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저 수평선을 넘어오는 중국 어선들을 보면 피가 끓습니다.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
지난 5월 인천해경 3005함에서 만난 이청호(41) 경장은 말수가 적었다. 각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은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해경의 중국 어선 단속 현장 르포 기사를 쓰려고 2박 3일간 승선했다. 12월 12일 이 경장이 불법 어로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국 선원들의 저항이 갈수록 격렬해져서 걱정입니다. 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지만…” 하고 말하면서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당시 3005함은 출항 하루 만에 소청도 남서쪽 해상에서 쌍끌이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했다. 3천톤급 함정을 흔드는 집채만한 파도 속에서 이 경장은 대원 10여 명과 함께 작은 고속단정(1.8톤)에 옮겨 탔다. 안개 때문에 불과 2~3미터 떨어진 사람 얼굴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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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시간 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방검복(防劍服)과 헬멧을 벗은 그의 머리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3005함 갑판에서 그가 내쉰 짧은 한숨은 모든 대원이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 그가 숨졌다. 12월 12일 새벽 소청도 앞바다에서 언제나처럼 중국 어선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려다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다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그는 검색팀장이었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중국 선원 수십 명과 망망대해 위에서 싸워야 하는 나포조 10여 명의 선봉 역할이었다.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언제나 가장 먼저 중국 어선에 올랐다.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내가 생긴 것이 험악해서 그런지 중국 선원들이 날 보면 겁을 집어먹습니다” 하면서 순하게 웃었다.
1996년 특전사 예비역 중사로 전역한 그는 1998년 순경 특채로 해양경찰이 됐다. 특수 구조단, 특수 해상 기동대, 특공대 폭발물 처리팀 등 언제나 특별한 임무는 그의 몫이었다. 12일 그의 빈소가
있던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 윤경미(37)씨와 장녀 지원(14), 장남 명훈(12), 차남 명헌(10)이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고인은 삼남매를 애틋이 대했다고 한다. 14일 이 경사의 영결식에서 장의위원장을 맡은 모강인 해양경찰청장은 고인의 영정 앞에 경사로 1계급 특진한다는 임명장과 옥조근정훈장을 놓았다. 모 청장은 조사를 읽다 “당신의 나이 이제 겨우 마흔”이라는 대목에서 목이 멨다.![]()
“정부는 고인의 의로운 행동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할 것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편지를 최동해 청와대 치안비서관이 대신 읽었다.
고인과 불법 중국 어선 나포 작전에 참여했던 장성원 순경은 “그날도 대원들 장비를 꼼꼼히 살피며 ‘절대 다치지 말라’고 당부하던 분이 어찌 우리 곁을 떠나십니까”라며 고별사를 전했다. 바다 사나이들은 온몸으로 눌러온 울음을 이기지 못해 어깨를 들썩였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총 9발이 발사되고 해경 6백여 명이 고인에게 마지막 거수경례를 보냈다.
이 경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3005함 동료들이 관을 운구차로 옮겼다. 영결식장을 빠져나가는 운구차를 부두에 정박해 있던 3005함이 30초간 뱃고동을 울리며 배웅했다. 이날 오후 인천 부평구 시립 승화원에서 화장된 이 경사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글·한상혁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던 대한민국 해양경찰대원이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公憤)이 증폭되고 있다. 2008년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해경대원이 숨진 데 이은 두번째 희생자다.
그동안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다가 부상한 해양경찰도 27명이나 된다. 해양경찰의 단속에 대한 중국 선원의 저항이 흉포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각도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먼저, 중국 어선을 감시할 해경 특공대원이 현재보다 8백여 명 늘어난다. 해경 대형함정과 어업지도선은 각각 9척, 4척을 새로 도입하는 등 총 8천8백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어획물은 반환하지 않고 압수하며 일종의 벌금 성격인 담보금을 100퍼센트 높이기로 했다.
지난 12월 15일 한나라당 정책위에 따르면 정부는 임종룡 국무총리 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중국 어선 불법조업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이 같은 고강도 대책을 내놓게 된 건 현재 인력과 장비로는 급증하고 있는 불법 중국 어선들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정부는 배타적경제수역을 침범하는 중국 어선을 1시간 내 일망타진할 수 있도록 해경의 대형함정과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지도선을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하고 각각 8천억원과 8백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책위 관계자는 “현재 대형함정과 어업지도선은 각각 29척, 34척 확보돼 있지만 한국 해경에 의해 적발된 중국 어민들 중 평생 한 번도 단속받은 적 없는 이들도 허다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대형함정에 탑승할 해경특공대원을 2014년까지 총 8천28억원을 투입해 단계적으로 총 8백1명 늘린다. 현재 4백50명 수준인 어업지도선 단속반원 숫자도 48명 늘리기로 했다. 중국 어선과 선원에 대한 처벌 기준도 강화한다. 현재는 중국 어민들의 불법조업 어획물을 담보금만 납부하면 그대로 돌려주게 돼 있는 규정을 바꿔 강제압수하기로 했다.
현재 1억원 이하인 담보금 부과기준도 2억원 이하로 높인다. 개정 담보금 부과기준은 중국 일본 등이 적용하고 있는 기준을 참고해 당정협의과정에서 다소 조정할 전망이다. 불법조업 중인 중국 선원이 해경의 지시에 불응할 경우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경 대응 매뉴얼을 단순화했다.
한편, 인천해양경찰서는 지난 12월 16일 이청호 경사를 기리기 위해 경찰서 내 빈 사무실에 상설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추모공간에는 고인이 입던 특공대 복장과 정복 등 옷가지와 나포작전 당시 사용하던 장비, 동료와 찍은 사진 등을 전시한다. 이와 함께 인천시새마을회 등 8개 사회단체는 이달 안으로 시민 대상 모금 운동을 벌인다. 추모비는 이 경사 순직 1주기를 맞는 내년 12월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 세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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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