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키다 희생하신 유공자들의 넋을 현충일 하루만이 아니라 오래오래 기려야 할 것 같다. 이름과 방식은 달라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기념일을 제정해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고 유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미국의 메모리얼데이(5월 마지막 월요일), 영국의 리멤버런스데이(11월 11일), 호주와 뉴질랜드의 안작(ANZAC :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데이(4월 25일)가 대표적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앞둔 지난 5월 3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한 어 린이가 묘비에 꽃을 바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제61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유공자와 유족 보상금을 사회지표 증가율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상하고, 6•25전쟁에 참전한 미등록 국가유공자 발굴사업을 중점 추진해 2017년까지 마무리하며, 2017년까지 제대군인 일자리 5만 개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정부는 국가유공자의 보상과 예우, 제대군인의 사회 복귀 지원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우리나라 보훈정책은 1950년의 ‘군사원호법’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50~1960년대는 제도를 정착시켜 생계의 안정을 모색하던 보훈정책의 태동기였다. 군사원호법(1950), 경찰원호법(1951), 전몰군경 유족과 상이군인연금법(1952), 군사원호보상법(1961), 군사원호 대상자 자녀교육보호법(1961), 원호 대상자 고용법(1961), 국가유공자 등 특별원호법(1962), 원호 대상자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1963), 애국지사사업기금법(1967) 등이 제정됐다. 1961년 7월 5일에는 군사원호청 설치법이 공포되고 8월 5일에는 군사원호청이 창설됐다. 1962년 12월에는 원호정지심사위원회(현 보훈심사위원회의 전신)가 신설됐다.
1970~1980년대는 보훈정책의 정착기였다. 1970년대에는 국가의 보상수준을 높이고 국민의 성원을 바탕으로 자립 기반을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원호기금법(1974)도 제정됐다. 1980년대에는 이념적 기반을 구축하고 정신적 예우를 강화하는 동시에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하고 복지시책을 확대했다.
한국보훈복지공단법(1981), 보훈기금법(1981),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1984),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1984), 순국선열애국지사사업기금법(1984), 보훈기금법(1984),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1984),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1988), 보훈기금법(1984) 등이 발효됐다. 1984년 12월 31일에는 기존의 원호처를 국가보훈처로 개칭하고 1985년 1월 1일부터 새 이름을 썼다.
1990~2000년대는 보훈정책 제도의 전환기였다. 1990년대에는 생활 지원과 복지시책을 강화함으로써 유공자의 영예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사업을 심화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주력했다. 고엽제 후유증의 중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1993), 참전유공자 지원에 관한 법률(1993),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1994),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1997) 등이 보훈정책의 뿌리가 됐다.
보훈은 국가와 국민 간의 약속이자 핵심 가치
국민 대상으로 나라 사랑 정신 선양
2000년대는 민족정기를 선양함으로써 보훈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남북 화해와 협력을 모색한 시기였다. 2003년 1월 정부는 호국보훈정책기획단을 구성해 범정부 차원에서 호국보훈정책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05년 5월 31일 제정해 12월 1일부터 시행된 ‘국가보훈기본법’에서 국가보훈 발전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했다.
2006년에 접어들어 여러 부처의 협의를 거쳐 10월 19일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국가보훈위원회 회의를 개최했고, 마침내 ‘국가보훈 발전 기본계획’을 심의 의결했다. 이 계획은 5년 단위로 수립되는데 2006년부터 2010년까지가 제1차 계획기간이었다. 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00),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2001),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2002)도 발효됐다.
2006년 8월에는 국립묘지와 독립기념관 등 현충시설의 체계적 관리와 효율적 활용을 위해 국가보훈처에 현충시설과를 설치했다. 국가보훈처는 2006년 1월 국립대전현충원을 인수했고, 2007년 9월에는 보훈심사위원회의 기구를 확대해 보훈 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2015년 2월에는 국립산청호국원(관리과, 현충과)을 신설했다. 2016년 1월에는 15개 지청의 명칭을 소재지 명칭에서 포괄권역 명칭으로 변경했다.
현행 국가보훈기본법의 목적은 국가보훈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 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 사랑 정신 함양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주요 보훈 대상은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국토 방위와 자유 수호에 몸 바친 전몰•전상군경•참전군인, 민주 실현에 희생한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국토 수호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해온 제대군인 등이다.
지금까지 보훈정책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보훈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 고령화에 따른 의료•복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보훈 혜택의 확대 문제, 미신고 보훈 대상자를 발굴하는 문제 같은 해결 과제가 앞으로도 많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진다.’ 이는 국가와 국민 간의 약속이자 보훈정책이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보훈정책에서 나왔다. 그는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전사들의 가족을 확실하게 책임져주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 제도가 없었더라면 칭기즈칸의 몽골 대제국 건설은 어려웠을 터다. 앞으로 희생과 공헌에 알맞게 보훈 대상자들을 예우해야 하며, 공동체의 기본 가치인 나라 사랑 정신을 확산시키고,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 복귀 지원 등을 배려해야 한다.
조지훈 시인이 쓴 ‘현충일 노래’ 가사는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신이 없는 민족은 살아남을 수 없고, 국가의 흥망성쇠는 나라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국민정신에 달렸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 국가유공자 중심의 지원에서 영역을 확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마음속에 나라 사랑 정신을 선양하는 보훈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민족혼(조지훈), 국민정신(박은식), 나라 사랑 정신(국가보훈처)은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같은 뜻이다.
애국선열들에 대한 예우를 더 높이는 보훈정책의 추진을 기대한다. 그리고 호국보훈의 뜻도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져왔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가졌으면 싶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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