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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이 6월 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발굴유해 3위(位)에 대한 합동 안장식을 거행했다. 특히 이날 6·25전쟁 당시 먼저 입대한 동생을 따라 참전했다가 제2차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해 외롭게 남겨졌던 고(故) 강영만 하사가 동생 고 강영안 이등상사 바로 옆에 나란히 안장됐다. 국립서울현충원에 6·25 전쟁터에서 전사한 형제가 함께 안장된 것은 2011년 고 이천우 이등중사와 고 이만우 하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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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로 발견된 형 고(故) 강영만 하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던 아우 고(故) 강영안 이등상사 옆에 6월 4일 안장됐다.

 

“장가도 들지 않고 전쟁터에서 죽은 둘째 형님, 셋째 형님이 이렇게라도 서로 의지하게 됐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7남매 중에 막내인 저는 형님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셋째 형님이 휴가 나와서 나팔을 불어준 일, 전쟁터 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둘째 형님 환송해준 일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다만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시지 않아 논에 가보면 울고 계셨던 건 또렷하게 생각나지요. 너무 슬프니까 그러셨을 거예요.”

합동 안장식에 참석한 강영재(73) 씨는 “동생으로서 마음이 늘안 좋았는데 이렇게나마 형님들의 자리를 찾아드린 것 같아 마음이놓인다”고 말했다. 그날 장조카와 자녀들과 함께 그 자리를 찾은 강씨는 “형님들의 후손이 없기 때문에 찾아올 사람이 없다”면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장조카와 함께 현충원에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강영만 하사는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위패로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육군이 7월 19일 강원도 인제의 무명 1052고지에서 군번과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인식표와 함께 유해를 발굴했다. 인식표에 새겨진 이름을 단서로 병적 기록을 추적한 결과 3명의 동명이인을 찾았고, 군번과 소속, 전사 지역 등을 대조하고 유가족 을 찾아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국군 8사단 10연대 소속 고 강영만 하사(당시 25세)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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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강영만 하사의 유품.

 

인제 무명 1052고지에서
인식표와 유해 발굴

전투 기록에 따르면 고 강영만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초 자원입대한 뒤 전사하기까지 약 8개월 동안 횡성 전투, 호남지구 공비 토벌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해 무공을 세웠다. 이후 1만여 명의 북한군과 맞서 7일간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1951년 8월 19일 장렬히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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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강영만 하사 유해 발굴 현장에서 약식제례를 올리고 있다.

 

동생인 고 강영안 이등상사는 6·25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화령장 전투 등에서 맹활약했으며 1952년 10월 강원도 김화 저격능선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4년 두 개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을 만큼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형제가 뒤늦게 넋이 되어 만난 애틋한 사연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6·25전쟁 65주년의 뜻깊은 해를 맞아 이들의 형제애와 고귀한 희생정신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살아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형제를 한자리에 모시고자 나란히 안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이날 합동 안장식에는 유가족과 보훈단체, 군 장병 등 300여 명이 참석해 고 강영만 하사 외에도 고 김주환 이등중사, 홍재구 일병의 넋을 추모했다. 이날 행사는 영결식과 영현 봉송, 안장식의 순서로 경건하고 엄숙한 가운데 진행됐다.

고 김주환 이등중사는 전쟁 전인 1949년 8월 입대해 8사단 포 병대대 관측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2월 11일 강원도 횡성 전투에서 전사했고, 고 홍재구 일병은 6·25전쟁 발발 후 수도사단 1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1950년 8월 19일 기계 · 안강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들은 모두 푸른 청춘, 19세와 20세라는 꽃다운 나이였다.


6·25 전사자, 한·미 공동 유해 발굴 및 감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및 미국 DPAA 소속 전문가 등 50여 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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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6 · 25 전사자 한 · 미 공동 발굴팀이 발굴된 유골 1구를 정밀 감식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과 미국 DPAA[Defence POW(Prison of War) & MIA(Missing in Action) Accounting Agency : 국방부 합동 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는 5월 7일 경남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 임곡리 야산 일대에서 6·25 전사자 한·미 공동 유해 발굴 및 감식을 실시했다. 현장 발굴과 감식에는 유해발굴감식단 이학기 단장 등 15명, 미국 KFE(Korea Forward Element : 한국조사팀) 팀장 페드루지 대위 등 5명, 닥터 버드 법의인류학자 등 3명이 참여했다.

발굴 지역은 1950년 8월 15일까지 반드시 부산을 점령해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북한군과 낙동강 방어선에서 역공격을 계획한 킨 특수임무부대(미 제25사단장 윌리엄 킨 소장이 이끈 부대)의 치열한 격전이 있었던 곳으로,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발굴은 국방부 황우웅 인사복지실장이 어머니에게서 “발티재솔밭 일대에서 미군 킨부대 전사자를 매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 22일 국유단의 선행 조사, 탐사에 이어 올해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한·미 공동조사, 탐사를 실시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제보 지역에 대한 전사와 제보 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5월 6일부터 3일간 발굴을 진행했다.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면 현장에서 한·미 공동 감식을 실시한 후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봉송해 정밀 감식을 진행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재 발굴 기간 중에 찾은 유해 1구에 대한 정밀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페드루지 KFE 조사팀장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5만4000여명 가운데 아직 8000여 위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면서 “이번 합동 발굴을 계기로 한·미 공동조사 및 발굴이 가속화되고 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혈맹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학기 유해발굴감식단장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목숨 바쳤던 동맹국의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해 조사부터 감식까지 전 과정을 한·미 전문기관이 함께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국군 전사자는 물론 혈맹국인 미군 전사자도 그들의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이혜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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