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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지난해 11월, 일본에 입국하는 영화배우 배용준을 보기 위해 나리타(成田) 공항을 가득 메운 7,000여 명의 팬들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8월30일 배용준이 참석한 영화 <외출>의 시사회가 열린 도쿄국제포럼 주위에는 또다시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도심이 마비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처럼 배용준은 올해도 변함없이 일본에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 열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31일 배용준이 콘서트를 가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돔구장에서는 각종 ‘최대’ ‘최초’ 기록이 양산됐다. 무려 3만 명이 몰린 이날의 관객은 우선 사이타마 경기장 공연 사상 최대였다. 일본 공연 최초로 사용된 1,000인치 스크린, 23억 원의 공연 제작비, 하루 10억 원의 부가상품 판매액 등도 같은 맥락의 기록들이다. 또한 9월1일 기자회견에는 방송 카메라만 90대가 동원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취재진이 참석해 배용준이 일본에서 ‘최고 스타’임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배용준에게 열광하는 일본 팬들의 주력은 40대 이상 여성이다. 한국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주부들을 대중문화의 소비 주체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일본 주부들의 대중문화 구매력과 충성도는 철저히 외면돼 왔다. 이들 여성이 <겨울연가>를 통해 배용준이라는 스타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겨울연가>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20대부터 노년층 남녀 모두에게 두루 인기를 구가했던 <겨울연가>의 열풍이 가라앉은 후 이들 중년 여성 대부분은 배용준의 팬으로 남았다. 한 스타를 좋아하는 기간이 비교적 길고 꾸준한 것이 일본 팬들의 특성이다. 배용준의 팬들 또한 배용준 관련 콘텐츠는 물론 그가 이후에 출연한 작품들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다. 배용준은 드라마와 달리 그동안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영화를 통해 일본에서 새로운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배용준이 주연한 영화 <외출>은 UIP재팬 배급 사상 최대인 15만 장의 예매권 판매를 기록했다. 개봉 3일 만에 40억여 원의 수익을 거두는 등 일본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아줌마들은 배용준을 ‘욘사마’라고 부른다. ‘사마’는 ‘님’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상대를 부르는 최상급 호칭이다. 일본 아줌마들에게 배용준은 꿈에 그리던 ‘백마 탄 오우지사마(왕자님)’인 셈이다. 배용준이 모델로 등장한 건강음료·초콜릿 등 각종 상품의 매출 규모는 광고 전에 비해 최소 30% 이상 증가해 모두 ‘대박’을 터트렸다. ‘욘사마’가 ‘올해의 인기 상품’ ‘올해의 단어’ 등으로 선정된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배용준의 열성 팬 90% 이상이 가계의 ‘구매권’을 쥐고 있는 30∼60대 주부여서 가능한 일이다. 이들 주부는 수백만∼수천만 원을 써가며 한국에서 ‘겨울연가 투어’를 즐기러 바다를 건너온다. 이처럼 일본에서 소비자(팬)를 구름처럼 몰고 오는 ‘욘사마’는 공급자(문화사업가·광고주·언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고 상품’인 것이다. 일본 기업이 ‘돈이 되는 욘사마’를 그냥 놔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자연스레 ‘욘사마’를 일본인의 뇌리에 재각인시킨다. 이는 곧바로 업체와 배용준의 ‘매출’로 이어져 ‘또 다른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치솟는 배용준의 인기는 일본 내 한류의 지속적인 전파에 일조하고 있다. 그게 바로 ‘다이내믹 욘사마’의 힘이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중국 대륙에서는 한국 TV 드라마 <대장금>의 열풍이 뜨겁다.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대장금> 바람이 아시아에 산재한 중화권 나라들을 휩쓸고 있다. 그 중심에 이영애가 있다. <대장금>이 방영되기 시작한 지난 9월 초부터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의 먹을거리와 미용·패션 등에는 한류가 새롭게 봇물처럼 밀어닥쳤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장금이 신부복’을 입겠다고 나섰다. 충칭(重慶) 시내 한 결혼사진관에는 ‘장금이 신부복’ 코너가 등장했다. 올 가을에 결혼식을 올릴 신부 100여 명이 7,000위안(약 100만 원)이나 하는 ‘장금이 드레스’를 입고 촬영을 마쳤거나 예약했다. 또 쓰촨(四川)성의 일부 훠궈(火鍋) 집에서는 ‘대장금 김치훠궈’를 내놓기도 했다. 잘 익은 포기김치를 탕에 데쳐 먹거나 아예 탕을 김칫국물로 만들어 그 안에 각종 재료를 데쳐 먹는 요리다. 후난(湖南)성에서는 ‘장금’역을 맡고 있는 이영애의 얼굴형으로 성형수술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의 유명 식당인 ‘종가’의 경우 대장금 걸개그림을 걸어놓고 손님을 모으고 있다. ‘대장금 열풍’이 중국 대륙에 상륙한 것은 의미가 크다. 아시아권 전역에 이영애 발(發)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NHK에서 <대장금>을 방영하면서부터다. 당시 <대장금>은 일본 시청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왕과 왕비를 비롯한 조선 궁궐 생활상이 재연된 것이 일본인의 눈길을 붙잡았다. 특히 “조선의 왕궁을 다루면서 ‘수라간’이라는 식당(?)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든 것이 무척 특이하다”는 반응들이었다. 