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이용과 양조기술연구실




 

짙푸른 주변 경치가 일품인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과학원 내 한적한 연구센터. 여기서 새어나오는 발효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곳을 찾은 지난 8월 24일, 온 세상을 씻어낼 듯한 장대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그 냄새의 파장은 오히려 더 강했다. 멥쌀과 찹쌀, 누룩이 어우러져 빚어낸 전통주의 ‘하모니’였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이용과 양조식품연구센터에선 1년 내내 다양한 전통주의 향이 발산되고 있다. 여기에선 전통주 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우리 술 경쟁력 강화방안’의 세부 추진계획 중 하나인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센터 1층에 들어서자 각종 전통주와 양조기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센터 중앙 작업대 위엔 전통주 주원료인 멥쌀과 찹쌀이 자리하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이용과 최지호 농업연구사는 이들이 어떻게 배합돼 전통주로 변신하는지를 소개하기 전에 작업대에 놓인 고문헌 한 권을 가리킨다.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책이다.

“현존하는 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조선시대 내의인 전순의(全循義)가 1449년 무렵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등장한 전통주를 복원 중입니다.”

이 제조법을 바탕으로 연구원들은 조선시대 전통주를 현대화하는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4종의 전통주를 복원했다. 2008년 ‘삼일주’와 ‘황금주’를, 지난해엔 ‘녹파주’와 ‘아황주’를 복원한 것. 지금은 다채로운 맛과 향이 어우러진 ‘도화주’ ‘석탄주’ ‘벽향주’ 등의 복원 기술이 개발 단계에 있다. ‘복원’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옛 문헌 그대로 술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최 연구사는 “옛 술을 답습하는 차원이 아니고 재탄생”이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1년에 2종 정도만 복원되고 있다.

“옛 술을 그냥 똑같이 만들자면 한 달에 몇십 가지도 복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주를 최대한 복원하면서 현대인이 즐겨 찾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려면 복잡한 이화학적 분석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물론이고 제조할 때마다 당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누룩곰팡이가 내는 유기산 조성의 변화도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는지 등을 알기 위해 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하죠.”
 

지난 2년간 복원된 4종의 전통주는 멥쌀과 찹쌀의 양에 변화를 줘 얻어냈다. 맛이 깔끔하고 푸른 빛깔이 난다는 이유에서 이름이 붙은 ‘녹파주’는 멥쌀과 찹쌀을 1 대 2 비율로 투입하고, 멥쌀 양의 2.5배에 이르는 물이 들어간다. 반대로 ‘아황주’는 원료 대비 75퍼센트의 물이 소요된다. 그래서 아황주는 색이 진하고 점성이 있다.

녹파주는 지난 5월 특허출원이 완료됐다. 그리고 실용화를 위해 6월 경남 함양의 전통주 명인에게 기술을 이전했다. 아황주도 7월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최 연구사는 특허 이야기가 나오자 “오늘이 아황주 특허 심사 날”이라며 설렌 표정을 지었다. 두 전통주의 특허출원,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숙제도 남아 있다.

“옛 전통주의 특색을 살리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고, 그 맛이 균일화되기 위한 조건을 찾을 때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전통주 표준화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2012년까지 총 15종의 전통주를 복원할 계획이다. 한귀정 발효이용과장은 “전통주는 일반 주류와 달리 제조 시 1백 퍼센트 국산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전통주 산업은 우리 농산물 소비를 촉진해 농가소득을 올리는 새로운 녹색성장 동력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과장은 전통주 복원과 병행해 지역 특산명주 개발에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경북 문경에서 유명한 오미자 자체로는 지금까지 ‘당절임’은 가능했지만 술로 개발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런 오미자에 발효 과정을 접목해 술을 제조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제한적으로 음식에 활용되고 있는 옻을 첨가한 술을 개발 중인데, 현재 옻의 무독화 안전성에 대한 임상실험 단계에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 명주 개발에도 지속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정부가 전통주 산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2007년 6월 개소된 양조식품연구센터 연구원들의 하루도 무척 바빠졌다.

연구센터 2층에서는 한 ‘노신사’가 심각하게 누룩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발효이용과 최고령 연구원인 이복섭 연구원이다. 올해 69세다. 30년간 국내 한 주류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술이 좋아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연구원에겐 목표가 있다. 70세가 넘고 80세가 되더라도 제대로 된 전통주를 자기 손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전통 막걸리는 현재의 것과는 다르게 달지 않습니다. 예전엔 막걸리를 마실 때 인상을 찡그리기까지 했어요. 실험을 몇 번 해봤는데 아직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특징 있는 전통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나이는 개의치 않습니다.”

이때처럼 전통주와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는 순간은 여태 없었던 것 같다.
 

글·유재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