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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호>특허청, 변리사수험생 서비스 시스템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변리사라는 직업이 그것이다. 2000년 초반, 모든 언론에서는 국세청 자료를 인용해 변리사가 1인당 연평균 소득 5억 원으로 국가 공인 자격증을 가진 직업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연일 보도 했다. 그것은 국가 공인 자격증의 대명사이자 전통적 고소득 직업으로 알려진 의사와 변호사를 제친 결과여서 세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때 ‘감별사’라고도 불리면서 존재마저 위협받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일종의 사건이었다. 흔히 21세기를 ‘지식정보화사회’라고 부른다. 지식과 정보의 집약인 고도의 기술 발명을 다루는 직업이 바로 변리사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변리사를 지식정보화사회에서 가장 각광받는, 미래에 가장 유망한 직업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변리사 시험은 인기 상종가를 치며 희망 직업 순위 1위로 급부상했다. 이미 변리사 시험은 수험생 사이에서 ‘이공계의 사법시험’으로 통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변리사 시험을 주관하는 곳은 특허청이다. 주무과인 산업재산보호과의 전화는 그즈음 불이 날 지경이었다. 변리사의 소득이 그렇게 많은지, 몇 년 공부하면 변리사에 합격할 수 있는지, 또 변리사도 의사나 변호사처럼 중매시장에서 인기가 좋은지 등 변리사에 관해 묻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변리사에 대한 높은 관심은 그 후에도 여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예감해 특허청에서는 1999년 1차적으로 「변리사법」을 개정해 변리사 선발 인원을 2000년 120명, 2001년부터 200명으로 늘렸다. 이런 낭보에 최고 소득 직업이라는 프리미엄까지 겹쳐 변리사 수험생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사실 디지털 시대라고 불렸던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수험생은 오프라인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자신의 수험 일정과 최신 시험정보 그리고 합격 전략 등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수험생들은 대부분 전화로 문의하거나 산업재산보호과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식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특허청 홈페이지에 변리사시험 코너는 있었다. 하지만 일방향적인 안내에 그쳤을 뿐이다. 수험생들이 특허청 홈페이지에 올린 변리사시험 관련 문의 처리 또한 원시적이었다. 시험 담당자가 비슷한 질의끼리 분류한 다음 응답 또한 묶어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수험생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빠른 시간 내에 구체적 정보 욕구를 채워 주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변리사 수험생이 늘어나면서 그때까지 소수의 수험생만 을 대상으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던 변리사시험 제도에 일대 변화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또 빠르게 변화하는 변리사 관련 국제사회의 동향도 이런 변화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B]고품질 토털서비스로 혁신 인프라 구축[/B] 당시 특허청은 글로벌 경제가 가속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도하개발아젠다(DDA) 등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의 국제적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망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런 세계적 환경 변화에 대비해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변리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또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변리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변리사 수험생의 폭발적 증가와 세계적 환경 변화로 변리사 관련 업무혁신은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다. 특허청은 이를 위해 특허행정혁신 종합대책 태스크포스팀인 ‘변리사시험제도개선팀’을 신설해 업무혁신 작업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태스크포스팀에서 애초 만든 혁신 안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빠르고 정확한 것이 생명인 시험정보를 수험생에게 제공하기 위해 변리사시험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하자는 것, 둘째는 업무의 성질상 철저한 확인 작업이 수반돼야 하므로 이를 강화하기 위해 변리사시험 전담팀을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철저한 내부 검토를 거쳐 마침내 2003년 2월 변리사시험 전용 홈페이지가 개설돼 업무혁신의 기초를 다졌다. 그 안에 ‘인터넷을 통한 고품질 토털 서비스 제공’이라는 목표 아래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코너를 마련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모든 혁신이 그렇듯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 어려움의 첫번째는 무엇보다 담당 공무원들의 바뀌지 않는 마인드였다. ‘민원 담당은 골치 아프다’ ‘질의에 대한 응답은 규정의 범위를 벗어나면 곤란하다’는 식의 경직된 의식이 그대로 노정됐던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오래 근무할수록, 경력이 붙을수록 보수성이 강화되는 공직사회의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변리사시험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한 대의가 무엇이었던가? 양방향 대화를 통해 진정한 시험행정 수요를 찾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특허청은 인사개혁의 한 방편인 ‘직위 공모’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친절하고 끈기 있을 것’ ‘시험 관련 규정을 잘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두 가지 요건과 ‘경력을 불문하고 근무성적평정에서 우대하겠다’는 당근이 뒤따랐다. 이를 통해 홈페이지 운영 담당팀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재탄생한 변리사시험 전용 홈페이지는 2004년 12월 현재 1일 최고 680명, 연간 총 13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성시를 이뤘다. 홈페이지 개설 이후 특허청 전담팀은 그날 그날 수험생의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즉시 답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또 담당 공무원 자신의 과거 수험 경험을 토대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최대한 상세하고 친절하게 응답한다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기본에 속한다. 그 바탕은 수험생과의 정서적 일체감이다. 이러한 교감이 투명한 열린 행정을 낳고 수험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허청 박호형 혁신팀장은 “수험생과 시험 담당자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토론함으로써 진정 수험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람직한 행정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며 “이처럼 수험생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함께하는 행정이 혁신의 성공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RIGHT]백창훈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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