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이마트 서울 성수점 스포츠 매장에서 일하는 연준봉(31)씨는 요즘 ‘일할 맛’이 난다. 3월까지는 비정규직이지만 다음 달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기분 좋죠. 하는 일은 똑같지만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요. 정년까지 안정되게 일할 수 있어 좋고, 특히 월급이 올라 기쁩니다.”
이마트는 3월 4일 매장 내에서 상품 진열을 전담해온 하도급 업체 소속 직원 1만여 명을 4월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급여와 처우 수준이 높아지고 정년이 보장된다. 상여금과 성과급도 지급받을 수 있어 연소득이 27퍼센트 늘어나게 된다. 학자금·의료비도 지원되고, 사내 동호회 활동에 따른 지원금도 나온다.
연씨는 “겨울에 스키 타는 게 취미인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스키동호회를 만들어 콘도 이용도 지원받을 생각”이라며 달라지는 복리후생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내 하도급은 그동안 우리 고용시장에 자리 잡고 있던 잘못된 관행이다.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맡더라도 하도급(비정규직) 직원들은 정규직에 비해 급여와 복지혜택에서 차별을 받았다.
직접고용 거부하면 매달 197억여 원 과태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2월 말 고용노동부는 이마트가 전국 23개 지점에서 근로자 1,978명을 불법적으로 파견받았음을 적발하고 이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했다. 이를 거부하면 매달 197억8,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시정 지시 닷새 만에 이마트는 하도급 직원 1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마트 홍보팀 공재훈 과장은 “회사로서는 매년 6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고용의 질을 높이기로 했다. 하도급 문제에 대해 소모적 논쟁보다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대립이 아닌 상생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올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 금융권에서는 단기계약직사원을 무기계약직 혹은 정규직으로 잇따라 전환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계약직 창구직원 838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전까지 계약직은 2년 계약 후 1년 재계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30세 전후 조기퇴직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며 승진도 가능해진다. 연봉도 15퍼센트 정도 오른다. 정규직 전환은 사무보조·기능직 등 다른 직군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공공부문에서 민간으로 ‘상생의 길’ 확산
산업은행은 무기계약직 370명을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외환은행은 4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우리은행에서도 계약직 715명을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복지혜택을 주기로 했다. 기업은행은 기간제 계약직 1,132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일괄 전환해 정년을 보장하고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복지혜택을 주기로 약속했다. 하나은행은 금융 노사 간 합의에 따라 무기계약직전환에 대해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대상자를 협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규직 전환은 올 초 공공부문에서 처음 시작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288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4만6,000여 명을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검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률상 정규직에 해당하는 무기계약직은 임금이나 복지는 계약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국정목표의 하나인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국정과제의 하나로 ‘대화와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을 추진 중이다. 노사문제를 신뢰와 타협에 기반을 둔 자율 해결로 풀어나가되 불합리·불법행위는 법과 질서에 따라 엄정조치해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방하남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3월 11일 취임식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라며 “제도와 관행을 과감하게 바꿔 나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과감한 변화는 3월 15일 접수를 마감한 한국산업인력공단 채용공고에서도 드러났다. 이 공고에서는 능력개발직(5급) 지원자격에 학력·전공·연령·어학성적 제한을 없앴다. 입사지원서는 재산 내역, 가족사항 등 직무연관성이 떨어지는 항목을 빼고 인턴 근무 경험 등 직무 수행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적도록 구성된 직무능력 기반 지원서로 대신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 만들기’에 따른 스펙 초월 채용 실천사례다. 어학성적보다 직무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송영중 이사장은 “잠재력을 중시한 인재 채용을 위해 공공기관부터 우선 스펙을 초월한 채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력파괴는 민간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한화그룹·이랜드그룹은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공고에서 기존 채용 방식을 벗어나 직무능력 중심의 선발기준을 제시했다. 한화그룹의 경우 올해부터 인·적성검사를 폐지했다. 지원자의 부담을 줄이고 직무능력을 중점적으로 보기 위해서다. 현대자동차도 입사지원서에 부모님 주소, 제2외국어 구사 능력, 고교 전공표시란을 삭제했다. 대신 모든 정보를 가린 상태에서 진행하는 ‘5분 자기 PR’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의 우수 성적자에게는 서류전형을 면제한다. 이랜드 그룹도 지원자격에서 전공과 영어 성적을 없앴다.
스펙 아닌 실력 위주 늘고 고졸 채용 범위 넓어져
고졸 채용 바람도 거세다. 삼성그룹은 올해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고졸 신입사원 공채에 나선다. 재작년까지 학교장 추천을 받아 생산·제조직 위주로 고졸자를 채용했으나 지난해 처음 사무직으로 채용 범위를 넓혔다. 애초에 600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우수 인재가 대거 지원해 100명을 더 뽑았다. 올해에는 고졸공채 700명을 포함해 모두 9,000명의 고졸 학력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최근 발표한 신입사원 채용계획에서 고졸 사원 2,600명을 뽑는다고 밝힌 CJ그룹 홍보실 민태중 과장은 “고졸 학력자를 뽑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펙·학력에 상관없이 고졸이더라도 능력 있는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취업시장에 부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구직자들도 느끼고 있다. 올해 울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취업준비 중인 손선현(28)씨는 “지난 3주 동안 10군데 지원서를 냈다. 대기업이나 공사 같은 경우 가족관계나 인적사항, 출신학교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들과 차별되는 경험이나 능력이 중요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글·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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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