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길영준 휴이노 대표│휴이노
심장병 환자들이 시계 모양의 의료기기를 손목에 찬다. 시계 액정에는 심전도 그래프가 나타난다.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면서 정보를 의사에게 전송해 심전도 상태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가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과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14일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어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 관리서비스’에 실증특례를 부여했다.
이번 특례로 심장질환을 앓는 환자는 상당한 편의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손목시계형 장치에서 얻은 심전도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송해 이상 징후가 발생할 때는 내원 안내를 받아 검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사의 원격 모니터링으로 내원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심전도 원격 서비스는 국내 의료전달체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심장혈관 의심 증상이 생기면 지금은 가벼운 증세라도 대형 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가벼운 증상의 환자는 1·2차 의료기관으로 안내받는다. 동네 의원이나 지역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 대학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중증의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면 1·2차 의료기관으로 옮기도록 안내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가까운 병원에서 긴 대기 시간 없이 빠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사 입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측정된 환자의 심전도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대면 진료에 활용할 수 있어 환자 관리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휴이노·고려대안암병원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휴이노
‘애플워치4’보다 3년 빨리 개발
과기정통부는 이 서비스가 환자의 불편을 줄이고 안전을 강화하는 한편, 진료의 정확성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기존의 심전도 기록장치인 ‘홀터’를 사용하려면 3차례 이상 대학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병원에 가면 줄이 달린 홀터 기기를 옆구리에 부착해준다. 집으로 돌아와 24시간 측정한 뒤 기기를 떼러 다시 병원을 방문한다. 일주일 뒤에는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 병원에 간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손목시계 측정기를 집이나 사무실에서 착용하면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한 번만 가면 돼 불필요한 진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실증특례를 받은 휴이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규제 탓에 외국보다 시판이 늦어진 사례’로 거론했던 업체다. 휴이노는 같은 기능이 탑재된 애플의 ‘애플워치 4’가 나오기 3년 전인 2015년에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법규의 불명확성으로 허가를 받지 못해 선수를 빼앗겼다. 길영준 대표는 “지난해 애플워치 4가 나왔을 때 속상하기보다는 마치 내 기술이 인정받은 것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이번에 심의위원회는 의료법상 근거의 불명확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 서비스에 규제특례를 부여해 심전도 데이터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의료계 일부에서는 이를 ‘원격의료’로 가는 징검다리로 의심하고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의료의 변형으로 현행 의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심의위는 이번 특례가 의사의 진단·처방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원격진료를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사가 원격지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진단·처방하는 게 원격진료로, 5G 이동통신 상용화 이후엔 원격지에서 처치도 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이번 특례는 거기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병원에 가기 어려운 곳에 사는 환자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체크한 정보를 병원에 보내면, 의사가 ‘병원에 와라’ 이런 정도로 조치하는 것”으로 “이번 서비스는 원격의료와는 절대 분리된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미국·프랑스·스웨덴·일본 등 해외에서도 태블릿PC 등 휴대용 기기로 환자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등 관련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심의위는 국민의 안전·건강을 고려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뒤 사업을 시작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따라 휴이노의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는 웨어러블 의료기기 최초로 오는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휴이노의 기기는 기존 심전도계와 동일한 시험검사를 거쳐 성적서를 발급받았다. 길영준 대표는 “식의약처의 의료기기 인증에는 1300가지 공통규격과 100여 가지 개별규격 검사 항목이 있다. 이 검사들을 통과해 안전성을 인증받아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월 14일 정부과천청 사 과기정통부에서 열린 제1차 신기술 서비스 심의위원회에 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과기정통부
2000명 대상 시범 서비스로 효과 검증
심의위는 또 국민의 건강 증진과 의료기기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00명 이내의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제한된 범위에서 시범적으로 이 서비스의 효과를 검증하도록 했다. 특히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역의 환자를 최대한 많이 포함하도록 했다. 휴이노는 식의약처의 인증을 받으면 올해 상반기 중에 제품을 출시해 시범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실증 사업에 참여할 환자는 휴이노와 고려대 안암병원이 함께 모집한다. 길 대표는 “우리 회사와 고려대 병원 누리집 등으로 신청 접수를 받아, 고시한 4~5개 질병군의 증상이 있는 환자 중 선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인들도 이 서비스가 인증을 얻으면 대면 진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휴이노의 스마트워치 가격은 기록·분석용 앱을 포함해 35만 원 선이다. 길 대표는 “환자뿐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겠다” 말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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