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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청와대 영빈관 앞뜰을 자세히 살펴보면 8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옛 왕궁 정전(正殿) 등에서 볼 수 있는 삼도(三道·하나의 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만든 길로, 가운데 부분은 왕을 위해 만들었고 좌우 부분보다 약간 높다)와 품계를 나타내는 마당도 있다.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 왕들이 직접 경작했던 친경전(親耕田)을 본떠 만든 ‘팔도배미 터’다. 그 유래를 살펴보자.

예부터 동아시아의 왕은 몸소 농사를 체험하고 권장하며, 풍년을 기원하고 풍흉을 살피려는 목적에서 왕궁 안에 전답을 만들었는데, 이를 친경전 또는 적전(籍田)이라고 했다. 조선왕실의 경우도 세종 22년(1440) 경복궁 후원에 밭을 두고 왕이 직접 경작했으며, 세조 2년(1456)에는 경복궁 안에 취로정을 짓고 그 남쪽에 2, 3경의 논을 만들어 왕이 농사짓는 일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고종 30년(1893)에는 신무문 밖 후원에 논밭을 8구역으로 나눠 친경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의 전국 8도(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황해, 평안, 함경)를 나타낸 것이다. 이 논밭은 친경전 또는 적전이라는 본래 이름보다 별명인 ‘팔도배미’로 더 많이 불렸다. 고종은 매년 봄 신하들을 거느리고 팔도배미에 거동해 각 도에서 올라온 곡식의 종자를 심었다고 한다. 영빈관 앞뜰을 8개 권역으로 나눠 삼도와 품계를 나타내는 마당을 만든 것은 팔도배미에서 유래했다.




대한제국 때인 1905년 8월쯤에 건립된 침류각은 지금의 대통령 관저 자리에 세워졌으며,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침류각에서 침류란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건물 전면 기둥에 부착된 7개의 문답형식 주련(시문 구절을 널빤지에 새긴 뒤 기둥에 붙여 놓는 장식물) 내용을 보면 과거 이곳이 풍류를 즐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고종 때 신무문 밖 후원에 건립한 많은 건물 가운데 청와대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외관은 팔작지붕에 ‘ㄱ’자 모양의 곱패집(평면 모양이 ㄱ자임은 물론, 지붕의 용마루도 ㄱ자 모양으로 꺾인 집)이며 앞면 4칸, 옆면 2칸 반의 몸채에 좌측 앞과 우측 뒤 각 1칸씩을 돌출시켰다. 실내의 좌측에는 2칸의 대청마루가 있고, 우측에는 3칸 규모의 방이 있으며, 그 앞쪽으로 1칸의 누마루가 있다.




북악산 기슭에는 서울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하 불상)이 있다. 지금의 대통령 관저 자리에 있던 것을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1917년 발간된 <선고적도보> 제5책에 따르면, 이 불상은 1912년 데라우치 총독에 의해 경주에서 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됐고, 당시 소장처가 서울 남산에 있던 총독 관사인 ‘왜성대’로 돼 있다. 또 <매일신보> 1934년 3월 2일자 보도에는 총독부박물관 직원 가야기가 “이 불상이 위 석조약사여래좌상과 함께 경주의 한 골짜기에 있다가 같은 시기, 즉 1912년에 옮겨졌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1935년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도록>에는 이 불상의 원 위치를 경주 남산 삼릉계의 한 계곡이라고 적었다. 즉, 여러 사료를 종합해볼 때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계 계곡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939년 총독 관사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신축될 때 왜성대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불상은 우견편단의 법의에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어 석가여래좌상으로 볼 수 있다. 눈 꼬리는 약간 올라갔으나 아래를 보고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가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 중 하대석과 중대석은 사라졌고 현재는 상대석만 남은 상태다. 팔, 어깨, 등허리가 일부 파손됐으나 2007년 보존처리했다. 이 불상은 8세기 중엽에 만든 석굴암 본존불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청와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정자로, 지금의 대통령 관저 자리에 있던 것을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오운(五雲)이란 오색의 구름으로 별천지, 신선 세계 등을 상징한다. 오운정이란 이름은 원래 고종 5년(1868)과 6년 사이에 경복궁 후원에 지었던 오운각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오운정은 광복 이후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뚜렷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서울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돼 있으며, 현액(縣額)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

조선시대 왕궁 건물을 모방한 것으로 규모는 약 7.6㎡이며, 지붕은 이익공(二翼工·소의 혀처럼 생긴 장식이 둘로 된 익공) 형식을 취하고, 바닥은 마루바닥이며, 사방이 창호지문으로 돼 있다. 천장은 오색으로 단장돼 있고, 외부는 주칠과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정리·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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