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방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는 길입니다. 이제 빨래와 청소를 할 시간이네요(웃음)."
남자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는 어쩐지 좀 어색하고 한편으론 반갑다. 이달로 육아휴직 6개월 차에 접어드는 두 아이의 아빠 김진성(42) 씨 얘기다. 요즘 그의 일상은 아이들이 중심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들 밥 먹이고 9시 10분쯤 어린이집에 보내요. 9시 반쯤 집에 들어와선 청소와 빨래를 하죠. 11시 반쯤 집안일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을 보내요.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6시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주다 들어와 저녁식사를 준비하죠.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저녁 7시 반이에요. 책 읽어주고 놀아주다 보면 금세 잠잘 시간(9~10시)이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이지만 회사에 출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영업팀 직원으로 사람 만날 일이 많았던 김 씨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며 "육아휴직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일에 매달리며 아이와 거리감 커져
쉽지 않은 육아휴직 결심
정보기술(IT)기업의 영업팀 차장인 김 씨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결혼 8년 차인 김 씨 부부에게는 여섯 살 된 딸과 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
"첫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육아휴직을 계획했어요. 그런데 업무에 치이다 보니까 자연스레 육아휴직도 미뤄졌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현저히 부족했어요."
그렇게 일에만 매달리며 일 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둘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또다시 육아휴직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었다. 그 와중에 좀처럼 아빠를 따르지 않는 둘째 아이를 볼 때마다 김 씨는 육아휴직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김 씨는 올해 팀장 승진을 앞두고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육아휴직하기) 일 년 전부터 조금씩 언급했어요. 내년엔 육아휴직을 사용할 거라고요. 다들 코웃음만 쳤죠. '요즘 힘들구나? 술이나 한잔 먹자' 정도의 반응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올해 인사 개편을 앞두고 육아휴직 의사를 밝히게 됐어요. 회사에서는 결정한 김에 바로 하라고 했고,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육아휴직을 쓰게 됐죠."
주변 동료나 친구들은 부러움보다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김 씨는 '이직하려는 거 아니냐', '자영업 준비하냐' 등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내 김이진(37) 씨는 "여자들도 육아휴직을 쓰려면 눈치가 보이는데, 남편이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 같다"며 "회사에 대한 걱정만 제외하면 남편의 육아휴직은 아내로선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한다.
육아휴직은 김 씨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육체적 피로는 여전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사라졌고, 무엇보다 달라진 아이들의 태도가 그를 기쁘게 했다.
"둘째 아이가 점점 바뀌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그 전에는 제 앞에서 잘 웃지도 않고 오지도 않았는데, 2~3주 전부터는 처음으로 안기기 시작했어요.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이가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하고요. 이제는 제가 데리러 가면 '아빠 왔다!' 하고 소리치면서 뛰어와요(웃음)."
아이들이 아플 때도 '집에 있는 아빠'는 병원보다 큰 힘이 된다.
"전에는 아이들이 한번 아프면 일주일씩 가고 그랬어요. 지금은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들 곁에 붙어 지내서 그런지 어디가 아파도 금방 낫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곁에 있는 부모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육아서적을 읽을 시간도 많아졌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행동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아이를 좀 더 전문적으로 관찰하게 됐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제가 손을 다쳤다면 딸은 걱정을 하는데 아들은 웃으면서 도망가요. 예전 같았으면 '아빠가 다쳤는데 장난치면 어떡하니' 하고 아들을 혼냈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육아서적을 통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훈육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걸 알았죠. 지금처럼 육아서적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영영 몰랐을 거예요."

육아휴직 6개월째
"우리 둘째 아이가 달라졌어요"
한편 육아의 세계에 발들이면서 김 씨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블로그(blog.naver.com/jinslovejin) 활동이다. 그는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난해 12월 1일을 기점으로 아이들과의 사소한 일상을 적어 올리고 있다.
"처음엔 그냥 몇 글자 끼적이는 수준이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더군요. 나중에 육아휴직한 일 년 동안 쓴 글들을 내려받아 책으로 만들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죠."
'육아휴직한 아빠' 김 씨의 블로그에는 마찬가지로 육아휴직을 꿈꾸는 '아빠'들의 방문이 많다. 게시판에는 주로 응원하는 댓글이 많고, 종종 쪽지로 육아휴직 관련 질문을 해오기도 한다고.
"남자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냐는 것부터 건강보험은 되는지, 급여는 나오는지, 상사에게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 등 현실적인 것을 묻는 질문이 많아요. 문제는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죠. '아빠의 달' 제도는 물론 육아휴직이 되는지 안 되는지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박근혜정부는 핵심 개혁과제 중 하나인 '일·가정 양립'의 일환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특히 2014년 10월 '아빠의 달' 제도를 시행하면서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두 번째 사용자의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2016년 1분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138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5배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전체 육아휴직자의 6.5% 수준에 머문다. 김 씨는 자신과 같은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아지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도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심지어 돌아오면 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고요. ('남성 육아휴직', '아빠의 달' 등) 제도는 잘 만들어져 있지만 쓸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있다는 게 안타까워요."
아내 김 씨는 남성 육아휴직이 좀 더 보편화되려면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나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분위기가 좋은 편인데도 남성 육아휴직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요. 국가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시행하는 기업에 혜택을 준다든지, 복귀했을 때 자리를 보전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면 더 많은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 김가영 (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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