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경남 일대에서 독립활동 군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돼 순국한 김화서 선생을 비롯한 7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3·1절을 맞아 정부의 훈·포장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3월 1일 제9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김화서 선생을 비롯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75명을 포상했다. 이번 포상자는 건국훈장 51명(애국장 17, 애족장 34), 건국포장 10명, 대통령표창 14명이다.
이번 포상자 가운데 여성은 3명이며, 생존자는 임광세(90) 선생이 유일하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임광세 선생은 1944년 8월 서울에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본과 2학년)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해 당원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임 선생은 그 해 12월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1945년 6월 석방됐다.
조선민족해방협동당은 1943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조직된 비밀결사다. 학병 기피자들이 모여들면서 조직이 강화되자 국내로 거점을 옮긴 뒤 일제 패망에 대비해 무장봉기를 준비하며 전국 단위로 조직해 활동했다. 조선 엘리트층의 독립운동 참여와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번 포상자 가운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김화서 선생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일제의 강제합병 직전까지 경남 합천·안의·거창 등지에서 30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독립운동을 했다. 1909년 3~10월 10여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경에 체포돼 교형으로 순국했다.
김화서 선생과 함께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순국한 심낙준(애국장)·오낙삼(애족장)·김유준(애족장)·송영수(애족장) 선생도 이번 포상 대상에 포함됐다.

역사로 생생히 남게 된 선열들의 희생정신
김화서 선생 등의 활동은 같은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가까스로 피신했다가 26년 만에 다시 일경에 체포된 전성구 선생의 증언기록(<동아일보> 1934년 10월 21일자)에서 확인됐다.
3·1운동 당시 서울의 독립선언서를 함남 원산에 전달해 현지에서 만세운동을 촉발한 곽명리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곽명리 선생은 1919년 2월 28일 서울의 3·1운동 지도자 중 한 명인 오화영 선생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300매를 받아 함남 원산의 요인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선생은 이 일로 원산지역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일경에 체포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조선총독 처단을 시도한 강우규 의사(1962년 대한민국장)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체포된 탁명숙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서울 구세병원 간호부로 일하던 탁명숙 선생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옥고를 치르던 중 보석으로 석방됐다. 같은 해 9월 조선총독 처단을 시도한 강우규 의사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다시 체포돼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무장투장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까지
1920년대 중국 남만주의 주요 무장독립운동단체에서 군사지휘관으로 활약한 안홍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서울 출신의 안홍 선생은 1922년 중국 남만주에서 광복군 총영의 모험대장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대한통의부 호위대장 및 제5중대장·헌병대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북만주 방면으로 거점을 옮겨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0년경 무장투쟁 현장에서 병사할 때까지 평생을 중국 남·북만주를 무대로 한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했다.
1920년대 초 평남 강동에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려다 체포돼 징역 13년을 선고받은 서달선 선생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서달선 선생은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를 후원할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농민단을 조직했다.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으며 폭탄 투척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일제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선생 등은 농민단을 조직한 뒤 “군자금 모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경찰관서에 폭탄을 던져 민심을 동요케 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1920년대 함북 회령에서 임시정부의 국내기관 설립을 위해 애쓰다 체포돼 징역 2년의 고초를 겪은 최환순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최환순 선생은 1920년 음력 5월경부터 회령에서 동지들과 함께 간도에 본부를 둔 국민회 지회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국내에 독판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자 당초의 계획을 변경해 회령에 임시정부 연통제 독판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관련 문서를 동지에게 전달하다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글·박경아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