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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증ㆍ무담보 서민대출로 창업한 이준용·이연형 부부




“요즘 택배 주문이 많아요. 오늘도 신선한 물건을 사러 시장에 세번 다녀왔습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영희초등학교 앞에서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준용씨는 한창 상품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준용(49)·이연형(46)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여덟 평 남짓 아담한 과일가게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씨 부부가 운영하는 과일가게는 그 일대에서 ‘대박 과일가게’로 통한다. ‘장부’에 등록돼 있는 단골손님만 4백명이 넘는다. 개업한지 2년이 조금 지난 현재 월 매출 5천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7년 전 실직과 동시에 모시고 있던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게다가 다섯 살, 여덟 살, 열한 살 어린 자식들까지…, 앞길이 막막하더라고요. 한동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생각에 막노동을 전전했고 아내는 식당 등에서 궂은일을 했지만 아이들 교육은 고사하고 한 달에 1백70만원 되는 장모님 병원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씨는 “장모님의 병원비를 더 이상 감당해 낼 길이 없어 춘천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편찮으신 장모님을 먼 곳에 두고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고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서울 병원으로 다시 모셔오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악순환되는 빈곤의 고리는 끊을수 없었다. 하루하루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2008년 판교가압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한숨만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아파트 앞에 붙어 있던 공고문을 보고 술이 확 깼죠. 서민을 대상으로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을 해준다는 내용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서민대상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딧은 담보도 보증을 서줄 사람도 없어 ‘빚질 형편조차 안 됐던’ 이씨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누가 저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5천만원이라는 돈을 빌려 주겠어요. 당시엔 어떻게든 가족 먹여 살려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신청서를 냈습니다.”

이씨는 처지와 자활의지, 20년 동안 과일 업계에서 쌓은 경력 등을 인정받아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강남구청에서 위탁한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창업지원금 5천만원을 대출받아 3개월간 창업 준비를 거친 후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를 열었다.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가 대박 가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강남구청 마이크로크레딧 1호점’이라는 수식어 때문만이 아니다.

대박 가게로 자리 잡기까지는 이씨가 자체적으로 펼치고 있는 ‘첫 열매나눔운동’이 한몫하고 있다. 첫열매나눔운동이란 첫 개시 판매액은 모두 기부하는, 이씨 부부만의 나눔 운동이다. 개시 매출이 3천원이든, 5만원이든 액수에 관계없이 매일 첫 판매액은 1년째 사회연대은행에 기부해 오고 있다.

“저희 부부가 가게에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첫마디가 ‘오늘 첫 열매 얼마야?’예요. 비록 아직 17평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빚도 많이 남아 있지만 사회로부터 도움받은 것을 다시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현재까지 기부액은 약 4백만원 정도다. ‘나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이씨 부부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손님도 늘었다. 이씨는 “서로 ‘첫 손님이 되겠다’며 문도 열지 않은 가게 앞에 서 있는 손님들을 보면 더욱 힘이 난다”고 말했다.

“무조건 깎으려고만 했던 손님이나 ‘덤을 달라’고 했던 손님도 첫 열매나눔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정찰제 가격으로 해달라’고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잔돈은 아예 안 받아가는 단골 과일 한 상자 사러 압구정동에서 일원동까지 일부러 오는 단골 모두가 그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처음 창업 자금을 대출받았을 때는 ‘불우한 이웃처럼 지원금 받는 것이냐’며 아이들이 창피해했어요. 실제로 아이가 비슷한 내용으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고 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 엄마, 아빠는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기부도 한다’며 자랑스러워해요. 물론 춘천 요양원에 계셨던 장모님도 서울 병원으로 모셔왔고요.”

2년 넘게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에 나가 물건을 해오고, 단 하루도 가족 회식을 하거나 쉰 날이 없었다.

지원받았던 대출금은 이제 5분의 2정도 갚았다는 그는 “어떻게보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진 않지만 내 가게에서 내 일을 한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절망하기 전에, 자활 의지를 갖고 살길을 모색하면 자신과 같은 서민을 위한 유용한 정책이나 제도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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