한국의 전통음식에 담긴 지혜가 소개돼 새삼 일본에 ‘김치 열풍’을 다시 불붙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욘사마 패키지 상품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이 김치 쇼핑에 열을 올렸고, 한국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가기도 했다. 이영애가 최근 개봉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 금자로 출연한 점도 일본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박찬욱 감독은 이전 영화 <올드보이>의 세계적 성공으로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 후 ‘박찬욱 마니아’가 수만 명 생겼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오는 상황이다. 박 감독이 만들고 이영애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친절한 금자씨>에 거는 일본팬들의 기대는 대단하다. 일본에서의 이영애 선풍은 11월 공개 예정인 <친절한 금자씨>로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드라마 <대장금>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지지를 받는 이영애. 그가 <친절한 금자씨> 개봉에 때를 맞춰 일본을 방문할 경우 배용준 못지않은 올 하반기 일본 연예계의 최대 뉴스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영애의 한류 대열 부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일본 남성이 좋아하는 ‘천연미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인 일본 여자 연예인의 성형미에 질린 일본 팬들이 이영애의 자연스러운 미모에 큰 점수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배용준·이병헌·박용하 등 한류 남성 스타에게 애인과 아내를 빼앗긴 일본 남성들에게 은근히 ‘반감’이 생겼고, 대리 욕구를 채워줄 ‘이상형의 여성’ 이영애가 자연스레 아내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는 흥미 있는 분석도 나온다. 발행부수 34만2,000부를 자랑하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전문잡지인 <피아(PIA)>는 지난 9월22일 발행된 578호 특집기사를 통해 ‘한류 붐의 절정기가 왔다’며 이영애가 향후 일본 내 한류의 중심에 설 것임을 예고했다. [SET_IMAGE]5,original,center[/SET_IMAGE] 무대 위에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섹시한 춤과 독특한 보이스. ‘정지훈’이라는 본명을 가진 비는 10대 소녀팬은 물론 30, 40대 기혼여성들에게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멀티플 엔터테이너다. 비는 탁월한 가수이면서 열정적인 연기자이기도 하다. KBS TV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와 <풀하우스>를 통해 다른 가수들의 연기 겸업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성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최고의 흥행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1982년생인 비는 고교 시절부터 댄스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이후 언더그라운드 댄스팀에서 활동하며 학교 축제는 물론 서울 신촌과 홍대앞을 비롯한 각종 무대에 오르면서 연예활동의 초석을 닦았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박진영 씨에게 발탁되어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준비하게 되었다. 비는 2002년에 데뷔 앨범 <나쁜 남자>를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동명의 타이틀곡인 <나쁜 남자>가 히트하면서 각종 미디어에서 영순위 슈퍼스타로 손꼽히게 되었다. 비의 데뷔 앨범에는 인기 절정의 GOD 멤버 데니 안과 S.E.S의 바다가 적극 참여해 더욱 주목받았다. 비는 데뷔 앨범으로 단숨에 각종 차트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정상을 차지하는 등 그해 음반 시상식 및 가요제의 신인상을 모조리 휩쓰는 쾌거를 이룩했다. 현재 비는 중화권 최고의 스타로 그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한류 스타’라기보다 중화권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는 얘기다. 비는 올 초부터 서울·부산·도쿄(東京)·오사카(大版)·홍콩·베이징(北京)을 잇는 아시아 투어를 벌이고 있으며 오는 10월8, 9일 홍콩 공연, 10월22일 베이징 공연을 마지막으로 아시아 투어의 대단원을 마감한다. 10월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비의 단독 콘서트 티켓은 공식 현장판매 1시간 만에 100% 매진됐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중순 인터넷 예매 때는 오픈 10분 만에 매진을 기록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비가 콘서트를 여는 홍콩컨벤션센터는 최대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이다. 끝도 없이 늘어선 현장판매 대열에 끼기 위해 자릿세만 500홍콩달러(약 8만 원) 이상을 내놓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부 팬 중에는 1인당 500홍콩달러를 주고 사람을 매수해 줄을 세워 티켓을 구한 사례도 있었다. 콘서트 티켓이 품귀 현상을 빚자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가장 저렴한 티켓인 150홍콩달러(2만 원)짜리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호가 200홍콩달러(2만6,000원)부터 거래되고 있고, 580홍콩달러(7만6,000원)짜리는 1,600홍콩달러(21만 원)부터 3,000홍콩달러(40만 원)까지 치솟았다. 비는 오는 10월22일, 4만 명 규모의 중국 베이징 공인(工人)체육장에서 단독 공연 ‘Rainy day-Beijing’을 갖는다. 한류 스타들의 합동 콘서트가 아닌 단독 공연으로 4만 명 규모는 유례 없는 대규모다. 비는 아시아 광고 시장에서도 최고 몸값의 스타가 됐다. 