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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내수 확대 등 기회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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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는 달러 약세보다 우리 경제에 더욱 직접적인 불안 요인이다. 달러 약세는 매출과 채산성 정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엔저는 일본과 거의 전 산업분야에서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의 수출시장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그간 고환율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삼성이 뜨고 일본의 소니, 엘피다가 저물고 현대차가 세계 5위 브랜드가 된 가장 큰 경쟁력으로 환율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이 전자산업 모바일 분야에서 지금처럼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저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도 고환율이 주는 가격경쟁력이었다. 현대와 기아차 역시 고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으로 세계 5위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엔저시대, 이제는 이런 환율 혜택을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다. 이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산업에서 수출 전망과 기업 실적은 하향 조정되고 있다. 실물경기에 선행한다는 자본시장 역시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일본 시장으로 돈이 들어가고 있다. 엔저가 대한민국의 실물경제와 자본시장 모두에 위협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엔저가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이때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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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피해 입어온 철강·화학업종은 새로운 기회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 경기가 심상치 않으니 전기·전자, 자동차 등의 수출기업들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정부가 특정 수준의 환율을 유지하는 데 나서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3먼저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시행해야 할까? 환율에만 초점을 두고 볼 때 그간의 고환율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자. 2008년 2월 930원이던 환율은 전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리먼 사태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고환율로 현대와 삼성 등 대기업의 수출 및 영업이익은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경제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확대되고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 문제 역시 심화되었다. 즉 고환율은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 및 경제 양극화, 기업들의 고환율 의존도도 심화하는 쪽으로 작동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한 환율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바람직할까? 고환율 정책의 이유는 일단 수출기업들을 살려 고용과 소비력의 증대를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전기·전자, 자동차산업 등의 고용과 소비력 증대는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전체 자동차산업의 고용 인구가 전체 고용 인구의 7.3퍼센트를 넘어서고 현대자동차의 평균 연봉이 8,900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고용 창출과 소비력 증대가 자동차산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자산업 역시 가장 큰돈을 벌어들였던 모바일 시장이 포화기에 접어들었고 모바일 제품들의 생산기지가 베트남 등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더 이상 의미 있는 고용 증대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는 대신에 그동안 고환율의 상대적 피해를 입어온 철강, 화학, 정유, 항공, 서비스, 여행 등의 다른 산업들도 우호적인 환율 환경의 혜택을 받아 새로운 고용과 소비력 증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10대 그룹이 쌓아놓은 유보금이 477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간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어온 서민층과 자영업자 모두에 혜택이 가는 정책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내수 활성화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뇌관 중 하나인 가계부채 1천조원과도 연결된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한다 해도 엔저를 엔고로 돌릴 만한 여건은 안 된다. 일본은 매달 7조5천억엔(약 86조원)의 돈을 방출하는데 한국은 경제 규모나 여건으로 볼 때 엔저를 이겨낼 수 없다. 미·일의 영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인위적으로 특정 환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환율 수준에 집착하면 오히려 어느 시점에 이르러 통제하기 어려운 변동성만 가중시킨다. 달러와 엔화의 통화량,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에 의한 환율 변화는 시장에 맡기고, 원화가 투기자본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거나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 등으로 인한 환율의 급변동을 막는 데 정부의 역할을 집중해야 한다.

엔저는 분명히 우리 경제의 힘든 환경이다. 하지만 고환율의 상대적 피해를 받아온 산업들이 재도약과 내수시장 확대 등 우리 경제에 새로운 피를 돌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글·정지홍(RHT 리스크헷지테크놀러지 대표)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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