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우리나라에서 여덟번째로 큰 섬인 연평도에 가자면 인천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배가 드나드는 것도 하루 한 차례. 2천여 명, 약 1천2백 세대가 살고 있던 연평도에 북한은 지난 2010년 11월 23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포격도발을 자행했다. 1차 포격에만 1백70여 발에 달하는 포탄이 쏟아져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 시설은 물론 3백채 가까운 민가가 파괴되고 피해를 입었다.
“그때 마침 수업을 마치고 잠시 복도에 서 있다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 학교 뒷산을 바라봤더니 불길이 치솟아 오르더군요. 처음에는 우리 군이 훈련하다 생긴 오발탄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포탄이 마구 쏟아지는 걸 보고 비상상황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 학교 안에는 유치원생을 포함해 아이들이 1백명가량 있었어요. 급히 대피소로 피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평소 대피훈련을 해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평유초중고등학교의 초등 1학년 담임 한상준(41) 교사는 포격도발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천이 고향인 한교사는 4년 전부터 이곳에 근무하고 있다.
한 교사는 1차 포격이 잦아든 뒤 정신을 차리고 대피소 안을 둘러보니 아내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이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교내 대피소를 나와보니 학교 관사 앞에서 아내와 아이가 애타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근처 대피소로 피신시킨 한 교사가 다시 아이들이 있는 교내 대피소로 돌아 올 무렵 2차 포격이 시작됐다.
“2차 포격 때 학교 관사 바로 뒤로 포탄이 떨어져 우리 집 현관문이며 실내까지 완전히 망가졌어요. 놀란 아내는 그 후로 한 달간 밥을 먹다가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충격이 심했습니다.”
교내 대피소에 있던 아이들 가운데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두려움에 떨며 부모를 찾아 울었다고 한다. 아이를 찾아 황급히 학교로 온 부모도 있었으나 다행히 1차 포격 직후 1시간가량은 전화가 연결되어 부모들 상당수가 전화로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해 아이들을 찾아헤매는 혼란은 없었다고 한다.
“아내도 그렇지만 전쟁의 공포 속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아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오히려 ‘외상후 성장’을 한 것입니다.”

지금은 초등 6학년인 한 교사의 아들 원규(12)군은 지난해 자유수호웅변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웅변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원규군은 11월 23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연평도 포격도발 2주기 행사에 추모편지 낭독자로 초청받았다.
연평도 포격도발 2주기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가족들이다. 지난해 열린 1주기 행사에서 흉상으로 돌아온 아들들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 이들이다.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52)씨는 2주기 행사를 앞두고 전화를 건 기자에게 “전화를 준 것만도 고맙다”고 했다. 아들을 기억해주어서 말이다.
“22일에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아들 묘소를 찾고, 23일에는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2주기 행사에 참석해요. 다음날에는 연평도로 들어가 위령탑 제막식에 가고요.”
휴가를 나오겠다던 아들을 기다리다 졸지에 전사소식을 들었던 김씨는 요즘도 광주에서 대전까지 2주일에 한 번은 아들 묘소를 다니러 오간다고 했다. 아들 묘소를 갔다 오면, 마치 연인을 만나고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한다. 군 입대 전 단국대에 다니던 아들은 지난해 2월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포격도발을 저지른 북한보다 오히려 우리 정부를 탓하는 주장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됐는데도 북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낳은 결과란 주장들을 들을 때면 밤잠이 안 왔어요. 포격도발을 한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만 탓하는 분들을 볼 때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합니다.”
아들을 잃은 아픔에, 그런 아픔조차도 왜곡되는 현실 속에서 김씨는 아들과 같은 전장에서 전사한 고 문광욱 일병의 가족들과 종종 같은 묘역에서 만나 아픔을 달래고, 명절 때면 전화로 안부도 묻는다고 했다.
전북 군산에서 사는 문 일병의 아버지 문영조(49)씨는 1주일에 두어 번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다고 한다. 문 일병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아직도 열려 있다.
평생 치유하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가야 할 김씨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아픔을 절대 모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라의 안보가 흔들릴 때 누구라도 그러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연평도 포격도발 2주년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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