일본 DHC화장품 홍콩 모델에 이어 지난 9월 초에는 홍콩 이동통신사 One2Free와 전속모델 계약을 맺었다. 1년간 계약조건은 80만 달러 수준으로, 두 회사와의 광고계약을 통해서만 무려 160만 달러(약 18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비의 매니지먼트사는 필리핀·태국 등 동남아 각국의 방문공연 요청에 스케줄조차 내줄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을 적셨던 비는 이내 한류 쓰나미가 되어 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형국이다. [SET_IMAGE]6,original,center[/SET_IMAGE] 보아는 일본에서만 정규 앨범 3장과 베스트 앨범 1장이 47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지난 3년간 벌인 30여 회 공연은 모두 매진됐고, 관객은 40여 만 명.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스타다. 블룸버그의 한 칼럼니스트가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보아가 빠졌다고 아쉬움을 표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다. 보아의 연예계 입문은 다른 많은 연예인처럼 ‘우연히’ 이뤄졌다. 댄스그룹 오디션을 보러 SM엔터테인먼트를 찾은 오빠를 따라갔다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이사는 오빠가 아닌 보아를 눈여겨보며 노래를 시켰고, 보아는 S.E.S의 노래로 화답했다. 만만치 않은 ‘끼’를 드러낸 보아는 1998년 초부터 SM엔터테인먼트에서 2년여에 걸친 하드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방과 후 평일 4∼5시간, 주말 7∼8시간씩의 강행군이 거듭됐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장나라 등이 그의 ‘훈련 동기’다. 보아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음반시장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아시아의 ‘넘버 원’이 곧 세계의 넘버 원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시아에서 넘버 원이 되는 게 유럽과 미국의 관심을 끄는 좋은 방법이며, 아시아의 톱으로서 서양 스타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공연하고 싶다”고 밝혔다. 보아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 위해 책과 녹음기를 택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노래에 담는다는 것이다. 녹음기와 책이 뮤지션 보아를 만든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 셈이다. 책으로 세상을 읽고 녹음기로 그 세상을 표현하는 노래를 작곡한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춤, 유창한 외국어(일어·영어) 실력은 지금의 보아를 만든 또 다른 원동력이다. 얼마 전 5집 앨범 <걸스 온 탑>을 발표하고 소녀에서 당당하면서도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 보아는 현재 중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일본에서의 보아의 성공은 피 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능숙한 일본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일본 간판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사회자나 출연진과 농담도 자유자재로 주고받는다. 하지만 보아도 처음부터 일본어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월드 스타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그 역시 데뷔 초기에는 적응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스타가 되겠다고 다짐한 보아는 되도록이면 통역 없이 모든 방송에 출연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시간을 쪼개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적응하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럴 때마다 보아는 더욱 공부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현지 사람들이 일본 가수로 착각할 수준까지 회화 실력을 끌어올렸고 현지화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보아의 다음 목표는 중국이다. 엄청난 열정으로 중국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아시아의 최고가 될 거예요. 아시아 인구를 다 합치면 유럽·미국을 훨씬 능가하잖아요? 여기서 우뚝 선다면 곧 세계 최고가 되는 것 아닌가요? 서양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죠. 이제부터 중국시장에서 제 능력을 활짝 펼쳐 보일 겁니다.” 보아는 소속사가 30억 원을 들여 키운 전략적 프로젝트의 산물이기도 하다. 2000년 13세에 데뷔한 보아는 일본 진출 1년 만에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2004년 MTV 아시아어워드 수상, 2005년 4월 한·일 간의 고조된 갈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콘서트가 전회 매진되는 등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기존 일본 가수들이 록을 기반으로 한 댄스음악에 열중할 때 유럽 스타일과 흑인음악을 혼합해 기존 일본 가수들과의 차별점을 가졌던 것이 보아의 성공 포인트다. 로이터 등 서방 언론은 보아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서도 통할 수 있는 아시아의 스타임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보아의 힘이 일본·중국을 넘어 서구 대중문화시장을 휩쓸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RIGHT]한기홍 객원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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