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지난해 독일 출장길에 겪은 일이다. 글로벌기업인 S사 CEO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배석한 임원 4명 중 3명이 여성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조율했던 홍보실 담당 직원도 여성, 회사에 도착해 접견실로 안내해준 보안요원도 여성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CEO는 “35세 이하 중간 간부 가운데 여성 비율이 30퍼센트 정도인데 앞으로 더 많이 늘 것”이라고 답했다. 관리자는 대부분 남자고, 여성 임원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기업 환경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차이는 간단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고등교육 이수율이 월등히 높은 우리나라에서 25~29세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시작하는 나이다. 이 시기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은 68.0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13개국 평균(74.4퍼센트)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OECD 상위 13개국은 여성고용률이 30~34세(76.0퍼센트), 35~39세(77.3퍼센트)에 상승세를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30~34세에 54.8퍼센트, 35~39세 54.1퍼센트로 급격히 하락한다.
상당수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력단절 여성은 197만8천여 명에 달한다. 여성 입장에서 한번 직장을 그만두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 기업으로서는 당장 쓸 인재가 필요한데 굳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육아·가사 등 달라진 환경에 맞는 일자리가 필요한데 그에 부합하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시간제일자리’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2010년)이다. OECD 평균(1,773시간)보다 무려 420시간이나 많다.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고, 새로운 인원을 채용하면 취업자를 지금보다 23.6퍼센트나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 양질의 시간제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여성고용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시간제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한 네덜란드의 경우 시간제일자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75.3퍼센트(2011년)에 달했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일자리 늘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올 들어 우리나라 고용률과 여성고용률·청년고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어려운 대외 경제여건 속에 거둔 나름의n성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6일 ‘시간제일자리’ 대신 ‘시간 선택제 일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예전에는 시간제일자리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서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생각됐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시간제일자리’는 자신이 하루 종일이 아니라도 몇 시간 일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주체가 된 용어로 바꿔 쓰자는 의미다.

“시간제일자리란 말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자”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자신이 선택해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적 지원을 집중해 여성들이 경력단절의 고통을 겪지 않고, 아기를 키우면서도 일과 행복하게 양립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정부가 2017년까지 고용률을 70퍼센트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것은 하나의 정책이 해결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참해야 할 시대의 과제다.
2000년대 초반 고용률이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만큼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독일과 네덜란드는 불과 10년 만에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했다. 이 두 나라가 양성의 고용평 등이 이뤄진 고용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을 단순한 정책효과로만 평가하긴 어렵다.
일단 일보다 가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과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네덜란드가 효과적으로 시간제일자리를 늘릴 수 있었던 저변에는 근로자 스스로가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남성들은 과도한 노동에서 탈피하고, 여성이 사회 진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중요하다. 애초부터 여성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육아의 책임을 남성과 사회가 나누는 합리적인 양육 모델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떤 용어를 쓰고 있는지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경력단절여성’ 대신 ‘경력중단여성’이란 용어를 쓰면 어떨까? 단절(斷絶)은 ‘흐름이 연속되지 아니하다’는 뜻이지만 중단(中斷)은 ‘긴 흐름 속에 잠깐 멈춘다’는 의미가 강하다. 더 좋은 단어가 있다면 그 또한 좋다.
‘경력단절’이란 용어를 써오는 동안 은연중에 재취업은 불가능에 가깝거나 혹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예단해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언제든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야 취업의 문 앞에 선 여성들이 더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글·장원석 기자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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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