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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


현 정부가 출범할 때 경제 분야에서는 5개 정도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4대강 살리기, 공기업 민영화, 수도권 규제 완화, 기업 규제 완화, 금융 규제 완화 등이 그것이다. 4대강 살리기로 건설 경기를 부양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민간의 창의성, 효율성을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또한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고 각종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4대강 살리기와 공기업 민영화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기업·금융 규제 완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 폐지와 금융·산업 분리 완화는 아직까지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 또 국내의 반대여론 등에 부딪혀 당초 구상이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출총제는 자산 규모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그룹)에 소속된 자산 2조 원 이상인 회사가 순자산의 40% 이내에서만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제도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했으나 기업들의 투자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출총제 폐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기업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그런 주장이 나와 적용 대상을 줄이고 출자 가능 규모도 순자산의 25%에서 40%로 확대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10개 기업집단 소속 31개사만 적용 대상이다.

정부는 출총제가 이처럼 이미 유명무실화한 상황에서 출총제와 같은 사전 규제는 폐지하고 대규모 기업집단 공시제도라는 사후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허용해 투자의식을 고취하고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금산분리 완화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산분리 완화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은행·산업 분리’라고 할 수 있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소유 한도 확대다.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시중은행의 경우 4%까지, 지방은행의 경우 15%까지 소유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시중은행 지분소유 한도를 10%로 높이자는 것이다. 또 사모펀드(PEF)와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는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둘째는 지주회사 규제 완화로 증권 또는 보험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소유하고 일반지주회사는 증권사나 보험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쪽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한결같이 반(反)재벌 국민정서에 호소한다. 은행 대출이 특혜로 여겨졌던 20여 년 전 상황에서는 재벌 사금고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 대출의 대부분을 가계나 중소기업이 이용하는 지금 상황에서 재벌 사금고화 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왠지 옹색하고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또 현행법 아래서 대주주가 마음대로 은행 돈을 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행 은행법은 동일인에 대한 여신 한도를 제한하고 있다. 은행 대출은 개별 기업에는 자기자본의 20%, 기업집단에는 25%까지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대주주가 은행원에 압력을 가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을 무시하는 말이다. 금융감독원이 정기적으로 은행을 감독하고 있으며, 그런 행위가 적발됐을 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법적인 처벌은 물론 대주주는 적격성 심사를 통해 보유 지분을 모두 팔게 될 수 있고, 불법을 저지른 임직원은 금융시장을 영영 떠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지방은행의 사례는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부산은행은 롯데제과가 최대주주로 14.11%를 갖고 있고, 대구은행은 삼성생명이 지분 7.36%로 2대 주주다. 하지만 이 은행들은 롯데나 삼성으로부터 어떤 경영권 간섭도 받지 않는다.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지도 않았다.

금산분리 규제의 문제점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4%로 제한해 은행산업 자체의 발전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데 현재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산업자본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에는 금산분리 완화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은행 부실이 불어날 경우 최후 수단은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인데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해 약 80조 원에 이르는 민간의 잉여자본을 은행이 흡수하면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아낄 수 있다. 또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했듯, 국내 은행을 외국 자본에 넘기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다.

국내 시중은행 중 정부 소유인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은 모두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다. 업계 1위인 국민은행은 외국인 지분 비율이 60%이며, 씨티은행, SC제일은행은 거의 100% 외국 소유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곳은 드물다.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그 나라의 경제 시스템, 인프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규제 완화는 형평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 에버랜드 등이 순환출자 구조로 서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금융지주회사나 일반지주회사는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할 수 없고, 제조업과 금융 간 칸막이가 확실하다. 좀 더 바람직한 지배구조라고 하는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있지만 이 같은 규제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을 꺼리는 실정이다.

글·정재형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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