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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위안부 문제 정식 사죄까지 24년史

우리나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 제기된 것은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가 처음으로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면서부터였다.

같은 해 12월 문옥주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때까지 일본 정부는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며 정부나 군의 개입을 부인했다.

1991년 11월 태평양전쟁 말기 한인 여성들의 강제연행에 관여했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이 나왔다. 그럼에도 가토 고이치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실태를 조사하고 있으나 정부기관이 관여했다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외무부는 주한 일본공사를 불러 한국 정부의 유감을 전하고, 일본 정부의 전진적인 태도 표명을 요구했다.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처음 열렸다. 이후 이 집회는 오늘날까지 매주 이어지고 있다. 같은 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복지시설 '나눔의 집'이 개원했다. 정부에서는 전국적으로 피해자들의 신고를 접수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1992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에 관여한 증명자료들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시기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으나 사실을 조사하겠다는 약속 이외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그해 7월 '위안부 문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구 일본 정부의 직접 관여는 인정했으나 강제연행 사실은 부인했다.

1994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는 "여성의 명예와 존경에 큰 상처를 준 것으로 마음으로부터 깊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나타낸다"고 사과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듬해인 1995년 7월에도 사과와 반성을 언급했지만, 사과와 반성의 결과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발족이었다. 정부 차원의 배상이 아닌 민간기금으로 위로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국제적으로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촉구가 이어졌다. 1993년 2월 처음으로 유엔 인권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상정된 이후 수차례에 걸친 조사와 토론 끝에 1996년 4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배상을 촉구하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1994년 9월엔 국제법률가위원회(ICJ)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고, 1999년 3월엔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가 일본 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배상 권고안을 채택했다.


일본 위안부 문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나눔의 집을 방문해 협상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사죄와 배상 촉구
2000년대 들어 '인정·사죄'마저 무시한 일본

미 하원에서도 2003년 6월 위안부 피해자 관련 결의안이 상정된 이후 2005년 2월, 2006년 4월 등 계속해서 결의안이 상정됐다. 2006년 9월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고, 2007년 7월엔 미 하원에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 책임 인정 및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국제사회의 요구와는 반대로 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의 형식적인 반성과 사과조차 사라졌다. 2003년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배상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 대한 유엔의 권고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6년엔 일본 중학교 교과서 본문에서 위안부 기술이 사라졌다.

심지어 기존에 인정했던 '군과 정부의 개입', '강압성'마저 부인했다. 2007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했다. 또한 무라야마 담화를 "굳이 지킬 필요 없다"고도 했다. 2012년 8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도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2012년 9월 우리 국회가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 및 피해 배상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아베 일본 총리는 2013년 2월 "사람 납치 같은 강제를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 이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최대 현안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짚고, 일본의 전향적인 해결 노력을 촉구해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적절한 피해 배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국제사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2013년 7월엔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에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됐다. 일본 의원들이 철거를 요구하고,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위안부) 기념물 설치는 일본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지만 글렌데일시 당국은 소녀상을 보존했다.

미국 백악관은 "미국은 항상 진실을 지지할 것이고, 특히 성노예(Sex Slaves)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고 일침을 가했다.

2014년 1월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2007년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상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됐다. 같은 달 미국 뉴욕주에서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가 설치됐다.

7월엔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인권 침해 책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받아야 한다"고 해결 의지를 천명했다.

정부의 결연한 의지에 따라 한·일 양국은 2014년 4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첫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가졌으며, 이후 총 12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2015년 역사적인 12·28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번 합의와 관련해 해외 언론 및 국제사회는 한·일 양국이 역사적 진전을 이루는 합의에 도달했으며 한·일관계의 대전환을 맞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 마침내 진짜 사과'라는 제목의 12월 30일(현지시간)자 사설에서 "(합의가) 충실히 이행된다면 미국의 우방인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며 "합의 이행으로 두 나라는 (동북아)지역의 안보 문제에 좀 더 협력할 수 있을 것이며, (위안부)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정의와 평화에 근거한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AP는 "아베 총리의 사과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 자금 거출을 포함하는 이번 합의는 수십 년에 걸친 한·일 간 적대감과 불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사히신문은 "전후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세기를 맞은 해의 마지막에 양국 정부가 역사적인 한·일관계 진전을 이뤘다"며 전환기적 해에 어울리는 결정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7일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과 관련해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근혜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번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한·미·일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 관련 오해와 진실

Q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할 것이라는데?

A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므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 시에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습니다.


Q위안부 관련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하지 않을 것이며, 교과서에서도 위안부가 사라질 것이라는데?

A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내 민간단체 주도로 추진 중에 있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중 위안부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보류할 것을 확인했다는 일본 지지통신 보도(2015. 12. 29)는 사실무근입니다.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내용이 사라진다는 이야기 또한 사실무근입니다.


Q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A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 표명된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은 양측 모두에게 해당되는 상호주의적인 것으로, 일본으로서도 이번 합의 내용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분명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방 자제"도 양측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일본 정부가 진정성 있는 자세로 합의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 최호열(위클리 공감 기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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