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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받은 뜻 돌려드리는 게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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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 날씨 치곤 너무 더웠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주택가. 꼬불꼬불 비탈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른 후에야 겨우 집을 찾았다. 사별한 남편이 무공수훈자인 국가유공자 유족 김영실(79) 할머니의 집이다. 비탈길에 걸쳐 있는 반지하 주택.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은 바깥의 땡볕이 무색하게 서늘했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깔끔했다. 물이 새던 싱크대를 수리하고, 낡은 신발장을 교체하고, 형광등도 새것으로 바꿨다. 정부의 지원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도록 신청해 준 사람은 바로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는 서울지방보훈청 소속의 ‘보훈섬김이’ 안영옥(64) 씨였다.

보훈섬김이 경력만 8년째인 안 씨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남편을 잃었다. 15년 전 고엽제 피해자인 남편이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후 국가유공자 수혜를 받게 됐다. 그가 보훈섬김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국가에서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안 씨는 오전 9시 김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둘렀다. 보훈섬김이들의 유니폼과도 같다. 방문시간에는 앞치마를 풀지 않는다. 안 씨는 쌓여 있는 설거지를 끝낸 후 화장실로 향했다. 곧 쪼그려 앉아 김 할머니의 속옷과 양말을 손으로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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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복지 대상 가정 중 절반 이상은 세탁기를 갖고 있지 않거나 쓰지 않는다. 전기세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섬김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손빨래를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 씨는 능숙한 솜씨로 빨래를 끝낸 후 타일 사이사이와 변기까지 깨끗이 물청소를 했다.

안 씨의 얼굴에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바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김 할머니 앞에 앉았다.

김 할머니의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응~ 어머니 108이시네, 정상이에요. 계속 잘 조절하시면 되겠다.” 그는 작은 수첩에 할머니의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방문하는 집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메모가 필수다.

그는 손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관절이 안 좋다는 할머니의 무릎이며 손을 계속 안마해 줬다. 둘은 모녀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냐는 물음에 김 할머니는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속극 얘기도 하고요.

심지어 버스 잘못 타서 두 번 탔다는 시시콜콜한 수다까지도 다 화제죠 뭐”라며 웃었다.

시장 보기도 보훈섬김이의 몫이다. 비탈길을 오르기 힘든 할머니를 위해 방문 전에 사갈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김 할머니는 “가끔 ‘두부 한 모 사다줘~’ 하고 미안해서 돈이라도 줄라치면 절대 받지를 않아. 자기 돈 써가면서 봉사해 주니 맨날 고맙고 미안하지.”

오전 11시가 되자 용산구 보건소에서 할머니 댁을 찾아왔다.

안 씨가 구청에 연락해 할머니의 검진을 부탁했던 것이다. 의료연계 서비스도 보비스와 보훈섬김이들의 역할이다.

두번째 집을 찾아가는 길은 더욱 험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오르는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낮 12시 반은 가장 더울 시간이라 몇 걸음 걷자마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라 무릎이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는 “다니다 보면 지름길을 알아서 괜찮아요”라며 웃었다.

“아버지 대하듯 효심으로 지극정성이라 고마워요”

두번째 집은 국가유공자 본인인 박순환(85) 할아버지 집이다. 낡은 빌라였지만 집 안은 메모와 훈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부산의과대학을 다니다 1948년 6월 제8보병사단 군의관으로 입대한 참전용사다. 박 할아버지는 자신의 전쟁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고 말했다. “안 여사(보훈섬김이)가 올 때마다 내가 전쟁 이야기를 해 주거든. 너무 짧아. 할 얘기가 너무 많아”라며 싱글벙글이다. 보훈섬김이 서비스를 받기 전 박 할아버지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고독’이었기 때문이다. “적적하고 외로우니까요. 이렇게 말벗을 해 주는 것만으로 나는 정말 신나요.”

안 씨는 평소처럼 설거지와 빨래,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박 할아버지 앞에 앉았다. “오늘은 체조 좀 하시죠.” 박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고스톱 체조’다. 고스톱을 치듯이 패를 돌리고 돈도 쓸어모으는 시늉을 하며 박 할아버지는 연신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척추협착증으로 잘 걷지 못하지만 안 씨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산책길에 나섰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박 할아버지는 보훈섬김이 앞에서 말하기 부끄럽다며 속삭이듯 귀띔을 했다. “2년 정도 해 주셨는데…. 섬김이는 정말 깔끔하시고 저를 마치 아버지 대하듯 효심으로 지극 정성이니까 정말 고마워요. 절대 안 바뀌면 좋겠어. 정들었거든.”

사실 보훈섬김이 역할을 하고 있는 안 씨에게도 고충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힘든 때는 대상자 어르신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다.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을 것 생각하면 정말….” 말을 더이상 잇지 못하던 안 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보훈섬김이를 맞는 보훈 대상자들은 입을 모아 “반갑고 고맙다”고 말한다. 안 씨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예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우리 나이에 누군가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게 감사하지요.”라며 씩 웃었다.

그는 세번째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짐을 챙겼다. 발걸음은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듯 설레고 가벼워 보였다.

글·박지현 / 사진·오상민 기자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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