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참여정부 들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던 과거사 청산을 정리하기 위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 관련 5개 위원회 주최로 지난 11월 28일 백범김구회관에서 ‘과거사정리 활동평가와 향후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100여 명의 방청객과 총 10개 위원회가 참석한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부는 올해로 활동을 종료하는 국가기관 설치 과거사위원회와 제주 4·3사건, 노근리사건 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2부는 친일관련 위원회 등 5개 위원회의 발표가 이어졌다. 1, 2부 마지막 부분에는 질의 응답·토론이 이어져 방청객과 발표자들 사이에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송기인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은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로하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불명예를 씻고 명예를 회복해주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이루는 데 그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해동 군의문사위원회 위원장은 “굴절된 역사로 인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실함과 정의에 대한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극복해내야만 한다”며 “이를 위해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이날 토론회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각종 제안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총괄해 하나의 상설 독립기구를 만들 것을 검토해야 한다”(이창호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 “전시 민간인 보호 및 살상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정구도 노근리사건명예회복위원회 위원), “과거사정리 작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체제가 중요하다”(김동춘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피해자들의 추가접수 요구가 높은 만큼 조사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박성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진실과 정의의 승리, 역사적 경험 필요
한국 사회는 20세기 들어 반세기 남짓한 동안 식민지, 해방, 민족분단, 6·25전쟁 등을 연쇄적으로 겪었다. 그후에도 독재정권 하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수십 년 동안 발생했다.
국민들은 역사적 청산작업을 요구했지만 사회적 상황이 이를 따르지 못했다. 청산작업에 대한 본격적인 시도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시작됐다. 그러나 피해자 구제에 초점을 맞춘 정도였다.
진상규명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이 펼쳐졌지만 아직도 개별 사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 뒤를 이은 참여정부는 그 규모를 확대시키고 포괄적 접근방식을 취하는 등 과거청산 작업을 본격화했다. 2004년 8·15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과거사 청산의 포괄적 정리가 그 바탕이 됐다. 2005년 12월 포괄적 과거사정리를 추진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2~3년간 과거사위원회는 많은 성과를 내놓았다. 최종길 등 의문사 사건이 규명되었고, 진보당, 인혁당 사건 등의 진실을 밝혔으며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등 여러 억울한 죽음의 실체도 밝혔다. 또한 각종 위원회가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 보고서를 속속 발표하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시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성과들은 잘못된 과거로 인해 생긴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사회 통합에 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일부 세력과 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세력의 갈등도 있었다. 또 위원회 활동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조사에 필요한 법적 권한 미비, 공소시효로 인한 조사 불가능, 예산과 인력의 배정 불합리 등이 그것이다. 당장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사 청산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국민들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과거청산 없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길이 없고, 과거청산 없이 오늘의 우리 현실을 고쳐 세울 일이 없고, 과거청산 없이 떳떳하고 바람직한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해동 군의문사위원장의 말처럼 과거사위원회의 성과는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관 내에 설치된 3개 과거사위원회는 올해로 활동이 마감된다. 국방부, 국정원, 경찰청에서 설립한 과거사위원회는 내부의 과오를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지난 11월 12일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끝으로 조사활동을 마무리했다. 2005년 5월 출범한 국방부 과거사위는 간첩조작 의혹사건외에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항쟁 등 1980년대 신군부 집권과정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문제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제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 △실미도사건 △강제징집 등 녹화사업 사건 △‘10·27 법난’사건 등 그동안 총 8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의 조사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힌 가시와도 같았던 의혹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진실규명을 통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긴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과거사위는 어렵게 사건 관련 당사자들을 면담하거나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국방부,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등의 관련 자료를 들춰가며 진실규명에 집중했다.
■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2004년 11월 설립된 이래 2007년 12월 그 활동을 마감한다. 3년 동안 불법선거개입 의혹,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용공조작 의혹사건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 조사했다. 구체적 사건으로는 △서울대 깃발사건, 민주화운동청년연합사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1946년 대구 10·1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 사건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의혹 사건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 연합사건 등이 있다. 조사활동 중 경찰이 국민에 대해 공권력을 남용했음을 인정하고 인권경찰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든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2004년 11월 2일 발족한 진실위가 10월 24일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실태를 고발하는 종합보고서를 내놓으며 활동을 종료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납치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부일장학회 헌납·경향신문 매각 사건 △인민혁명당·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김형욱 실종 사건 △남한 조선노동당 등 이른바 7대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동안 의문에 쌓여 있던 사건들에 대해 국민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고 피해자들에게 미흡하나마 명예회복과 손해배상의 길을 열어줬다.


