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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밀려온다. 새벽에 비가 내린 덕분인지 후텁지근함은 사라지고 간만에 선선함이 느껴진다. 30분만 달려도 이렇게 공기가 달라지는데 왜 자주 나오지 못했을까 싶다. 두 아이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여름캠프에 갔다. 이참에 단둘이 여름휴가 한번 즐기자며 나선 터다. ‘소매물도에서 회를 먹고, 충무김밥도 사 먹자’는 아내의 들뜬 모습에 내 마음도 연애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즐거움은 잠시.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조금씩 속도가 줄더니 아예 제자리걸음이다. 예상은 했지만 막혀도 너무 막힌다. 졸음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어제 야근의 여파가 남았나보다. 휴게소까지는 20킬로미터나 남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여보, 담배 하나만 피울게.”
“휴게소 가서 피워.”
반응이 차갑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내가 답한다. 조금 전까지 음악이라도 틀자며 신났던 아내가 갑자기 변했다.
“아직 많이 남았잖아. 한 대만 피울게.”
“요즘 몰상식하게 차 안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몰상식이란 말에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담배를 다시 넣었지만 이미 마음은 상했다.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해?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당신은 늘 그러더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 건강 생각하자는데 내 말이 틀려?”
“좋게 말하면 되지. 당신이야말로 늘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지난번에도 말이야….”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의 불똥이 튀듯 싸움의 주제는 다른 곳으로 튀었다. 휴가의 즐거움은 이미 사라졌다.
‘운전 중 흡연’이 다툼의 소재가 됐다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는 방증이다.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1,900만 대를 넘어섰다. 국민 2.5명 중 1명이 차를 가진 시대가 됐지만 우리나라의 운전 예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 문화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운전 습관이다. 특히 ‘운전 중 흡연’은 타인을 배려하는 예절이라기보다 반드시 고쳐야 할 잘못된 습관 중 하나다.
서울 구로동 집에서 서부간선도로를 이용해 여의도로 출근한다는 유진하(29)씨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면서 달리면 뒤 차량 운전자는 그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려 창문을 열었다가 봉변을 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흡연 부스 설치해 공존 모색
운전 중 담배를 피우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담뱃불을 끄려고 전방 주시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운전 중 흡연’은 본인과 동승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 차량안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아무리 창문을 열어놓아도 간접흡연율 수치가 높아진다. 영국 에버딘대학 션 셈플 교수는 14명의 흡연자와 3명의 비흡연자를 상대로 차량 내 흡연 시 잔존하는 미세 유해물질의 양을 조사했다. 분석결과 차량 내 흡연 시 유해물질 수치는 입방미터당 85마이크로그램으로 흡연하지 않았을 때(7.4마이크로그램)보다 11배나 높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기준치인 입방미터당 25마이크로그램을 크게 웃돈다. 환기를 시켜도 잘 배출되지 않는 게 문제다. 같이 있을 때 피우지 않아도 미세먼지가 그대로 남아 다음 날 차에 탑승한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법상 운전 중 흡연이 위법은 아니다. 담배꽁초를 투기했을 경우에는 범칙금 5만원을 부과한다.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와 경찰청이 합동으로 운전 중 담배꽁초 투기 행위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인 결과 한 달 새 무려 1,990명이 적발됐다. 스마트폰이나 블랙박스 등을 통한 시민의 신고 건수도 830건에 달했다. 이미 선진국들은 담배꽁초의 투기 행위뿐 아니라 차량 내 흡연을 원천 금지하는 법안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운전자들의 안식처인 휴게소에도 비흡연자를 배려한 흡연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목포 방향)에 들어서면 낯선 광경을 만날 수 있다. 화장실 앞이나 휴게소 입구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신 흡연 부스 안에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운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11월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9곳에 흡연 부스를 설치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주(강릉 방향)·화성(목포 방향)·횡성(서창 방향)·망향(부산 방향)·여산(순천
방향)·칠곡(부산 방향)·진영(부산 방향) 휴게소 등이다. 올 들어 영동고속도로 덕평(양방향)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안성(서울 방향)휴게소도 흡연 부스를 설치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화장실 앞이나 통로 등은 금연 구역으로 지정했다. 화성휴게소를 자주 찾는다는 이덕희(38)씨는 “처음에는 흡연 부스가 있어도 예전처럼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담배 연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많았는데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흡연 부스를 설치한 휴게소에서는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흡연 부스가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상태(54)씨는 “흡연 부스가 있는지 몰랐다”며 “앞으로는 흡연 부스를 이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흡연 부스를 설치하지 않은 다른 휴게소들도 역시 건물 양쪽 끝에 별도의 흡연 구역을 운영한다. 흡연자의 쉼터였던 휴게소의 변신이라 할 만하다.
글·장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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