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한국이오. 근데 그게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 국제대회에 출장을 갔을 때 현지인과 나눈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그나마 한국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남한)인가요, 아니면 노스 코리아(북한)인가요?”
런던올림픽에서는 달랐다. 런던 중심부에는 피카델리 서커스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같이 런던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삼성과 LG의 광고판이 자리 잡은 타임스퀘어처럼 피카델리 서커스에도 대형 광고판이 있는데 그곳에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광고가 연일 전파를 탔다.
삼성은 특히 11개밖에 안 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메인 스폰서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올림픽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무선통신 분야 스폰서인 삼성이 만든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것은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의 목표는 ‘10-10’이었다. 금메달 10개로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만 무려 13개를 따내 종합 순위 5위라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 앞에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영국, 러시아 등 4개밖에 없다. 대회 주최국인 영국을 빼면 땅크기나 인구 등에서 우리와는 비교조차 힘든 나라들이다.


양궁 경기가 열린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결정판이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50퍼센트 이상이 한국산 활을 사용했다. 양궁 종목에 출전한 40개국 가운데 12개국의 지도자 역시 한국인이었다. 이 때문에 남자 단체전에서는 결승전과 3, 4 위전을 한국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팀들끼리 벌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승자는 한국이었다.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남자 개인전과 여자 단체전 및 개인전을 휩쓸며 3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유럽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펜싱과 사격, 체조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신아람의 ‘1초 사건’을 계기로 똘똘 뭉친 한국 펜싱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의 쾌거를 이뤘다. 신체 조건이 좋은 유럽 선수들은 긴 팔을 이용한 펜싱을 한다. 이를 이기기 위해 한국 선수들은 발놀림을 빨리하는 ‘발 펜싱’을 연마했고, 이번 대회를 통해 꽃을 피웠다.
전통적으로 유럽이 강세였던 사격에서도 한국은 진종오가 남자 10미터 공기권총과 50미터 권총, 김장미가 여자 25미터 권총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전까지 단 한 개의 금메달도 없었던 체조에서는 양학선이 남자 도마에서 최고 난도의 ‘양학선’이라는 신기술로 한국체조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여자 리듬체조에서도 손연재가 사상 첫 결선 진출과 종합 5위라는 성과를 냈다.
스포츠 외교력에서도 괄목할 성과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황당한 오심 판정이 나왔을 때 절차를 몰라서, 또는 말이 통하지 않아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박태환이 실격을 당했을 때 대한체육회와 수영연맹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정번복을 요청해 박태환이 결선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신아람의 ‘1초 논란’ 때도 심재성 코치가 능숙한 외국어로 비디오 판독을 이끌어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설치된 현지 캠프도 한국선수단의 사기를 올리는 데 한몫했다.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초로 브루넬 대학교에 런던 판 태릉선수촌인 현지 캠프를 열어 선수들이 평소와 다름없는 환경에서 대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현지에서 느낀 영국은 달리 선진국이 아니었다. 영국 관중들은 1위를 한 선수이건 꼴찌를 한 선수이건 그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런던올림픽이 이전의 올림픽과 확연히 달라진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의 올림픽을 대하는 자세다. 금메달에만 연연하지 않고 올림픽을 위해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과정에 더 많은 애정을 보였다.


대표적인 게 수영의 박태환이다. 주종목인 남자 4백미터 예선에서 박태환은 의외의 실격을 당했다가 판정 번복 끝에 결선에 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은메달에 ‘그친’ 게 아니라 은메달을 ‘수확’한 데 주목했다.
역도 여자 최중량급의 장미란도 마찬가지다. 4위로 대회를 마감한 장미란은 두 손 모아 기도를 했고, 정들었던 바벨에 손 키스를 하고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끼고 사랑해주신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까봐 염려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장미란이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에 더 큰 박수를 보냈다.
런던올림픽대회 전후 한국은 철저히 준비했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국민들은 선수들의 활약을 열린 마음으로 즐기며 함께했다. 한국도, 한국 스포츠의 ‘국격(國格)’도, 종합 순위 5위라는 성적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글ㆍ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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