일제강점 하 사회전반에 구축된 식민지 지배구조와 문화를 없애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실패한 뒤 60년 만에 다시 시도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위원회는 오래 된 사건에 대한 조사인 만큼 시급한 사안인 데다 제대로 된 자료집 보완이 필수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해방 60여 년 만에 착수되었다는 점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해체된 지 50여 년 만에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반민규명위는 1904년 러일전쟁 개전시기부터 1945년 8·15 해방 때까지 40여년에 걸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 308명을 적발했다.
■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2007년 11월 현재 제30차에 걸친 전원위원회를 통해서 토지 2513필지 약 1399만㎡ 공시지가 약 1101억 원에 상당하는 친일재산에 대해 조사개시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 450명을 골라냈다. 이들의 귀속된 재산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을 위한 지원금 및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우선 사용될 예정이다.

군의문사는 노태우정부 이후의 군의문사를 조사하고 진실화해위원회 그 이전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민간인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폭넓은 진상조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지난 2005년 12월 1일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이후 이 법 시행일까지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한다.
2007년 11월 20일 현재, 위원회의 처리대상 사건은 총 1만901건으로 이 중 2000여 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올해 처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의 유해발굴을 실시함으로써 진실규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이해를 높였다는 것이다.
■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년 2월 활동을 시작해 현재 접수된 사건만 600건이다. 그 중 연말까지 150건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93년 2월 25일 이후 발생한 군의문사 사건을 주로 조사하고 그 이전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담당한다.
주로 군에서 자살로 판명난 사건에 대한 진정이 80% 정도를 차지하며 조사완료한 것 중 2건이 타살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른 사건 역시 타살성 자살이거나 정신적 이상이 발생해 자살한 사건이 대부분으로 국가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군의문사위원회는 이들의 실질적인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후속조치 마련과 군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 개선을 모색해 왔다. 이와 함께 내년 말이면 끝나게 되는 위원회 활동 기한 연장을 시급한 문제로 꼽고 있다. 

참여정부 이전의 과거사 조사는 사안별로 개별위원회를 설립했다. 많은 한계와 문제를 노출해온 이 방식을 개선해 참여정부는 통일된 하나의 기구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발전시켰다. 나주, 고양, 함평, 나주, 고창, 산청 등지에서 발생한 집단희생사건은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사건으로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사건 중의 하나로 과거사진상규명 흐름의 물꼬를 튼 사건이다.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는 2004년 8월 발족해 218명의 희생자를 결정하고 의료지원금 지급, 역사공원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4·3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는 그동안 사적 기억 속에 밀봉되었거나 억압적 상황으로 인해 금기시되었던 4·3에 대한 기억들을 공식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초토화작전의 책임은 군수뇌부, 이승만 대통령, 미군 수뇌부임을 밝혀 대통령이 이에 대해 사과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지역사회의 시민운동과 지방자치단체·국가의 진실규명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얼마 전 국군 및 공수부대 출신 일부 예비역들이 영화 ‘화려한 휴가’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작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해동 위원장은 인터뷰 과 시작과 함께 이 사안을 꺼내며 과거사 위원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적극가담자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 자료와 일부 목격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불충분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일어난 일이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고발하겠다니 기가 막힐 뿐이죠.”
증언·증거에 의해서 정확하게 그 당시의 진상을 밝혔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반문이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이해동 위원장은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했다. 국방부 위원회는 지난 10월 활동을 정리했지만 바로 그곳에서 5·18민주항쟁에 대한 조사를 벌였기 때문에 그가 화를 낼 만도 하다.
“그걸 저지른 사람들이 최소한 그땐 모르고 했어도 사회적·공적 정리 작업을 통해 반성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벌을 통한 반성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원한을 사서 악순환이 계속 될 뿐이에요. 위원회 활동은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지 누군가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처벌 없이 진상만을 밝혀봤자 큰 의미가 없다는 일부 의견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잘못을 뉘우치고 억울한 사람은 그 한을 풀 수 있도록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토론회를 마련한 것도 과거사위원회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위원회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임박한 대통령 선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이 위원장은 그래서 언론과 지식인이 적극 참여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과거사 진실규명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진상조사는 어느 한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말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괜히 왜 옛일을 들추느냐는 사람은 개혁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개혁이 없으면 사회는 부패하게 되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계속 개혁해나가야 하고 과거 진상조사도 계속돼야 하는 겁니다.”
그는 또 국민 모두가 고발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위원회 활동 중 목격자의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데서 기인한다. 또 불의에 관해서라면 내 일처럼 나서서 고발하고 분노할 때 사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된다는 의미다.
“군의문사위원회 경우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습니다. 증인이 많아질수록 조사에 가속도가 붙어 군 문화 개선에도 효과가 커질 겁니다.”
이 위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는 ‘자료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조사과정에서 적극적인 군의 협조를 받으며 그 변화상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힘들게 조사에 임했던 조사관들의 수고가 가장 컸다며 과거 청산은 역사적 과제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내년 임기가 끝나면 평화박물관 건립에 매진하겠다는 이해동 위원장. 목사이자 아름다운가게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진실을 밝혀 올바른 역사를 세우는 데 작은 힘이나마 되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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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