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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호>세계 최초 DMB 상용화 이룬 4인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오직 팀원들끼리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2004년 8월 세계 최초로 비디오 인코드(video encode)를 개발함으로써 비디오 부문에서 표준화를 증명했습니다. 즉,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표준에 맞는 디지털 신호로 바꿔 주는 기능을 개발한 것입니다. 당시의 감격과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KBS 방송기술연구팀에서 근무하며 지상파 DMB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김만식(50) 부장의 말이다. 김 부장은 2001년부터 DMB 시스템·서비스 개발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21년간의 연구생활 속에서 DMB를 맡은 지난 4년이 가장 힘들었지만 최고의 성취감을 맛봤다고 한다. 그는 “DMB를 연구하는 4년 동안 거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DMB 표준을 개발하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았다. 사례를 찾거나 조언을 얻을 방법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부장의 이런 노력의 결실로 한국 DMB는 세계 표준이 되었고, 방송시장을 선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 부장은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DMB를 구현했다는 자체가 큰 의미”라며 “독일에서도 한국의 DMB를 도입해 오는 10월부터 시연할 예정이며, 2006년 독일월드컵 때 한국 DMB를 방송 시스템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코엑스에서 성공적으로 시연회를 마친 김 부장은 “실제로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의 기술이 놀랍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중국의 각 방송사들로부터 한국의 DMB 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이징(北京)인민라디오방송과 상하이(上海)의 방송사들로부터 한국의 DMB 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제안을 받아 막바지 작업 중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의 DMB 기술은 유럽과 남미·동남아 등 여타 국가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며 시연회가 잇달아 예정돼 있다. 김 부장은 “일반사람들은 지상파 DMB와 위성 DMB의 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며 “‘별 차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기본적인 기술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화질에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성 DMB는 중계기를 많이 설치하기 때문에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 이른바 음영지역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화면의 흐름은 지상파 DMB 쪽이 우위에 있습니다. 1초에 흐르는 프레임이 위성 DMB는 15개인 데 비해 지상파 DMB는 30개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화면상 움직임이 적은 프로그램을 볼 때는 차이가 없지만, 스포츠 등을 볼 때는 지상파 쪽이 더 매끄럽습니다.” [B]“독일 월드컵 때 한국 DMB시스템 채용 계획”[/B] 이 같은 기술 차이로 인해 지상파와 위성 간의 DMB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김 부장은 “결국 기술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개발이 두 DMB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지상파와 위성 간 기술 향상과 산업 활성화, 서비스 확대를 위해 상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DMB 기술의 미래에 대해 “세계 최초라는 자만보다 세계와 경쟁하며 향상된 기술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앞으로 세계시장으로부터 상당한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DMB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차세대 멀티미디어 방송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오디오·비디오·데이터 3개 부문의 기술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단순한 정보를 주는 것에서 벗어나 상호작용을 통해 복합 서비스 기술을 개발할 계획입니다.”[RIGHT]백창훈 기자[/RIGHT]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2001년 벽두 박기한(45) SK텔레콤 기획조정실 전략프로젝트팀장(현 TU미디어 경영전략실장·상무)은 고민에 빠졌다. 보름 전 IMT 2000 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기뻐할 틈도 없이 또다시 신규 사업을 발굴하라는 특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는 SKT가 한창 잘 나갈 때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동통신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10개 정도의 신규 프로젝트를 검토했는데, 제가 볼 때 해볼 만한 것은 디지털 오디오 방송(DAB) 하나였어요.” DAB는 쉽게 말해 라디오 방송을 디지털화한 것. 199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 상용화했다. 그러나 박 상무는 DAB로는 시장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세계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DAB에 비디오 콘텐츠를 접목한 개인 멀티미디어 위성방송(PMSB)을 생각해냈다. PMSB는 훗날 DMB로 이름을 바꾼다. “기술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회사를 설득하는 것과 주파수를 확보하는 것이었죠.” DMB사업은 위성 제조·발사에만 수천억 원이 드는 등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부어야 하는 사업. 따라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검토가 끝난 뒤에도 엄청난 비용 때문에 사업성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제기됐다. 더구나 위성 DMB의 사업 영역이 SKT가 이미 시장화에 성공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인 네이트(NATE) 준(June)과 충돌한다는 지적은 박 상무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렇다고 위성 DMB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테니까요. 경영진을 설득한 논리도 결국 그것이었죠.” 정지위성을 사용하는 위성 DMB는 정지위성 궤도와 주파수를 확보하는 것이 열쇠다. 이에 따라 SKT는 2001년 9월 정통부를 통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2.630~2.655GHz(25MHz) 대역 및 12, 13GHz 대역에서 각각 25MHz씩 신청함으로써 이 주파수 대역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점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인근 궤도에서 동일 주파수 사용 계획이 있는 일본을 비롯한 중국·미국·러시아 등 전 세계 19개국 120개 위성망에 우선권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 혼신 조정에 합의해야만 주파수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파수 조정을 위한 전담직원을 두고 진두지휘하던 그는 일본과의 협상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B]“‘우리가 안하면 누군가 할 것’ 경영진 설득”[/B] “우리가 사용하려는 주파수는 일본에 우선권이 있었죠. 대안으로 일본과의 합작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주파수가, 그쪽은 자금이 필요했죠.” 공동 위성 발사에 합의한 일본 MBCo와 SKT는 2004년 3월13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DMB용 위성 ‘한별’을 쐈다. 박 상무는 “2~3년 먼저 뛰어든 일본보다 우리가 먼저 위성 DMB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애초 이동식 TV를 구상하며 휴대전화로 보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시장성을 보나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이동식 TV가 구현된다면, 그것은 휴대전화를 통해서라고 판단했죠.” 