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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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전략을 세우고 수를 읽는 게임이다. 때로는 이전투구의 백병전을 전개하다 어느 순간 몸을 빼내 조용히 현실의 주판알을 튕기는 변화와 변신…. 그래서 바둑은 측량 불가의 게임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인생을 아는 것도 바둑의 고수가 되는 데 필수 요소로 이해돼 왔다.
이창호 9단은 14세 때 국내대회에서 우승했고 17세에 동양증권배에서 우승, 처음 세계 제패를 이뤘다.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놀라운 기록이다. 동시에 사람들은 의심을 품었다. 이창호가 ‘인생’ 없이 바둑의 최강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창호라는 존재의 등장은 ‘바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화두를 바둑계에 던졌다. 이창호가 불세출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또 인간의 두뇌가 근육보다 완성 시기가 빠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17세 세계 챔피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40세 명인이 진짜 명인이고 최소한 20세는 넘어야 한다고 믿어온 일본은 이창호를 헐뜯기도 했다. 이창호는 조훈현 9단을 꺾기 위해 조훈현의 바둑만 연구해온 조훈현 킬러일 뿐 모든 방면에서 조화를 이룬 최강자는 아니라는 평가가 그것이었다.
1975년생으로 전주의 윤택한 가정에서 자란 이창호가 당대의 1인자였던 조훈현의 내제자(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며 바둑을 배우는 제자)로 들어간 것은 아홉 살 때다. 뚱뚱하고 흐릿한 눈을 지닌 이 소년은 겉보기에는 바둑의 재능을 타고난 것 같지 않았다. 행마는 느렸고 날카롭지 않았다. 천부적 스피드와 화려한 감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조훈현은 이 같은 이창호에게서 대성의 싹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창호는 스승의 예상을 비웃듯 무서운 속도로 스승의 영토로 접근해 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사제대결이 시작됐다. 제자는 스승을 꺾음으로써 스승의 가르침에 보은한다. 예부터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대의 1인자인 스승과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제자의 싸움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용호상박의 대결이 수년간 이어졌다. 한 집의 아래층에는 조훈현이 살고 위층에는 이창호가 살았다. 이들은 아침에 조 9단의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같이 타고 와 한국기원 대국장으로 나란히 들어갔고 온종일 싸웠다.
1994년 무렵 이창호는 조훈현의 모든 타이틀을 접수했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를 정복했고 1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이창호의 진짜 무서운 점은 17세 세계 챔피언 같은 최연소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경탄할 만한 지구력과 절제력, 그리고 바둑에 대한 끝없는 탐구열을 통해 자칫 허무감이나 지루함에 빠져들 수 있는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의 깊은 심성과 능력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세계의 바둑 고수들에게 경외심을 안겨주었다. 무적의 강자였음에도 결코 독단으로 흐르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받아들여 녹여내는 겸허한 흡수력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이창호는 느린 것으로 빠른 것을 제압했고 타협으로 전투를 이겼다. 그는 사막을 흐르는 긴 강처럼 기다림의 화신이 되었다.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강자의 본능일진대 이창호는 느릿한 기다림의 바둑으로 세계바둑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세월의 강력한 힘은 이창호를 무적의 자리에서 경쟁의 자리로 끌어내렸다. 천문학적이라는 이창호의 계산력은 30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쇠퇴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창호는 자신을 지탱해온 계산의 바둑을 버리고 스스로 피하던 전투적 바둑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런 변신에 힘입어 지난 7, 8월에만 11연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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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이창호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이창호가 순응한다면 이세돌은 저항한다. 이창호가 느리다면 이세돌은 빠르고 이창호가 타협한다면 이세돌은 단연코 타협을 거부한다. 이세돌은 길들기를 거부하는 야성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때로는 요기(妖氣)마저 내뿜는 절세가인처럼, 때로는 치명적인 칼을 숨긴 자객처럼, 어둠 속의 들고양이처럼 그렇게 움직인다.
이세돌은 예측불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언행에서 거침없이 드러낸다. 대회의 전야제는 주인공들이 참석해 임전 소감 등을 말하며 잔치를 벌이는 자리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이세돌은 곧잘 빠진다. 지난 7월 자신이 우승한 후지쓰배 세계대회 전야제에서도 이세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주최 측을 당황하게 했다. 인터뷰에서도 흥이 나면 자신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드러내지만 흥이 안 난다 싶으면 대충 얼버무린다. 바둑 이외의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기를 즐기고, 그래서 이세돌의 팬은 아주 많다.
