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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누가 이 소녀를 모르시나요?” 은퇴한 한 미군 참전용사가 6·25전쟁 직후 화상치료를 도왔던 한국소녀를 찾아 달라고 국가보훈처에 적극적으로 요청해 화제다. 60년 만에 옛 인연을 찾아나선 미국인 리처드 캐드월러더씨가 그 주인공이다. 캐드월러더씨는 1953년 5월부터 1년간 경기도 수원 미 공군기지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혹한의 어느 겨울 밤, 한 한국인 여성이 열두 살 정도 돼 보이는 딸을 데리고 캐드월러더씨가 지내던 부대 막사를 찾아왔다.

인근 마을에 살던 모녀는 집에서 불을 피우다 휘발유통이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다. 소녀는 얼굴과 어깨·허리까지 온몸에 약 3도 화상을 입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낯선 미군병사에게 “딸아이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니 치료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캐드월러더씨는 “당시 이웃 시골사람들이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검정 타르 같은 것을 발라줘 세균에 감염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미군부대 측에서는 일단 응급처치를 했다. 그 후 모녀는 치료를 위해 매주 한 차례 부대를 찾아왔지만 얼굴 등 전신의 화상흉터와 감염 부위를 치료하기에는 약품과 의료진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 육군 이동외과병원(MASH) 소속 헬기가 부대에 도착했다. 캐드월러더씨는 병원 관계자에게 소녀를 부산의 미군병원 화상병동으로 보내 치료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2시간 뒤 이륙할 때까지 소녀를 데려오라”는 답변을 들은 그는 통역과 함께 지프를 타고 칠흑 같은 밤길을 40여 분 달려 수소문 끝에 소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모녀를 설득해 가까스로 이륙시간에 맞춰 헬기에 태울 수 있었다”며 “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 한 여인의 모정에 큰 존경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개월쯤 뒤 캐드월러더씨는 다른 부대로 전근명령을 받았다. 귀국을 준비 중이던 그는 영내를 거닐다 화상치료 후 미군 트럭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와 뜻하지 않게 얼굴을 마주쳤다. 그는 “소녀는 환한 표정으로 차창을 두드리더니 완치된 얼굴과 목을 가리켰다”고 말했다.

그는 1954년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그 소녀를 잊지 못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85년 그의 딸이 공교롭게 주한미군에 배속된 남편을 따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방으로 모녀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답답했던 캐드월러더씨는 최근 보훈처에 한국인 소녀를 찾는다는 사연의 영상편지<53쪽 참조>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보훈처는 화상소녀를 찾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소녀를 찾으면 그를 초청해 재회를 주선할 예정이다. 화상소녀 관련 제보는 보훈처 통합 콜센터(1577-0606)로 하면 된다.

글·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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