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형은 전쟁터에 나가는 아우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었다. 설렁탕은 가난했던 그 시절 형이 아우에게 사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형은 아우와 마주 앉아 나누는 마지막 음식이 설렁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형은 아우의 귀향을 기다리다 시신마저 찾을 수 없다는 비보를 접했다.
아우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14일까지 기계와 안강, 포항 및 경주 북부일원에서 벌어진 포항 기계•안강전투에 참가해 목숨을 잃었다. 수도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제766부대로 증강된 제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 전투였다.
그러나 형은 아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의 유해를 찾기 위해 전투지 부근을 떠돌았다. 그렇게 6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고(故) 홍재구 일병. 그의 유해는 지난해 65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갔다. 유해 발굴 당시 감식을 담당했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 찾기팀’ 남상호 팀장의 이야기다.
“홍재구 일병의 유해가 발굴된 건 2005년이었어요. 신원 확인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죠. 그사이 형님 홍재철 씨는 동생을 찾기 위해 정부기관을 찾기도 하고 전투지인 포항을 찾아가 보기도 하셨어요. 형님은 설렁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전쟁터로 떠난 동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다고 해요.”
지난해 6월 4일 육군본부에 마련된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홍 일병의 형 홍재철 씨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린 정도가 아니라 울부짖으셨어요. 동생을 찾은 기쁨이 얼마나 컸겠어요.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일하면서 모든 사례가 기억에 남지만 이들 형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얼마 전 현충일 행사를 끝내고 홍재철 씨를 찾아가 뵈었는데,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염없이 꺼내셨어요. ‘동생을 찾아줘서 고맙다’, ‘실종된 유해 13만여 구 중 동생을 찾다니 나는 운이 좋았다’, ‘유해발굴감식단, 정말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럴 때는 보람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미어지기도 합니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6년간 9100여 명의 국군 전사자를 발굴했지만 그중 113명만 신원을 확인했다.
6•25 전사자 중 13만3000여 명 수습 못 해
16년간 발굴한 전사자 중 신원 확인 1.2%에 불과
남 팀장이 “속이 미어진다”고 표현한 건, 아직 발굴하지 못한 유해와 발굴했더라도 신원 확인이 안 된 이름 모를 전사자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6•25 전쟁 국군 전사자는 16만3000여 명이었는데 이 중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3000여 명입니다. 지난 16년간 9100여 명의 국군 전사자를 발굴했지만 그중 113명만이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발굴자 대비 1.2%밖에 안 되죠. 저는 2012년부터 이 일을 해오면서 16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47명의 이름을 찾아드렸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입니다.”
남 팀장은 2012년 본격적으로 유해발굴감식단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교로 임관할 때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전사자 기록 보존•관리 업무부터 시작해서 야전 부대를 다니며 전사자의 기록을 육군으로 이관하는 일도 했죠. 하나의 단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씨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은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국가적 호국보훈 사업이다. 2000년 4월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육군본부에서 한시적으로 시작했다가 2007년 1월 국방부로 사업 주체가 전환되면서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다.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 책임 의지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유가족들의 오랜 한을 풀어드리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유해 발굴 과정은 조사•탐사, 발굴•수습, 신원 확인, 후속조치 네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조사•탐사는 지역주민과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토대로 유해 매장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탐사하고 발굴 장소를 선정한다.
“발굴 지역 선정을 위해 유해 소재 파악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당시 함께 싸웠던 참전용사의 증언이나 격전지 주변 지역주민들의 제보가 절실합니다. 그러데 이분들의 평균연령이 80대 중반이라 기억력이 많이 감퇴하셨고, 국토 개발로 지형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전투 현장이 심하게 훼손돼 유해를 발굴하기 어려운 형편이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와 유해 소재 제보 절실
발굴•수습은 선정된 장소에서 문화재 발굴기법을 적용해 정밀 발굴하며, 발굴된 유해는 전통방식에 따라 한지로 싸서 오동나무 관에 입관하고 태극기로 덮어 중앙감식소로 봉송한다. 여기까지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진행되지만, 발굴된 유해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데서는 더 복잡한 과정이 따른다. 만일 인식표 등 유품이 함께 발견된다면 신원 확인이 쉽지만, 추적해보면 그마저도 본인 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고.
“신원 확인은 유해의 특징이나 나이, 사망 원인 등을 감식하고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용 시료를 추출해 유가족 유전자와 비교•분석을 통해 친족관계를 확인합니다. 유가족의 시료가 있을 때라면 가능하지만, 시료 자료에서 유가족을 찾을 수 없다면 당시 인사기록 자료, 병상일지 자료 등을 분석해 전사자가 어디에 살았는지, 본적지 행정기관에서 관련 자료를 추적해 유가족들을 찾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60여 년 전의 기록이라 남아 있는 것도 많지 않지만, 그마저도 불분명한 기록이 있어서 추적을 더욱 어렵게 한다.
“자료 분석 과정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전사자들의 자료는 모두 수기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문맹률이 높아서 본인이 직접 적지 않고 (공무원들이) 받아서 적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름이나 주소 등 인적사항이 잘못 기록된 경우가 더러 있지요.”
이제까지 3만4000여 명의 유가족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했다. 그러나 23% 정도에 불과할뿐더러 직계 유가족들이 사망함에 따라 관심도 점점 줄어드는 상태.
“이제 직계 유가족들도 많이 돌아가셨어요. 하루라도 빨리 유해를 찾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차세대 유가족인 손자나 조카들이 관심을 갖고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단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해들은 대부분 불편한 자세로 묻혀 있다고 한다. 6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낯선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남 팀장은 “유해 발굴사업은 국민의 참여가 너무나 절실하다”며 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에 적극 참여해주시고, 6•25 당시 전사자를 직접 매장하거나 목격했고 혹은 들은 사실이 있다면 제보해주세요. 또 국민적인 관심이 호국보훈의 달뿐 아니라 연중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관심만이 전쟁의 상처와 슬픔 속에서 살아오신 유가족들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을 위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 유전자 검사 대상은 전사자를 중심으로 친•외가 8촌까지이며, 거주지와 가까운 보건소나 보건지소, 인근 군병원에서 검사가 가능하다. 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으로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면 유전자 시료 채취 카드를 발송한다.
글 · 두경아 (위클리 공감 객원기자) / 사진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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