높은 톤의 목소리와 자신감 있고 거침없는 언행에 매료된 팬들 중에는 바둑을 전혀 모르는 여학생도 많다. 그는 단독 플레이어이고 어찌 보면 고독한 승부사다. 세계대회 같은 상금이 많은 승부에서는 상대가 더 강한데도 90%를 넘는 승률을 보이고 국내 대회서는 70%대의 승률을 보여준다는 점도 그의 개성 있는 내면을 짐작하게 한다(이세돌은 올해 우승 상금 3억 원의 도요타 덴소배와 1억5,000만 원의 후지쓰배를 잇달아 제패했다. 그러나 왕위전·농심배 국내예선 등에서는 국내의 후배 기사들에게 패배해 탈락을 거듭했다).
1982년생. 전남 신안군에 있는 비금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이세돌은 그래서 ‘비금도 천재’ 또는 ‘비금도 독수리’로 불리고 ‘쎈돌’이라는 별명도 있다.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해 3남2녀 모두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형인 이상훈이 먼저 프로가 됐다. 누나인 이세나도 이화여대 재학 때 여성 강자로 활약했다. 동생인 차돌은 바둑 대신 공부를 택해 서울대 공대에 다닌다. 형 이상훈은 한때 신인왕에 오르는 등 촉망받는 기재였으나 이창호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인정하고 스스로 승부사 대신 후진 양성 쪽으로 길을 틀었다. 그는 이때 “나는 이창호에게 졌지만 내 동생 세돌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이세돌은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반포에 있는 권갑룡도장에서 숙식하며 공부하던 이세돌은 열한 살 때 프로기사가 된다. 프로 초기부터 천재로 각광받은 탓인지 처음에는 부진했으나 곧바로 수직상승하며 강자의 대열에 들어선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메이저 세계대회서 연속 세 번 우승하며 한국바둑의 최선봉으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 타도가 염원인 중국은 이창호 한 사람을 목표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요즘에는 이세돌을 더욱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세돌은 독특한 캐릭터에 걸맞은 바둑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않는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배수진처럼 위험한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손자의 병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스타일 또한 실리적인가 하면 공격적이고 전투적인가 하면 계산에도 능하다. 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빛,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있는 개성으로 시선을 한몸에 모으고 있는 이세돌은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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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프로생활을 시작한 최철한은 1985년생으로 올해 스무 살이다. 이세돌보다 세 살 밑이고 이창호보다 10년 아래다. 바둑계의 한 시대를 10년으로 칠 때 이창호의 후계자는 이세돌이 아니라 최철한일지 모른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최철한은 여섯 살 때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지냈다고 한다. 그날도 어머니가 아들을 유치원이든 어디든 보내려고 철한을 업고 서초동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문득 권갑룡바둑도장이 눈에 들어왔고 운명처럼 바둑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곳에서 철한은 이세돌 등 선배들을 만나고 흑백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최철한은 어려서 다친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말이 없고 침묵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처음 도장의 선배들은 말을 못하는 아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최철한의 바둑은 깊은 숲처럼 두텁고 동아줄처럼 강인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무서운 완력으로 전면전을 전개한다. 최철한은 심성이 느긋하고 언뜻 이창호와 유사한 심지를 보여주는데도 ‘독사’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일단 전투를 시작하면 보통 감각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독수를 들고나오기 때문이다.
유망한 소년기사였던 최철한이 정상의 위치로 차오르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이창호 9단과 두 번의 도전기를 두어 모두 승리한다. 한 번은 3 대 2. 한 번은 3 대 1. 국수와 기성 타이틀을 동시에 손에 넣은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 최철한이 이창호를 꺾은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창호는 단판 승부에서는 곧잘 진다. 그러나 3번기나 5번기 같은 장기 레이스에서는 거의 지는 일이 없다. 최강의 신진세력이라고 할 이세돌조차 이창호에게 도전해 번번이 무릎을 꿇을 때 최철한이 잇따라 이창호를 꺾은 것은 그야말로 바둑계를 진동시키는 대 사건이었다. 때마침 이세돌이 부진하던 터여서 최철한은 단번에 한국바둑의 계보를 이어갈 이창호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같은 도장에서 한솥밥을 먹은 세돌과 철한은 이후 1년간 매우 드라마틱한 반전을 겪는다. 최철한은 응씨배 등 두 개의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진다. 반면 이세돌은 지난해 삼성화재배 우승을 시작으로 연속 세 번이나 우승한다. 이래서 다시 이세돌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최철한은 이창호에게 강하다. 빠른 움직임 대신 느릿한 두터움을 선호하는 이창호가 더욱 칙칙한 두터움을 보유한 최철한의 완력에 힘겨워 하는지도 모른다. 