어 수도권 거주자의 접근성이 좋고 수산물 공판장과 위판장, 종합어시장이 인근에 있어 다양한 실습이 가능하다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센터 안에 기숙사도 새로 마련한다.
해수부는 ‘청년 어선 임대 사업’도 시작했다. 고령, 질병 등의 이유로 어업을 하기 어려운 어업인의 어선을 청년에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2022년 처음 시행하는 사업에 모두 10명의 청년 어업인과 8명의 후보자가 선발됐다. 청년 어업인은 10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임대할 어선을 정해 한국수산자원공단과 어선 임대차계약을 맺게 된다. 해수부는 임대차계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지원하는 한편, 가격 협상에 도움을 준다.
최용석 해수부 어업자원정책관은 “지속가능한 수산업과 안전한 조업을 위해서는 청년이 필요하다. 이들이 어촌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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