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지난 6월 중순 경기 성남시 태평작목반 농민들의 밭에서는 진회색 조끼를 입은 일꾼 20여 명이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풀을 뽑았다. 잠시 후 밭주인 석상운(65) 작목반장은 일꾼들을 나무 그늘 아래로 불러 모아 시원한 수박을 권했다.
원래 무더운 여름날 새참으로는 얼음 동동 뜬 막걸리가 제격이지만 이들에겐 절대금지다. 이들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속 보호관찰소의 감독 아래 사회봉사를 이행하고 있는 범법자들. 주로 음주운전이나 사기,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러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부과받거나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납부할 능력이 없어 사회봉사로 대신하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9월 도입된 ‘벌금 대체 사회봉사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3백만원 이하 소액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노역장 유치 대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봉사로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예년에도 사회봉사 대상자 중 일부가 농촌 일손 돕기를 했지만, 올해는 농촌에 더 많은 일손을 보태고 있다. ‘농촌을 살리자’는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법무부와 농협이 지난 4월 ‘사회봉사 대상자 농촌지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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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경기 화성시 금당마을에서 ‘사회봉사 대상자 농촌지원 발대식’을 열고 첫 농촌봉사를 시작한 이후 올해 6월까지 전국 54개 보호관찰소의 사회봉사 대상자들(하루 평균 약 1천명, 모두 3만5천여 명)이 농촌 일손을 도왔다.
법무부는 올해에만 사회봉사 대상자 20만명을 농촌 일손 돕기 인력으로 보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농촌의 성인 남성 평균일당(4만3천원)으로 환산하면 연 86억원의 경제적 지원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법무부 보호관찰과 이동준 계장은 말한다. 
이모(35) 씨는 음주운전으로 1백20시간의 사회봉사를 부과받아 이날 태평작목반 밭에서 일했다. 몸집이 큰 편이라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거나 허리를 숙여 잡초를 솎아내는 일이 힘들어 보이는 이 씨는 “땅의 정직함과 노동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하루를 보내며 남은 봉사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제 잘못을 조금이라도 용서받는 듯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봉사로 대신하는 게 당연한데도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뵈니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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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작목반의 석 반장도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일당 10만원을 준다고 해도 일꾼을 구할 수 없어 농작물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때는 정말 허망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봉사자들이 열 명, 스무 명 한꺼번에 와서 일을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이제 살 것 같네요. 처음에는 범법자라고 해서 조금 겁도 났는데, 막상 함께 일해보니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보호관찰소에서도 감독자가 나오니 든든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울보호관찰소는 지난 4월 29일부터 7월 12일까지 경기 남양주시와 구리시의 농가에 사회봉사 명령 대상자 3천2백68명을 보내 비닐하우스 설치 및 제초작업, 해충방지용 과일 봉지 씌우기 등에 일손을 지원했다. 주로 고령자와 저소득층 농가를 지원하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농협을 통해 신청 농가들이 쇄도하고 있다. 
배 농사를 짓는 김무근(48·남양주시 지금동) 씨는 “힘든 일을 기피하는 데다 인건비가 비싸 일꾼을 구하지 못해 막막했는데, 때마침 법무부와 농협의 도움을 받아 배꽃 솎기 등 과수 일을 마칠 수 있었다”며 “돈 내고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는 사람보다 사회봉사로 죗값을 치르면서 반성하는 사람들이라 더욱 잘해주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배 농장에서 봉사활동에 참가한 강모(45) 씨는 “무더운 날씨에다 농사일이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농민들이 이런 고된 일을 평생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농산물 하나하나에 담긴 땀과 수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부모가 떠올라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농협이 양해각서를 맺은 후 바빠진 이들이 또 있다. 보호관찰소 직원들이다. 감독자의 자격으로 농촌에 가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 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몸살을 앓기도 하고, 야근을 하며 사무도 처리해야 하니 말 그대로 ‘주경야근’이다.
“물론 힘들죠. ‘공무원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밀린 일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도 농민들이 봉사자들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며 고마워할 때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성남보호관찰소 정영환(32) 주임의 이야기다. 서울보호관찰소 정만영(53) 사회봉사 집행팀장은 “농촌 지원 사회봉사는 일손이 부족한 농민들에게 천군만마와도 같다. 사회봉사자들에게도 다른 봉사 분야보다 봉사를 마친 후 대상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지난 5월 11일 현장을 찾았다. 경기 화성시 마도면 금당마을에서 사회봉사 대상자들과 모심기를 함께 한 이 장관은 “농심(農心)을 보듬는 사회봉사는 농촌도 돕고, 사회봉사 대상자에게도 보람을 갖게 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사회봉사 분야를 발굴하고, 더 잘 관리하고 감독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앞으로 농한기에는 노후한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보수하거나 마을길 청소, 집수리 등으로 농촌 사회봉사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또한 장마철 집중호우 시에는 농수로와 도로 정비, 축사 복구, 겨울철에는 폭우로 무너진 비닐하우스 복구 등 시기에 맞는 사회봉사 활동을 도입하기로 했다.
글·최은숙 기자
사회봉사 대상자 농촌지원 신청 및 문의·각 지역 단위농협 지도계, 법무부 보호관찰과 02-2110-3583 www.moj.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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