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4월 22일 박노벽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대표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국을 대표해 '한·미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하 한·미 원자력협정)'에 가서명했다.

▷4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박노벽 외교부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대표(오른쪽)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원자력협정에 서명한 뒤 활짝 웃으며 합의문을 주고받았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은 2010년 10월에 시작해 11회의 정례 협상과 여러 차례 수석대표 및 부대표급 협의를 거쳐왔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 2년간 집중적인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개정 협정은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의 큰 틀과 원칙을 규정한 전문, 구체 사항을 담은 본문 21개 조항, 협정의 구체적 이행에 관한 합의의사록과 고위급위원회에 관한 합의의사록 등 2개의 합의의사록으로 구성돼 있다. 양국 대통령의 재가와 본서명, 의회 비준 동의 등 후속 절차가 끝나는 대로 1974년 발효된 종래 협정은 새 협정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제약은 풀고 가능성은 열고
이번 개정을 통해 우리 원전에서 사용된 핵연료(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해나갈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됐다. 중간저장, 재처리·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 영구 처분, 해외 위탁 재처리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떠한 방안을 추진하게 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 방식이 협정에 포함됐다. 과거의 일방적 의존과 통제 체제에서 벗어나 제약은 풀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게 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사 후 시험(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을 띠는 물질의 특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과 '전해환원(사용후핵연료 내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들을 제거하는 기술)'과 같은 연구 활동도 우리가 보유한 시설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에는 건별 또는 5년 단위로 미국의 동의(공동 결정)가 있어야 가능했는데, 이번 개정을 통해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전에 핵연료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안도 강구됐다. 우리나라에 대해 미국이 원전 연료 공급을 지원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장래에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이 필요하게 되면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합의해 추진할 수 있도록 경로를 마련했다.
한·미 양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포괄적 장기 동의도 확보됐다. 이로써 우리 원전 수출업계가 일부 미국산 원자력 기자재를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출입 인허가를 더 신속히 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를 서로 활발히 교류해 원전 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새로운 원자력협정에는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 중인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본격 생산의 길도 열렸다. 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 몰리브덴(Mo-99)을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수출할 수 있도록 미국의 장기 동의를 확보했다. 이로써 125만 명에 달하는 암 환자에 대한 핵의학 진단 등 우리 국민의 보건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상호적 권한 행사
실질적으로 커다란 의미
이번 개정이 의미 있는 점은 이러한 양국의 협력 방안을 규정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이 모든 방안의 이행을 차관급 상설 협의체에서 추진하고 점검해나가도록 제도화한 데 있다. '고위급위원회'로 불리는 이 협의체는 앞서 설명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 수출 증진은 물론 핵안보 분야까지 다루는 4대 실무그룹을 산하에 두고 한·미 간 원자력 협력 전반을 상시적으로 다루게 된다. 장래의 파이로프로세싱이나 저농축 추진에 관한 사항도 바로 이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한편 이번 개정 협정은 우리 원자력 활동의 자율성을 중첩적으로 보장하는 명시적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협정 전문에 이례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으로서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양국 간 원자력 협력을 확대하는 데서 주권의 침해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또한 소위 '골드 스탠더드'로 알려진 농축, 재처리 등을 포함한 제반 원자력 활동에서 상대방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 규정까지 포함돼 있다. 이는 다른 원자력협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명시적인 권리 확인인 동시에 이행상의 신의 성실의 의무에 대한 근거이기도 하다.
또 미국의 일방적인 통제권만 규정되어 있던 체제에서도 완전히 탈피해 상호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미국산 주요 장비가 포함된 우리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일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듯이, 우리 원자력 산업계가 수출한 장비를 장착한 미국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것. 우리 원자력 산업계가 주요 원전 부품과 장비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실질적 의미가 있다.
새로운 협정은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과 우리 원자력계의 역동적인 발전 가능성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감안해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대폭 단축했다.

글 · 두경아 (객원기자) 20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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