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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업의 최종 격전지는 종자산업이 될 수 있다. 우선 종자산업은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다. 고유의 종자를 확보하지 못한 나라는 반대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종자를 사용하면서 당장에 내줘야 할 로열티도 문제지만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면 외국의 종자를 계속해서 들여와야 하고, 그럴 경우 후손에게 큰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면서 외국 품종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가 2012년 종자와 관련해 지급한 로열티는 205억 원에 이른다. 이처럼 종자산업의 주도권을 외국에 계속 빼앗기게 되면 앞으로 우리가 내줘야 할 로열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종자산업은 또한 장차 닥쳐올 식량 문제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러므로 종자전쟁은 곧 식량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인구가 85억 명에 달할 2025년에는 지금보다 두 배가 넘는 식량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우수한 종자를 보유한 기업이 21세기 산업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고, 그러한 기업을 보유한 나라가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부국이 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종자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그래서 더욱 치열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종묘회사들은 종자는 물론 육종기술과 인력까지 모두 외국 기업으로 넘겨야 했다. 이른바 종자 주권의 상실기였다. 그 바람에 1983년 중앙종묘에서 개발해 우리 식탁의 매운맛을 책임져온 청양고추가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금싸라기참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개발한 먹을거리에 우리가 로열티를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국가적 손해이자 미래의 후손들이 지속해서 입게 될 손해다.

구절초

▷구절초는 예로부터 부인병에 좋은 약으로 많이 썼으며 유사종이 많아 개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금값보다 비싼 종자 개발
'골든 시드 프로젝트'

위기감을 느낀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금값보다 비싼 종자'를 개발해 종자 수출 2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연구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는 향후 10년간 종자 수입액이 5065억 원, 로열티 지급액이 290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대비해 골든 시드 프로젝트는 20개 수출용 종자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일에 2021년까지 4911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보니 당장 눈앞에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좋은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야생화의 종자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우리 야생화의 종자 개량 및 품종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산림청에서는 우선 대응 주요 야생식물 종으로 비비추, 벌개미취, 구절초, 산마늘, 고추냉이를 지정한 바 있다. 비비추 종류는 잎의 색이 다양하기 때문에 정원화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식물이다.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키 작은 좀비비추를 비롯해 꽃이 줄기 끝 부분에 모여 달리는 일월비비추, 전남 섬 지역에서 자라는 흑산도비비추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 중 흑산도비비추는 이미 반출돼 잉거비비추라는 이름을 달고 되돌아온 야생화다.

 

고추냉이

▷고추냉이는 회를 먹을 때나 초밥을 먹을 때 넣어 먹던 것에서 벗어나 쌈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하는 울릉도 자생식물이다.

 

벌개미취는 화단에 무리 지어 심기 좋은 관상화로 개발돼 여러 지역에 많이 심어진다. 함백산 야생화 단지에 가보면 집단으로 심어놓은 벌개미취가 관람객을 불러 모은다. 구절초도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에는 구절초의 유사종으로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한라구절초, 포천구절초, 남구절초, 울릉국화, 키큰산국 등이 있다. 이 중 잎이 코스모스처럼 가느다란 포천구절초라든지 잎이 두껍고 꽃이 싱싱한 울릉국화, 그리고 북방계 식물이라는 희귀성을 지닌 키큰산국은 관상용으로 개발할 가치가 매우 높은 야생화다.

산마늘이나 고추냉이는 이미 식품으로 개발돼 대중화한 야생화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울릉산마늘과 고추냉이는 울릉도의 효자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농사일에 서툴렀던 울릉도 개척민이 겨울철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목숨을 이어주었던 식물인 울릉산마늘은 명이나물이라는 이름의 장아찌로 팔린다. 산마늘은 강원 홍천 등지에서도 재배하지만 울릉산마늘은 잎이 더욱 넓고 큰 데다 맛이 좋아 내륙에서 재배하는 산마늘의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려준다. 같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고추냉이는 회를 먹을 때나 초밥을 먹을 때 넣어 먹던 것에서 벗어나 맵싸한 맛이 나는 오각형의 잎을 쌈의 재료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울릉산마늘

▷울릉산마늘은 식품으로 개발된 야생화로, ‘명이나물’로 불리며 울릉도 주민의 짭짤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우리 땅에 자생하는 식물은 4300여 종에 이른다. 종(種) 다양성 측면에서 따진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다. 현재 이들 자생식물 중에서 조경용이나 분재 또는 화훼식물로 이용되고 있는 종류는 대략 600여 가지로 알려져 있다. 현재 개량을 마치고 상업화를 시작한 야생화는 100여 종에 이른다. 잎에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산호수를 비롯해 옥잠화, 흑산도비비추, 좀비비추, 해국, 감국, 섬기린초, 노루오줌 등이다.

전 세계에서 널리 심어지고 있는 팬지나 데이지는 19세기 초 영국의 산야에서 자라던 야생화를 개량한 것이다. 피튜니아와 샐비어도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영국인들이 가져다가 개량했다. 원종은 아름답지 않고 투박한 것들이었으나 품종을 개량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꽃들이 됐다.

 

키큰산국

▷키큰산국은 북방계 식물로 남한에서는 매우 드문 희귀식물이라 새로운 품종 개발이 기대된다.

 

우리의 비비추나 구절초도 우수한 종자를 발굴하고 개량한다면 해외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갈비와 불고기에 입맛을 들인 외국인들이 그것을 명이나물과 고추냉이 잎에 싸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우수한 종자를 발굴하고 개량하는 일은 중요하다. 야생화 품종 개발을 새로운 부가가치 창조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창조경제를 이끌 미래 산업의 전략적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농부는 아무리 굶주려도 종자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손을 대야 한다. 손을 대서 종자를 개량하고 신품종을 개발해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긴 하겠으나, 한번 빼앗긴 종자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종자는 희망이자 미래다.


글과 사진 · 이동혁 (야생화 칼럼니스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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