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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전자공학도로서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제가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습니다. 비록 제 꿈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때부터 저는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식 홈페이지 중 ‘나의 삶’)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1993년 내놓은 박근혜 당선인의 첫 수필집 제목이 평범한 삶을 소망했을 만큼 박 당선인의 삶은 평범치 않았다.
박 당선인은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이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38세였던 고 박 대통령은 육군 소령이었으며, 소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있던 육 여사는 28세였다.
박 당선인의 나이 2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시절 박 당선인은 책읽기를 즐긴 온순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이후 2년 뒤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박 당선인은 가족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 육 여사의 영향을 받아 조용하며 성실했다.
성심여중고 시절 줄곧 반에서 1등을 했던 박 당선인은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미팅 한 번 안하고 공부에만 몰두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4년 평균평점이 4점 만점에 3.82점. 이공학부 수석졸업을 했다.

학자를 꿈꾸었던 박 당선인은 1974년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 유학 중 대사관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파리공항의 가판대에 꽂힌 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육 여사가 8·15경축식에서 총탄에 숨졌다는 비극을 접했다.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박 당선인은 이후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청바지를 벗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했다. 그 무렵부터 거의 매일 아침 아버지와 단둘이 식사하며 국내 정치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부친을 따라 외국 지도자들도 만나 외교 경험도 쌓았다.
1979년 10·26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쓰러졌다. 다음날 새벽 1시반 전화벨이 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 아버지의 피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오열했다.
박 당선인은 부친의 9일장을 치른 다음 두 동생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신당동에 이어 성북동, 장충동을 거쳐 1990년 현재의 삼성동 단독주택으로 옮겨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그는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1998년 IMF로,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국가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대한민국이 열심히 이룩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과 ‘국민들의 어려운 삶을 해결해야겠다‘는 신념으로 대구 달서구에 출마하였습니다. 저는 ‘정치인 박근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나의 삶’)

박 당선인은 1997년 12월 10일 대선을 8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어 1998년 대구 달성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서 하루에 10만보씩 걸으며 유권자들을 직접 만났다.
박 당선인은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불법선거자금 등으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상황에 직면하자 총선 한 달 전 새 당대표로 선출돼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에 천막당사를 치고 전국을 누비며 민심을 되돌려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이때부터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2006년 5월 20일 서울 신촌로터리에서 지방선거 유세 도중 오른쪽 뺨이 커터칼에 의해 11센티미터 찢기는 테러를 당했다. 병상에서 선거상황을 보고받자 이렇게 물었다. “대전은요?”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박 당선인은 패배에 승복하고 대선 지원유세에 나섰다. 2011년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당 지도부가 사퇴하자 박 당선인은 다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면에 등장, 당명을 새누리당으
로 바꾸며 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4·11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총선공약으로 야권연대를 결성한 민주통합당을 누르고 과반이 넘는 1백52석을 차지했다.
지난 8월 20일, 당내 경선을 통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박 당선인은 내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간다. 33년 3개월 만이다.
“제 삶이 개인의 삶 대신, 국민과 함께 가는 공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에게 국민은 늘 가족이었습니다. 국민들의 삶과 애환을 듣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여러분이 기다려온 변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그 길을 저와 동행해주세요. 국민 여러분의 행복이 곧 저의 행복입니다.”(‘나의 삶’)
글ㆍ박경아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당선이란 기록을 세웠다.
12월 20일 인터넷 웹사이트 ‘가이드 투 우먼 리더스’ 등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한 국가를 이끄는 여성 정치지도자는 박 당선인을 포함해 모두 18명(국왕 및 총독 제외)이다.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던 마거릿 대처 시대만 해도 생소했던 여성 지도자, 이제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지도자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꼽을 수 있다.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에 오른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경제위기 해결을 주도하며 경제전문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남성을 포함해 꼽은 순위에서도 전체 4위에 올랐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년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여성’ 2위에 올랐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클린턴 국무장관은 2016년 대선 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0년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정치에 입문했지만, 이미 남편의 존재감을 압도하고 있다.
남미 최대국 브라질을 이끄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대표적인 여성지도자다. 그는 196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해 게릴라 조직에 참여, 투옥과 고문 등을 겪은 투사 출신.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이면서 최근 지지율이 8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다.
변호사 출신의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호주 사상 첫 여성 지도자다. 미혼으로 평소 온화하지만 정책 대결에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전 대통령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부인으로, 세계 최초의 직선 부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호소력 있는 언변과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헬레 토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 에블린 비드머 슈룸프 스위스 대통령 등도 한 나라를 이끌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다.
아시아에서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가택연금 등으로 탄압받다 올해 보궐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해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한편 국제 금융계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전원 남성인 IMF 집행이사진 사이에서 강력한 여성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 총재직을 맡기 전에도 주요 8개국(G8) 첫 여성 재무장관 등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박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로 ‘부녀 대통령’의 탄생이란 기록도 세우게 됐는데, ‘부녀 지도자’는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에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건국 영웅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의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가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다. 1988년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던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줄피카르 부토 전 총리이다.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의 아버지는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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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