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지난 6월 15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의 한 다가구주택 2층. 좁은 복도 양옆으로 난 현관문 중 한 곳 앞에 선 일행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돌았다. 예닐곱의 일행 중 두 명이 여성이다.
“압수수색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체념한 듯 현관문이 열렸다. 20평방미터쯤 되는 원룸 실내 모습이 여느 가정집은 아닌 게 한눈에 드러났다.
곳곳에 쌓인 각종 영화와 만화영화 불법복제 DVD들. 테이블 위에는 한꺼번에 DVD 20장을 복제할 수 있는 컴퓨터와 DVD롬, 재킷 제작용 컬러프린터와 종이, 대용량 플라스틱 잉크병 등이 수북했다. DVD 중엔 요즘 극장에서 상영 중인 <쿵푸팬더2> 불법복제물까지 눈에 띄었다.
이 집에 들어선 일행은 저작권경찰들과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 단속반원들이다. 불법복제업자에게 영장을 들이민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서울사무소의 남성 저작권경찰이었지만, 능숙하게 열린 문을 다시 못 닫게 고정하고 증거물 수집에 앞장선 사람들은 대전사무소의 여성 저작권경찰인 이향순(43) 소장과 박용경(42)씨였다. 이날은 서울·대전사무소의 합동단속이었다.
‘길보드 차트’ 시대에 이어 웹하드와 P2P 등 파일공유 사이트들을 활용한 불법복제물 제작업자·유통업자들의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의 몸싸움, 머리싸움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저작권경찰이다. 공무원 신분이면서도 검찰과 협력저작권 침해범죄 수사 업무를 맡고 있는 저작권경찰은 서울·부산·대전·광주 등 전국 4개 사무소에 33명(여성 6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1인당 60건의 저작권 침해사범을 단속하고 이 중 20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 시간가량 집안과 승합차 한 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끝내고 승합 차량 두 대에 불법복제 DVD와 컴퓨터, 프린터기 등 압수물품을 싣고 나서야 저작권경찰과 단속반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오늘은 수월한 편이네요. 업자도 순순히 응하고 압수물품도 많지 않았어요. 이제 사무소에 들어가 물품목록을 만들어야죠.”
이 소장은 현장단속에 나오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문 열리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현장단속 대상이 사무실이든 집이든, 문이 열리기 전까진 그 안의 상황을 전혀 짐작할 수 없거든요. 일단 문을 선선히 열어 줄지부터가 의문이고, 문을 연 다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법복제의 증거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이 소장은 “강제로 현관문을 뜯고 영장을 집행한 적도 있는데, 그런 경우 나중에 문 수리비도 물어 줘야 했다”며 “한번은 서울 용산상가에서 현장단속을 할 때 주인부부가 격렬하게 방해해 결국 수갑을 채워야 했다”고 전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내나 아이 등 가족이 함께 있을 때입니다.
한번은 가정집 단속현장을 나가 보니 불법복제업자 아내가 임신 중인 거예요. 혹시라도 충격을 줄까 봐 그 아내를 다른 곳에 보낸 다음 압수수색을 했죠.”
이렇게 만만치 않은 현장단속에서도 남성 못지않게 ‘거침없이 나서는’ 이 소장이다. 그가 근무하는 대전사무소는 전체 5명의 저작권경찰 가운데 3명이 여성인 전국 유일의 ‘여초 저작권경찰 사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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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은 2006년 정보통신부 시절 체신청 소속으로 소프트웨어 단속업무를 맡으며 불법복제물 단속업무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소장과 이날 현장단속에 함께 나선 박용경씨는 2004년 역시 체신청 소속으로 소프트웨어 단속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명숙(48)씨와 김찬(44)씨는 2007년, 사무소의 막내인 이종진(38)씨는 2005년부터 단속업무를 맡아 왔다.
2008년 9월 저작권경찰 출범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속을 옮겨 온 이들은 기존의 소프트웨어 단속 이외에도 저작물과 영상, 음반 등 불법 복제물 유통 사이트, DVD방 등에 대한 단속과 수사를 해오고 있다.
이 소장은 여성 저작권경찰의 경우 상대가 남성 저작권경찰보다 는 덜 경계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오늘과 같이 압수수색영장을 동반한 ‘강제단속’이 아니라 임의단속인 경우 업체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업체 관계자들에게 단속취지를 설명하고 단속이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데 여성이란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죠.”
하지만 여성이어서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상가나 시장골목 등에 있는 불법 복제물(DVD·CD·게임물 등) 판매점과 같은 곳에선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위험스런 상황이 예측되는 현장단속에는 아무래도 남성 저작권경찰이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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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보험설계사나 ‘잡상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박용경씨는 “언젠가 웹하드업체의 사무실을 방문했더니 문 앞에 출입금지자 명단이 붙어 있는데 1번이 저작권경찰이었고 2번이 잡상인이었다”며 “알고 보니 우리는 둘 다더라”라고 했다.
다른 어려움들도 있다.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는 “경기도 나쁜데 단속까지 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가정집에서 이뤄지는 불법복제들은 대부분 ‘생계형’이다 보니 궁색한 살림살이에 인간적인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저작권보호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우리를 반갑게 맞는 업체를 만날 땐 고맙죠. 그리고 우리나라도 한류 콘텐츠 수출국입니다. 우리가 먼저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우리 콘텐츠를 보호해 달란 말을 못 꺼내잖아요.”
이 소장이 웃었다. 이 소장을 비롯한 저작권경찰들은 내일 아침 또 다른 현장을 찾아나설 것이다. 이들의 수고를 통해 불법복제물 유통이 없는 ‘클린 존’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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