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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부실징후 관리·진단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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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지직~ 지지직~.” “지이잉~ 지이잉~.”

전기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계 소리에 맞춰 직원의 손놀림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 직원은 오른손에는 전기드릴을 들고, 왼손에는 누전차단기를 들고 조립 작업에 열중했다.

11월 4일 경기 김포에 위치한 케이피전자를 찾았을 때 여성 직원 세 명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케이피전자는 누전차단기, 케이블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직원들 사이로 화통한 목소리의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는 케이피전자를 23년째 이끌고 있는 박승자(54) 대표다. 전자업계에서 여성 CEO가 2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하는 건 드문 일이다. 박 대표는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온 게 많이 알려져 맏언니 대접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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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계에서 인정받는 여성기업인 되고 싶다”

케이피전자의 전신은 ‘인기텍’이다. 박 대표는 1990년 인기텍을 설립했다. 당시 한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던 지인이 박 대표에게 사업을 해 보라고 권유한 게 발단이 됐다. 당시 인기텍은 자동차회사에 케이블을 납품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매출이 상승했다. 또 컴퓨터 부품까지 개발해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회사도 크게 성장했다. 직원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어느새 직원이 50명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호시절은 계속되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회사는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그때 어음들이 많이 움직였어요. 수금을 해도 현금보다 어음이 많았죠. 어음이 들어오면 그 달에 회수되는 게 아니라 적어도 3개월이 걸렸어요. 그런데 저는 현금으로 자재값, 월급을 지급해야 하잖아요. 미치는 노릇이죠. 급할 때는 사채업자도 찾아가고 그랬어요. 게다가 주문도 줄어드니까 당해낼 도리가 없더라고요.”

4박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면 힘들다는 생각보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만약 IMF 위기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대책을 마련해 볼 수 있었겠는데 아예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IMF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체감을 전혀 못 했어요.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갑자기 난리가 나더라고요. 대기업은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중소기업은 누군가 정보를 주지 않으면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힘들어요. 먼저 알았더라면 기업의 구조조정, 구조개선을 적극적으로 했을 거예요. 위기가 닥친 뒤 수습하는 식의 구조조정은 별 의미가 없어요. 미리 위기를 감지하고 그 전에 구조조정을 해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만약에 IMF가 뭔지, 경제 위기가 뭔지 빨리 알았더라면 생산관리자를 줄이고 어음을 안 받는 등의 대책을 세웠겠죠. 환율 대책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점이 정말 아쉬워요.”

이후 박 대표는 집, 사업체 규모를 줄여가며 더욱 일에 매달렸다. 상가 지하에 방을 얻어 한 편을 살림집으로, 또 다른 편은 공장으로 사용했다.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며 막내 아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지만 박 대표는 아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아들이 받은 상처만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저릿하다고 했다. 2011년엔 ‘인기텍’에서 ‘케이피전자’로 기업 이름을 바꿔 재창업에 성공했다. 케이피전자는 지난해 매출 5억원을 올렸다.

박 대표는 “아직도 어렵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업을 이끌어 갈 계획”이라며 “전자업계에서 꼭 인정받는 여성 기업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김혜민 기자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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