이세돌과는 박빙의 싸움을 보여준다. 지난 7월 끝난 후지쓰배 결승전에서 최철한은 이세돌에게 반 집을 져 우승컵을 내준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로 천 길 낭떠러지를 수없이 넘나들었고 그 마지막 순간 반 집의 저울추가 이세돌 쪽으로 기울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이창호의 후계자 싸움에서 이세돌이 이길지 최철한이 이길지 아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타고난 감각은 이세돌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중국 측은 공공연히 이세돌을 최대 난적으로 꼽으면서 최철한을 그 아래 두고 있다. 바둑 자체만을 논한다면 이세돌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국내 인사들은 최철한의 다른 장점들을 높이 치는 경향을 보인다. 우선 육체적 건강과 지구력에서 이세돌보다 낫다는 점을 든다. 심성의 두터움과 세상과의 조화, 긍정적 시선, 정신공간의 여유 등 많은 장점을 거론하기도 한다. 최대 약점은 물론 아직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는 것이다(이세돌은 6회 우승).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보여준 최철한의 아쉬움은 몇 번의 결정적 순간을 연거푸 이겨낸 이세돌의 기세 넘치는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
부친이 골프 연습장을 하는 덕분에 철한은 요즘 골프를 배웠다. 등산이 건강 관리의 주종목이었으나 골프를 하나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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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생의 박영훈 9단은 열네 살 때 프로가 되어 동갑내기인 최철한에 비해 출발이 2년 늦었다. 훗날 세계를 제패하고 돌아왔음에도 박영훈의 실력은 이세돌·최철한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영훈은 키도 크고 체구도 크다. 그러나 눈빛이나 환히 웃는 인상은 착하기 그지없어 꼭 철없는 순둥이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성격이나 외모는(다른 곳에서라면 잘생겼다고 칭찬받을 만한데도) 과연 독해야 살아남는 승부의 세계에서 저 지긋지긋한(?) 강자들에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준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있다. 한국기원에서 큰 승부가 벌어지면 기사실에 숱한 기사가 모여 모니터를 보며 대국을 연구한다. 미세한 승부가 종반에 가까워지면 한 수 놓일 때마다 여러 가상도가 그려지고 그때마다 누가 유리한가가 가장 어려운 문제로 등장한다.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알아야 전략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의 형세판단은 수를 선택하는 핵심이 된다.
이때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바로 “영훈이 불러와”다. ‘계산=박영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과거에는 이창호가 계산의 대명사였는데 이제는 박영훈으로 바뀐 것이다.
박영훈은 방송사 간부로 바둑의 열렬한 팬인 아버지와 외아들을 극히 사랑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평탄하게 바둑의 길을 걸었다. 부친은 아들을 위해 온갖 기보를 복사해 주었고 다행히 영훈은 이 기보를 보는 것을 무척 즐겼다.
박영훈은 프로가 된 뒤 이창호 9단과 대국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이창호를 만나 이기겠다기보다 이창호라는 인물과 대국하면 어찌 되나, 이창호의 바둑은 과연 어떤 맛인가 등을 상상하며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한다. 조훈현 9단과의 대국도 그렇고 이세돌 9단과의 대국도 비슷했다. 다른 기사들 같으면 지레 기가 죽거나 대진운이 안 좋다고 생각할 장면에서 박영훈은 마냥 행복해했다.
박영훈은 바둑 자체를 즐기는 누구보다 순수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박영훈-최철한-원성진은 모두 소띠 동갑이다. 이들이 동시에 두각을 나타내자 바둑계에서는 이들을 ‘송아지 삼총사’라고 불렀다. 아직 나이가 어려 송아지의 신세지만 강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의미였다. 첫 출발에서는 원성진이 가장 빨랐다. 그 다음이 최철한, 마지막이 박영훈이었다.
그러나 이들 삼총사 중에서 가장 먼저 우승컵을 따낸 기사는 바로 박영훈이다(박영훈은 이미 4년 전인 2001년 천원전에서 우승했다). 그럼에도 박영훈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은 그가 이창호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창호의 벽’이란 프로세계의 오랜 신화다. 말하자면 한·중·일을 통틀어 이 벽을 넘은 자만이 진정한 용사로 대접받는 것이다.
처음 박영훈은 이창호의 어린 시절에 필적하는 놀라운 계산력과 타개력이 무기의 전부였다. 그런데 박영훈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진보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이창호와 이세돌에게 밀리는 인상이지만 이들이 탈락한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지켜내는 힘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최철한과의 기상전 도전기에서 3 대 2로 승리해 확연히 강자의 대열에 들어섰다. 박영훈처럼 순한 사람도 바둑의 1인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말이 들려온다. 1인자의 가능성이 느껴졌기에 하는 말이다. 박영훈은 아직 형체가 드러나지 않은 미완의 대기이고 그래서 가장 의외의 변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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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