박 상무는 요즘 위성 DMB 가입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1,500명가량이 가입하고 있습니다. 1,000만 대를 보급할 때까지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아요.” [RIGHT]오효림 기자[/RIGHT] [SET_IMAGE]5,original,center[/SET_IMAGE] “DMB는 단순히 지상파 방송의 재전송 수단이 아닙니다.”DMB 솔루션 전문업체 넷앤티비를 이끄는 박재홍(48) 사장의 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인 박 사장은 지상파 DMB 표준을 만든 인물. 그가 DMB 기술에 주목한 것은 ETRI 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인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반 HDTV 기술 연구에 참여하면서 디지털 방송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DMB와 인연을 맺은 것은 디지털 방송 과제 책임자로 선임된 1996년부터고요.” 그는 1996년 디지털 방송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가정용 고정TV는 HDTV 방식으로, 이동수신 TV와 라디오는 현재의 DMB 방식의 모태가 된 디지털 오디오방송(DAB) 방식을 개발해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제안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방송 풍토는 방송 선진국에서 방식 및 장비를 개발해 방송을 시작하면 그것을 보고 배워 장비를 사다 방송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DMB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방송 방식이니 방송사나 가전업체나 관심을 갖지 않았죠.” 그러나 디지털 방송의 진가를 일찍부터 알아채고 연구를 계속한 그는 1999년 DAB에 동영상압축기술 MPEG-4를 결합할 경우 채널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동하면서 동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본격적인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DAB는 유럽에서는 1995년부터 상용화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실패했죠. 음질이 뛰어나다는 점 외에는 FM 방식보다 이렇다 할 뛰어난 점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이동하면서 영상을 볼 수 있다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었죠.” 2000년 “MPEG-4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고 싶다”며 ETRI를 나온 박 사장은 2001년 정보통신부 산하 차세대디지털방송표준포럼에 참여하며 디지털 방송을 위한 표준을 만들 것을 제안해 직접 표준 제작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의 지상파 DMB 표준 초안이 완성된 것이 2002년 11월입니다. 공식적으로 DMB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이때가 처음입니다.” [B]“지상파 DMB는 완벽한 쌍방향 방송이 핵심”[/B] 그가 지상파 DMB 표준을 만들면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비디오·오디오 규격과 데이터 방송 규격을 일치시키는 작업이었다. “흔히 DMB를 휴대전화로 TV를 본다는 의미에서 ‘내 손 안의 TV’라고 하는데, 이것은 DMB가 구현하는 기술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DMB의 핵심은 진정한 의미의 쌍방향 TV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지상파 DMB는 표준을 정하면서 오디오·비디오 규격과 데이터 방송 규격을 일치시켰기 때문에 완벽한 쌍방향 방송이 가능해졌죠.” 그는 지상파 DMB에서는 화면 속의 소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클릭해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기술은 위성 DMB로도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규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인데, 필요하다면 규제도 풀어나가야죠.” 그는 “오는 12월 지상파 DMB가 상용화되면 현재의 방송 개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상파 DMB에 꼭 맞는 쌍방향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지상파 6개 사업자 중 하나인 KMMB에 참여한 박 사장. 그는 “꿈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SET_IMAGE]6,original,center[/SET_IMAGE] “기술 개발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작 어려웠던 것은 정책방향의 조율 과정이었죠.”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디어 수준이었던 DMB가 오늘날 빛을 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세계에서 유례 없는 신개념의 방송을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방향 및 기술 표준을 정하고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은 필수. 그러나 사공이 많은 사업인 만큼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정책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그런 가운데 안치득(49)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디지털방송연구단장은 디지털 방송 기술의 큰 흐름을 읽으며 우리나라 디지털 방송 통신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세부 전략을 세우고, 또 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를 설득하는 조타수 역할을 담당했다. 안 단장은 디지털 방송 분야의 핵심 기술인 MPEG-4 관련 기술로 국제표준 특허를 획득한 ‘MPEG(Moving Picture Experts Group)의 대가’. 그는 멀티미디어를 다루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MPEG 기술의 중요성에 일찍부터 주목했다. 그리고 1991년부터 이 분야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ETRI가 개발한 MPEG 기술을 국제표준화하는 데도 앞장서 2002년 ETRI 표준화상, 2003년 8월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04년 정보통신 산업포장 등을 휩쓸었다. 안 단장이 MPEG 기술을 활용한 지상파 DMB 사업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 무렵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화두였습니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연구기관인 ETRI로서는 절체절명의 과제였죠.” 그가 생각해낸 것은 ‘이동식 TV’라는 신개념의 방송 서비스를 통해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블루오션’ 전략이었습니다. 기존 시장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것이었죠. 이동식 TV는 산업화만 된다면 돈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B]“지상파 DMB는 ‘블루오션’이었다” [/B] 그는 이왕이면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한 MPEG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지상파 DMB 사업의 가닥을 잡았다. 그 다음은 전략적 파트너로 이미 유럽에서 시장을 형성한 DAB 방식을 채택한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상용화된 DAB 서비스에 우리가 원천기술을 확보한 MPEG-4 기술을 활용해 TV를 얹겠다는 생각이었죠. 그 경우 DAB 방식을 채택한 국가에서 우리 지상파 DMB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이미 DAB 방식을 채택해 상용화한 유럽 국가들은 훗날 우리나라의 지상파 DMB 방식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뛰어난 연구는 남이 생각하지 못한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술개발보다 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나중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은 반드시 열린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의 핵심 기술을 추격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핵심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이를 상품화해 산업화와 연계시키는 것만이 외국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 지상파 DMB를 통해 증명됐다고 생각합니다.”[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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