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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 보면 바지 섶에 들러붙는 ‘녀석’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엉겅퀴 씨앗이다. 멀리 퍼지기 위해 사람 옷이나 동물 털에 붙을 수 있는 갈고리 구조를 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발명가가 엉겅퀴 씨앗에서 영감을 얻어 일명 ‘찍찍이’라는 벨크로를 개발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체는 수십억 년간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다듬어져 최적화된 작품이다. 이런 생물체의 기본구조, 작동원리를 모방하고 응용해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자연모사 기술’(nature inspired technology)이다. 자연모사 기술은 생체모방 기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공학기술에 더 가깝다.

신발이나 의류는 물론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내에서 물건을 고정시키는 데 쓰이는 벨크로 테이프는 엉겅퀴 씨앗의 기능을 공학적으로 모사한 대표적인 예다. 최근 국내외 연구자들이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는 게코(gecko)도마뱀, 비가 와도 물에 젖지 않는 연꽃잎 등을 흉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마뱀 발바닥서 찾은 접착테이프
지난해 12월 서울대 김호영 교수는 소금쟁이가 물에 빠지지 않고 물 위를 걷는 원리를 알아내 국제저널 ‘랭뮤어’에 발표했다. 소금쟁이는 특정 속도로 물을 차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물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 김 교수는 현재 이 원리를 이용해 소금쟁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소금쟁이 로봇을 이용하면 강이나 바다에서 환경을 감시하거나 군사작전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국방부는 2011년까지 개나 말처럼 험악한 산악지형에서 군장을 싣고 이동할 수 있는 견마(犬馬) 로봇을 개발할 계획이다. 견마 로봇은 지뢰가 묻힌 지역이나 화생방 오염지역에서도 사람 대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청(DARPA)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와 함께 바위지형을 기어오르는 개를 닮은 네 발 로봇 ‘리틀 도그’를 개발해 공개했다.

코끼리 코를 닮은 로봇 코도 등장했다. 2006년 미국 클렘슨대 연구팀은 길이가 1m인 인조 코끼리 코 ‘옥탐’을 개발했다. 옥탐은 콜라 캔이나 상자를 들어 옮길 뿐 아니라 땅콩 한 알도 집을 수 있다. 코끝에는 사물을 판별할 때 이용하도록 소형 카메라, 촉각센서 등이 장착돼 있다.

또 2006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게코도마뱀처럼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인 ‘스티키봇’을 개발했다. 스티키봇은 가느다란 털을 수백개씩 발가락 끝에 달고 있어 도마뱀과 같은 원리로 벽에 착 붙을 수 있다. 게코도마뱀의 비밀은 이에 앞서 2000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알아냈다. 도마뱀 발바닥에는 가느다란 털(섬모)이 수없이 존재하는데, 연구팀은 이 섬모와 벽면 사이에 ‘반데르발스 힘’이 작용해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게코도마뱀이 맘대로 붙어 다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섬모가 달린 구조물을 만들어 물체의 표면에 장착한다면 끈적끈적한 성분이 없어도 붙였다가 뗄 수 있는 획기적인 접착기구가 가능하다. 서울대 서갑양 교수가 이끄는 우수연구센터에서는 게코도마뱀 발바닥을 흉내 낸 일명 ‘게코테이프’를 개발하고 있다. 게코테이프는 기존 접착테이프를 대체하는 것은 기본이고 반도체 제작공정에 유용할 전망이다. 반도체는 청정한 진공환경에서 제작해야 하는데, 반도체기판을 가공하면서 들어 옮겨야 할 때 게코테이프를 사용한다면 기판을 깨끗하게 옮길 수 있다.





 

물에 젖지 않는 연꽃잎 효과, 세차 걱정 뚝!
연꽃잎은 비가 와도 물방울이 맺혀 먼지와 함께 흘러내리며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비결은 표면 구조에 있다. 연꽃잎 표면에는 미세한 돌기가 오톨도톨 돋아 있어 물을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이를 ‘연꽃잎 효과’라고 한다.

한국기계연구원에서는 연꽃잎 효과를 지닌 투명필름 제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 나종주 박사팀은 실험실에서 가로와 세로가 3㎝로 크기가 작고 1주일쯤 연꽃잎 효과가 지속되는 필름을 개발한 바 있고 지난해 11월에는 관련 기술을 국내에 특허로 등록했다.

이 필름이 건물의 유리창, 자동차의 선탠용 필름과 사이드미러, 거리의 표지판에 부착된다면 비가 와도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 표면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욕탕 거울에 연꽃잎 필름을 코팅하면 김이 서리지 않고 자동차 전체에 이런 필름을 코팅하면 따로 세차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연꽃잎 효과를 이용한 페인트나 섬유도 등장하고 있다. 독일의 한 연구팀은 비가 건물 외벽의 때를 씻어내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는 페인트를 개발했고, 미국 해군연구소는 물을 엎질러도 툭툭 털어버리면 되는 ‘때 안 타는 섬유’를 제작했다. 이 섬유를 이용하면 비에 젖지 않는 옷도 만들 수 있다.

한편 후미진 곳에 걸려 있어 귀찮게만 보이는 거미줄은 강철보다 5~10배 강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공 거미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거미줄 성분의 단백질을 합성하고 거미줄을 생성하는 과정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캐나다 생명공학회사인 넥시아에서는 거미줄 유전자를 염소에 이식해 이 염소의 젖에서 거미줄 단백질을 뽑아낸 뒤 전기방사공정을 통해 인공 거미줄인 ‘바이오스틸’을 개발한 적이 있다. 바이오스틸은 의료용 봉합사로 쓰일 수 있다.

인공 거미줄은 화상을 치료하는 거즈로도 개발되고 있다. 기존 거즈로 상처 부위를 덮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새 살이 자라기 힘들지만, 인공 거미줄 같은 미세한 섬유를 뿌려서 만든 거즈는 공기가 통하는 미세한 틈새가 있어 새 살이 돋는 데 좋고 이 틈새로 세균은 침투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공 거미줄 거즈는 동물실험 단계라고 한다. 자연의 생물체를 공학적으로 모방하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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